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경제적 시련에 부닥쳤지만, 시진핑의 '1인체제'는 갈수록 굳어지는 양상이다.
4일과 5일 차례로 막을 올린 양회(兩會•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도 그런 기색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올해 전인대에선 중국 집단지도체제가 그 형식마저 무력화하고, 권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 더 수렴하는 모양새다. 고성장보다는 고품질 발전에 방점을 둔 시 주석의 공동부유 정책 의지가 더 부각하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위기와 산적한 지방부채 문제, 내수•수출 부진, 미국 등 서방과의 각종 경제•안보 이슈 분쟁 등에 휘말린 중국의 장래는 밝지 않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불안한 모습이다.
◇ 사실상 '집단지도체제 깃발' 내린 시진핑…1인 체제 가속
전날 러우친젠 전인대 14기 2차회의 대변인이 전인대 폐막 후 총리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데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무력화한 상징적인 '사건'이어서다.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은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93년부터 30년간 정부 격인 국무원의 총리가 중국 권력 2인자이자 경제 분야 수장으로서 가져온 고유 권한으로 여겨져 왔다.
마오쩌둥의 절대권력 폐해를 절감했던 덩샤오핑은 7인 또는 9인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에 분야별로 권력을 나눠 통치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시작하면서, 그 이후 총리는 국가주석 다음으로 '큰 권력'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2017년 19차 당대회로 연임 임기를 시작한 시 주석은, 당시 리커창 총리의 경제 권력을 차츰 축소했으며, 2022년 10월 제20차 당대회로 3연임을 관철한 뒤에는 측근으로 상무위원 6명을 채우고서 사실상 1인체제를 구축했다.
그러고 나서 시 주석은 이번에 총리의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을 없앴다.
이를 두고 중국 안팎에선 시진핑 이외에 상무위원 6명을 포함한 '7인 체제'는 더는 분점 구조가 아닌 '시진핑과 6명의 부하'라는 상하관계로 변한 것이며 총리의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을 없앤 건 사실상 집단지도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시 주석은 올해 경제정책의 뼈대를 추리는 작업이라고 할 작년 11∼12일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주재하는 등 경제 관여를 본격화했다.
이 자리에서 '온중구진(穩中求進)•이진촉온(以進促穩)•선립후파(先立後破)'라는 12자의 경제정책 방침을 정했다. 이는 올해에 "안정을 유지하고, 발전을 통해 안정을 촉진하고, 옛것을 폐지하기 전에 새로운 것을 확립하면서 계속해서 진보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시 주석은 개혁개방 시기와 달리 중국이 미국 등 서방과 경제•안보 이슈로 복잡하게 얽혀 갈등하고 대립하는 속에서 경제 문제를 여타 정치•안보•외교 문제와 함께 다뤄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정 자문기구격인 정협의 전날 개막식에서 왕후닝 정협 주석은 중국 공산당의 '통일적 지도'를 강조하면서 국가주석 겸 당 중앙군사위 주석, 그리고 당 총서기인 시진핑이 주창해온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아 지혜와 힘을 결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성장률 개의치 않는 中, 이젠 '시진핑표' 고품질 발전에 승부수
리창 총리는 이날 인민대회당에서 개회한 전인대 업무보고에서 '5% 안팎'의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했다. 작년과 동일한 수치이자 1991년(4.5%)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다. 경제 회복이 호전 추세라는 중국 당국의 정세 판단에 비춰볼 때 보수적인 목표치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19차 당대회에서 중국의 '신시대'를 선언해 관심을 끌었다. 장쩌민•후진타오의 개혁개방 시기 고성장을 구가했던 것과는 다른 중국 안팎의 여건 변화로 중국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17차 당대회 개최 다음 해인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미•중 무역전쟁을 개시한 걸 시작으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그리고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등의 여건 속에서 중국의 고성장은 꺾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공동부유를 강조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책을 천명한 이래 중국이 받아들여 유지해온 시장 경제체제의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이미 2021년 8월 17일 당 중앙재정위원회 제10차 회의에서 공동부유를 "전체 인민의 정신과 물질생활이 모두 부유한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은 부(富)의 독점을 문제 삼아 알리바바•텐센트 등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를 수년간 강도 높게 제재하기도 했고, 부동산 이익 추구를 투기로 규정하고 단속했다.
이를 두고 부동산 시장 위기는 물론 중국 경제의 장기적 침체 국면이 조성되고 있지만, 빈부격차를 일정 수준 해소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경제적 난관이 산적한 상황에선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고품질 발전의 필요성을 주창해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시 주석 연설 분석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최소 128차례 고품질 발전을 역설했으며, 이는 2022년의 65차례와 비교할 때 2배 수준에 달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 역시 개혁개방 시기의 경제성장 견인차였던 부동산 개발과 인프라 투자 대신 전기자동차•배터리•태양광 등 이른바 '3대 신(新)성장동력'을 고품질 발전의 축으로 삼고 있다.
전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년간의 팬데믹을 거친 지난해 예상과는 달리 중국 경제가 성장 정체를 보였지만, 그에 대해선 시 주석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고품질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고 짚었다.
◇ 수년간 성과 못낸 '시코노믹스'…중국인들은 불안하다
수 년간 이 같은 '시코노믹스'(시진핑+이코노믹스) 드라이브는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한듯하다. 중국과 홍콩 주식 시장 가치가 2021년 정점 이후 6조달러(약 8천조원) 이상 손실을 기록한 게 단적인 사례다.
국가안보와 정치적 안정, 사회적 평등을 강조하는 공동부유 정책과 미국 등 서방의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 외국자본의 '탈(脫) 중국' 현상은 가속하고 있다.
여기에 헝다(에버그란데)와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등의 선두권 부동산 개발기업들은 청산 위기에 몰렸고 디플레이션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미국 등 서방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압박은 거세지면서 중국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태다.
시 주석은 공동부유와 고품질 발전을 가속하고 있지만 중국인들 호응은 크지 않다.
중국인들이 암울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지갑을 닫아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데서도 그런 기색은 역력하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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