2001년 중국의 10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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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중국의 10대 뉴스

중국이 뉴 밀레니엄의 첫 해로 삼고 있는 2001년은 수도 베이징시가 사상 최초로 2008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데 이어 월드컵 축구의 본선 진출, 15년 숙원인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하는 등 국운이 한껏 상승한 해였다. 반면 새해 벽두에 장량(張良)이란 이름의 고위 당 간부 출신이 미국에서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진상' 자료를 공개, 파란을 일으켰으며 4월엔 중국 전투기와 미군 정찰기의 충돌 사건으로 중-미관계가 한 때 파국을 맞기도 했다. 다음은 수요저널이 뽑은 중국의 '2001년 10대 뉴스'. 1) 중-미 군용기 충돌 [[1[[ 새해 벽두에 터진 '톈안먼 페이퍼' 공개로 한껏 경색된 중-미관계를 파국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4월1일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발생한 중국 전투기와 미 해군 정찰기(EP-3)의 충돌 사건이었다. 인민해방군은 사건 발생 직후 미국이 하이난다오 링수이(陵水)기지에 억류된 자국 정찰기 및 승무원 구출작전에 나설 것에 대비해 광둥(廣東)제3군에 1급 전투준비 태세를 발동하는 등 중-미 군사대결 가능성까지도 엿보였다. 연내 WTO 가입 실현을 위해 진력해 온 중국은 그러나 미국과의 세대결의 불리함 및 이로 인한 WTO 가입 지연 등을 우려, 4월 중순 예상외로 빨리 승무원을 송환한 데 이어 기체도 미국에 반환하는 등 선의를 보였다. 2) 9.11 테러와 중-미 관계 개선 새해 벽두에 터진 6.4 사태 진상 공개와 4.1 군용기 충돌 사건,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 등으로 크게 경색된 중-미 관계는 예기치 못했던 9.11 테러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보복 전쟁을 벌이게 되면서 극적 개선의 계기를 마련했다. 테러 사주범으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측과 연계된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 분리주의자들의 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국은 아프간 및 파키스탄내 테러분자들의 활동 정보 제공 등 미국에 '소극적'으로 협력, 중-미 관계가 급속 개선됐다. 3) 베이징시 올림픽 유치.. 중국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 ]]2]] 7월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는 베이징과 파리, 토론토 등을 상대로 2008년 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 표결을 부친 끝에 베이징이 파리를 압도적 표 차로 누르고 선정됐다. 이어 10월7일 밤에는 월드컵 축구 아시아 최종 예선전에서 오만을 1-0으로 이기고 사상 처음으로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중국 주요 도시 인민들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밤 늦게 까지 축하 폭죽을 터트리는 등 '잠 못 이루는 밤'을 두 차례 연출했다. 4) WTO 가입 15년 숙원 해소 [[3[[ 지난 11월11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 중국의 가입안이 만장 일치로 통과돼 15년 숙원이 풀리게 됐다.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비준을 거쳐 12월11일 정식 회원국이 돼 세계경제 체제에 편입되게 됐다. 중국은 WTO 가입으로 정치·군사 및 경제 부문에 있어서도 국제사회에 발언권이 강화되는 등 지위가 급상승하게 됐으며 GDP와 해외투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시장개방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경쟁 체제에 뛰어들게 돼 중국경제에 대한 타격이 막심해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5) 6.4 톈안먼 사태 진상 공방전 새해 벽두인 1월 초 중-미 관계를 크게 긴장시킨 것은 미국에서 출판된 '톈안먼 페이퍼 '였다. 공산당 고위 간부를 자칭하는 '장량(張良.가명)'이 미국으로 유출시켜 출간된 이 책은 89년 6.4 사태 당시 덩샤오핑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의 진압 결정 과정 등을 상세히 기술, 베일에 가려져 온 6.4 사태 진행 상황 및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긴박했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듯 했다. 