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많다. 교민신문사 편집장 자리는. 홍콩의 한인사회를 위해 만들어진 수요저널. 올해로 창간 20년을 훌쩍 넘겼다. 몸을 담은지 5년이 지났지만 한 점에 불과하다. 다행이라면 변화의 각도를 트는 한 점에 서 있다는 것. 현재 편집장으로서, 홍콩교민으로서 품고 있는 고민을 읊조려본다...)
작은 한인사회와 언론환경 변화의 기로에 서서
글 손정호 편집장
언론 환경은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언론의 다양한 기능을 사회과학 관점으로 바라보던 시절은 20년전 나에게 언론학을 가르쳐주신 교수님들과의 추억으로 지나간 듯 하다. 그때는 주요 신문방송에만 보도되면 큰 영향을 주었고, 그런 모습을 자랑스러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언론사가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뉴스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내 손안에서’ ‘내 마음대로’ 터치하며 누리는 시대다. 철저하게 정보 소비자 우선으로 바뀌었다. 뉴스 제공자의 권위는 이미 사라졌고 유통업자(포털, SNS플렛폼)의 영향이 더 커졌다. 빠른 인터넷 처리속도와 모바일기술, 글로벌로 다양화된 문화, 다양한 언론창구, 개인화된 생활패턴 등은 기존의 언론 성향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언론이 예전처럼 어쭙잖게 전통과 권위를 앞세우면 ‘밀어버리거나’ ‘팔로우 취소’를 당한다. 종이에 잉크도 못 찍고 사라진다.
수요저널도 이런 변화의 회오리속에 있다. 7백만 홍콩인들 사이에서 1만명 조금 넘은 작은 한인사회를 위해 어렵사리 종이신문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에 홍콩에서 3개의 신문사가 문을 닫았다. 대형 일간 신문사 한 곳과 무가지신문 두 곳이다. 남은 신문들도 지면을 많이 줄였다. 예전에는 경쟁이 치열했지만, 지금은 존재가 어려워졌다. 수요저널도 홍콩 경제에 좌지우지되는 한인사회에 의존하며 운영된다. 한인사회가 작아지면 그만큼 광고시장이 줄기 때문에 치명타를 받는다. 때문에 한인사회가 활성화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기업이다.
수요저널은 1995년 한인들에게 홍콩 소식을 빠르게 전하기 위해 주간 타블로이드판으로 만들어져 홍콩정청에 정식 등록된 주간 한글신문이다. 흑백 4면으로 시작해 면수를 조금씩 늘이고 칼라로 전환했다(현 20~24면). 홍콩 주요 언론에 나오는 영어기사, 중국어(번자체)기사, 생활정보를 한글로 번역해 매주 한식당과 한국학교, 교회나 성당 등 한인들이 밀집된 곳에 무표 배포한다. 한국서 온 일간신문 사이에 삽지되어 회사와 가정에도 전달되기도 한다.
홍콩 한인사회도 60여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80~90년대부터 무섭게 성장한 중국 경제에 의존해 홍콩 한인들은 많은 기회를 누렸다. 90년대말 금융위기 시기에도 반등한 환율차로 고국에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무역, 물류, 섬유, 장난감, 전자 등 한 시대를 풍미하던 주요 사업도 있었다. 크게 내세울만한 비지니스가 아니더라도 홍콩인들이 점유하지 못하는 작은 틈새속에서 한인들은 쏠쏠한 수익을 올리며 존재해왔다. 최근 몇년간 뜨겁게 인기를 얻은 한식 요식업종은 미디어의 힘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홍콩인들이 알아주지 않던 한국음식, 한국대중문화, 한국어 등이 홍콩의 새로운 핫비지니스로 관심을 받으면서 한인사회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이너리티 한인들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전에 없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시장성이 확인되는 순간 실리에 밝은 홍콩인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금새 변하기 때문이다.
이미 홍콩인들이 개업한 현지화된 한국식당이 선보이고 있고, 한인 식품점보다 훨씬 더 싼 가격의 식품점들이 체인으로 들어섰다. 일반 슈퍼체인망뿐만 아니라 유명방송국과 연계된 인터넷쇼핑몰도 등장했다. 물론 일반 한인들은 한국 상품들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게 되었지만, 한인사회의 경제를 지탱하는 한인 자영업자들은 더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한인들끼리 경쟁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홍콩인과 붙어야할 전면전도 멀지 않았다.
한인사회에 의존하고, 종속된 교민신문은 언론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할까. 결론을 말하자면 따뜻한 관심과 사랑뿐이다. 너무 뻔하고 나약해 보이는 말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생각은 그렇다.
언론의 가장 큰 미덕이자 무기인 사회감시, 비판 기능은 작은 한인사회를 갈라놓고 벽을 쌓게 만든다. 똘똘 뭉쳐서 힘을 합해도 작은 소수민족 취급받는 마당에, 날카로운 칼날은 한인사회를 더욱 모나게 만들 뿐이다. 전문 정치가는 전무하고, 전문 행정가도 소수다. 딱히 공인이라고 할 사람도 많지 않다. 대부분의 기관장들도 홍콩에서 생업을 겸업하고 잠시 명예직으로 봉사하는 우리 이웃들이다.
교민신문은 교민들이 잘 살 수있게 해주는 현지 정보전달 기능에 최우선을 두어야한다. 홍콩의 정치, 경제변화와 사회현상을 긴밀하게 관찰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한인사회의 소통을 돕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요저널은 그렇게 지내왔다. 선대 편집장(故 이은미 님)의 뜻이 여전히 녹아있다. 홍콩뉴스와 홍콩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며 지면 대부분을 채워왔다. 한인사회의 작은 목소리를 소중하게 담고 한인 자영업자들의 홍보를 위해 애써왔다. 그 방법이 서툴거나 부족한 것은 부족한 현 편집장과 열악한 인력탓으로 돌려달라고 변명드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요저널은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홍콩 자체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으며, 한인사회에대한 사랑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말 홍콩에 처음 왔을 때, 또래 젊은이들은 만나려면 눈을 씻고 찾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학생이 1천명에 육박하고 워홀러도 5백명이나 된다. 현재 한인 인구 10명중 1명은 20대인 셈이다. 이들은 곧 홍콩의 주역이 될 사람들이다. 젊어진 한인사회와 이 젊은이들에게 더 재미있고 더 빠르게 필요한 뉴스, 정보를 전할 것이다. 그것이 수요저널이 제일 잘하는 일이며, 더불어 젊어지는 방법이다.
미래의 주역이 될 홍콩 유학생, 워홀러, 인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의 머리속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변화하는 언론환경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두렵다기보다 설레는 기분이다. 새로 런칭하는 벤처사업가가 된 것 처럼.
어제의 꿈과 오늘의 꿈은 달랐다. 내일의 꿈은 내년의 꿈과 또 다를 것이다. 이것이 희망과 기대로 가득찬 홍콩수요저널 편집장의 독백이다.
홍콩수요저널이 추천하는 집단 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