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홍콩 모두 결혼식의 계절이다. 홍콩은 날씨가 선선해지는 10월, 11월에 결혼 날짜를 많이 잡는다. 필자가 처음으로 홍콩 사람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던 것은 주재원 시절이었다. 거래처 사장님 아들의 결혼식이었는데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들이 있었다.
초저녁에 시작된 결혼식은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일반적으로 결혼식이 끝난 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한국과는 달리 홍콩은 결혼식과 식사가 큰 홀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때도 약 8~10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고 손님들이 앉는 자리도 정해져 있었다.
결혼식이 시작되면 주례가 일장 연설을 하는 한국과는 달리 주례사 없이 변호사가 동석하여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증서에 사인을 하는 장면이 이채로웠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사랑스런 모습을 담은 신랑, 신부의 여러 사진들이 프로젝터를 통해 영화의 장면들처럼 상영된다.
나중에 홍콩 사람들의 결혼식에 몇 번 더 가게 되었는데 결혼증서 사인 및 사진 상영은 빠지지 않는 순서 중의 하나였다. 대신 축가는 없다.
그런데 포크와 나이프, 젓가락과 숫가락 등이 고급스럽게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음식이 올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배고픈 배를 움켜쥐며 식사를 기다렸건만 8시가 한참 지나도 음식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기에 지쳐갈 무렵 드디어 쟁반을 든 웨이터들이 행진하듯 장관을 이루며 입장하면서 첫 음식이 내어져 왔다.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 8은 식장에서도 무관하지 않은데 보통 8가지 코스 요리가 나온다. 그리고 이 8개 코스 요리는 상당한 간격을 두며 천천히 올려진다. 고가의 샥스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째든 결혼식 시작 후 한참만에 시작되는 식사 문화를 알게된 후 그 다음부터 결혼식에 가기 전에는 뱃속을 간단히 채우고 가곤 한다. 저녁 결혼식은 보통 10시가 한참 넘어서 하객과의 기념 촬영으로 끝이 나는데 보통 기념 사진만 30분 정도 찍는 것 같다. 이 긴 시간 내내 웃고 있어야 하는 신랑, 신부에게는 정말 수고가 많은 결혼식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 교민들도 홍콩인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홍콩에서는 결혼을 전문적으로 하는 웨딩홀이 따로 없고 보통 호텔이나 중국 식당, 혹은 교회등에서 한다. 청첩장을 전단지 뿌리듯 하는 한국과는 달리 홍콩에서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청첩장을 건넨다. 신부는 청첩장 안에 보통 케잌 쿠폰을 넣어 하객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하객으로서 청첩장을 받는다면 초대한 측에 참석 여부를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음식 비용이 한 두푼짜리가 아닌 1인당 $1,000정도의 고가라서 정확한 하객 수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축의금의 경우 중국 식당에서 결혼을 하면 보통 $800, 호텔은 $1,000정도 준비하는데 식사비가 비싼 만큼 축의금 액수도 한국보다 높다. 만약 참석이 어렵더라도 청첩장을 받았다면 축의금 금액의 50%를 내는 것이 이곳의 보편적 결혼 문화이다.
가장 주의할 것은 축의금 봉투 색깔이다. 한국에서처럼 하얀색 봉투를 준비한다면 정말 큰 실례가 아닐 수 없다. 홍콩에서 하얀색 봉투는 결혼식 축의금이 아닌 장례식 조의금으로 준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학원에 다녔던 젊은 한국 여자분은 홍콩 사람 결혼식에서 흰색 봉투를 내밀었다가 퇴짜를 받은적이 있었다고 한다. 홍콩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깔인 빨간색이 축의금 봉투의 색깔로 무난하다.
그리고 여러 바쁜 이유로 눈도장만 찍고 바로 사라지는 한국의 하객들과는 달리 홍콩에서는 초저녁에 시작해 밤 늦게나 끝나는 결혼식을 끝까지 함께한다. 하객들의 성의가 느껴지는 좋은 문화인 것 같다. 홍콩의 결혼식에 가 보면 테이블 배치나 분위기등이 중간에 도망(?)치기 어렵게 되어 있기도 하다.
결혼식이 보통 밤 늦게 끝나다보니 신혼 여행은 다음날 가거나 아니면 신랑, 신부가 바빠 아예 몇 개월 후로 미루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낮에 결혼을 하는 커플들도 증가하고 있지만 당일에 신혼여행을 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이런 서양식 결혼 외에도 중국 식당에서 전통 스타일로 식을 올리기도 한다.
자, 그럼 정리를 해 보겠다. 결혼 초대의 청첩장을 받았는가. 그럼 참석 여부를 꼭 알려주고 참석시에는 빨간색 청첩장 안에 $800~1,000을, 불참시는 이것의 50%를 보낸다. 출발 전 간단한 요기를 하며 하객 복장은 캐쥬얼하게 입기도 하나 셔츠와 정장 바지, 드레스 정도면 무난하다. 중간에 자리를 뜰 생각은 접으시고 좋은 시간을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식장에 향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