讓
양보할 양
약 3300년 전에 갑골문이 사용된 이래 한자는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글자의 뜻이 바뀌거나 확장되기도 했지요. 讓(양)은 원래는 꾸짖다, 말다툼하다의 뜻이었는데 역사 속에서 뜻이 반대로 바뀌어 지금은 ‘양보할 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투는 걸 주위에서 보면서 “저 사람들, 다투지 말고 서로 양보해야 할 텐데!” 라고 말하다 보니 讓의 뜻이 ‘다투다’에서 ‘양보하다’로 바뀌었던 건 아닐까요?
讓(양보할 양)은 言(말씀 언)과 襄(도울 양)이 합쳐진 형성자로, 글자가 꽤 복잡해서 24획이나 됩니다. 襄(도울 양)은 강원도 양양군(襄陽郡)과 춘추시대 송나라 왕 양공(襄公)을 쓸 때 빼고는 볼 일이 없는 글자인데, 이 글자가 많이 복잡하게 생겼지요. 讓(양보할 양)을 ‘양보하는 마음으로 도와주겠다고(襄) 말했다(言)’라고 외워 봤자 襄(도울 양)을 다시 외워야 합니다. 차라리 “윗(亠)동네 우물(井)에서 물을 두 모금(口口) 마시다가 옷(衣, 옷 의)이 젖었는데 옆 사람이 말(言)을 걸며 자기 옷을 양보(讓)해줬다”라고 외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사진은 홍콩의 양보운전 표지판입니다. 만약 표지판에 한글로 ‘양’ 한 글자만 적혀 있었다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을 텐데, 한자로 써 놓으니 ‘讓’ 한 글자만 있어도 뜻을 쉽게 알 수가 있네요. 양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중국 신당서(新唐書)에 있는 글귀를 소개하며 이번 글을 마칠까 합니다. “평생 길을 양보해도 백 걸음도 손해 안 본다! (終身讓路 不枉百步, 종신양로 불왕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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