그러나 5월 중 홍콩 성도(星島)일보는 샤오허(蕭何)라는 이름의 중국 공산당 간부 기고문을 공개, '핵심 문건'들의 오류를 주장하면서 '톈안먼 페이퍼 조작론'을 펼쳐 독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장량측은 샤오허가 6.4사태 진상 공개를 꺼리는 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 계열의 인물로 지목, 양자간 지상(紙上) 대결을 펼쳤다. 6) 대만-대륙 소3통 실현 1월2일 대만의 도교참배단(平安進香團) 500명을 태운 타이마(台馬)호와 진먼현(金門縣) 정부대표단이 탑승한 타이우(太武)호가 2일 오전 7시30분 각각 마쭈(馬祖)항과 진먼항을 출발해 오전 9시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시 웨이저우다오(湄洲島)에 도착, 49년 이후 닫혔던 '6㎞거리'의 양안 직항(直航)로가 반세기만에 개통, 양안관계의 새 장이 열렸다. 대만 정부는 중국측의 상호 조치와 무관하게 최전선 지역인 진먼, 마쭈와 푸젠성 지역에 한해 선박 직항을 허용하는 이른바 '소3통'을 허용했으나 대륙은 '하나의 중국' 원칙 수용을 전제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대만은 '소3통'의 운영 상황을 감안해 대만 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3통 개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7) 내국인에게 외국인 전용주(B주) 개방 중국 증권감독위원회는 2월 중순 내국인 전용주(A株)및 외국인 전용주(B株)로 양분돼 운영돼 오던 상하이와 선전(深천)증시의 B株 거래를 내국인에게 허용한다고 전격 발표해 증시에 일대 혼란이 발생했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형평성 논란 및 사재기 등에 따른 혼란을 우려, 외국 거주 내국인에 한해 2월19일부터 거래를 허용하고 당국 발표 이후 계좌를 개설한 투자가나 일반 내국인에게는 6월부터 거래를 허용하는 내용의 지침을 함께 발표했다. 상하이와 선전의 B주는 A,B 합병을 기대, 이후 1개월간 폭등 조짐이 계속되다가 '거품' 논란으로 수 차례 폭락하는 널뛰기 장세가 반복돼왔다. 8) 자본가 공산당 입당 허용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7월1일 당 창건 80주년 기념 연설(7.1담화)에서 자본가들에게 공산 입당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 당 내외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하 당 총서기'로 불리는 좌파 영수 덩리쥔(鄧力群)을 비롯한 좌파 세력들은 장 주석의 '깜짝 발언'이 나온 뒤 즉각 비난하고 나서는 등 당내 좌.우파 대결 국면을 보였다. 공산당은 이 구상 실행을 위해 지린(吉林)과 후베이(湖北), 동부 저장(浙江) 등 10개 성을 시범 지역으로 선정했다. 중국 기업가 100여명은 최근 광둥성 선전(深천)에서 열린 '중국민간경제논단'에 자본가 입당론에 대한 지지를 천명한 뒤 사유재산 침범 불가를 명문화한 개헌 추진을 요구했다. 9) APEC 정상회담과 중-대만 관계 악화 지난 11월 중순 상하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각료회의의 주요 초점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대만 대표단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사건에도 불구 행사 참석을 강행, 양국은 중-미 관계가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만방에 과시했다. 반면 중국과 대만 관계는 중국의 대만 수석 대표 방문 불허 등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들로 더욱 경색됐다. 중국은 리위앤주 전 부총통의 정상회담 대표로서의 부적절함을 내세워 방문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이어 탕자쉬앤(唐家璇) 외교부장은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각료회담 폐막 기자회견 중 린신이(林信義) 대만 경제부장의 말을 도중에 가로막고 대만 기자들의 질문 내용을 질타, 대만 대표단이 이에 항의해 타이베이로 철수했다. 10) 연쇄 폭발 사고 지난 3월 장시(江西)성 이춘(宜春)시 완자이(萬載)현의 한 소학교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폭죽제조 작업에 동원된 학생 등 41명이 숨지고 수 십명이 부상, 공산당 지도부를 경악시켰다.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인민들에게 사과한 뒤 진상조사 끝에 장시성 서기와 성장, 완자이현 현장 등 고위직들을 직위 해제됐다. 그러나 구랍 30일 완자이현에서 또 폭죽 사고로 7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 이어 광시좡주(廣西壯族) 자치구에서도 폭발사고로 수 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중국에서는 이번 달 들어 후베이성 스자좡(石家莊), 산시(陝西)성 헝샨(橫山), 광둥성 잔장(湛江) 및 장먼(江門) 등지에서 줄줄이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으며 관측통들은 일련의 폭발사고를 실직 등 개혁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분풀이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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