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맨들의 귀환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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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맨들의 귀환을 기다리며

 

 

 

 

 

한 때는 주황색 공만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며 밖을 뛰쳐 나간 날이 있었습니다. 농구 때문이죠. 싸구려 농구화를 신고도 가볍게 스텝을 밟고 슛을 쏘면 공의 포물선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요. 무릎에 얼마만큼의 탄력을 주고, 손의 스냅을 얼마만큼 주어야 하는지, 공을 언제 놓아야 하는지, 점프 후에는 어떻게 착지해야 하는지… 그러한 기본 동작을 배우면서 제 몸과 성격, 기질을 깨달았습니다.

 

팀워크가 강한 팀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코트 장악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패배한 게임 뒤에 어떻게 마음을 추스려야 하는지, 어떤 선수를 잃으면 안 되는지… 한참 농구에 빠졌을 때는 ‘농구 하나에서 삶의 이치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홍콩의 축구팀과 야구팀, 스쿼시팀, 드래곤보트팀 등을 취재하면서 그들의 열정과 땀을 부러워한 적이 많았습니다. 바쁜 홍콩생활에서 틈나는 시간을 쪼개어 운동을 한다는 것도 부러웠지만, ‘운동’ 하나만으로 형제가 되고, 한팀이 된다는 것은 아직도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가치관과 경제력 추구가 세계 어느 국가보다 강한 홍콩에서 ‘이해타산적이 않고, 계산적이지 않은, 승리를 향한 협동과 팀워크를 꿈꾸는 스포츠맨쉽’은 더 소중한 것 같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저보다 더 운동에 대해 열정적인,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들이 정말 말도 안되는 사건에 휘말려 경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홍콩도 아닌 광저우에서. 그것도 마약이라는 엄청난 사안으로. 무슨 코메디 꽁트를 보는 것처럼 앞뒤없고 억지스러운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미 수요저널에 두차례 보도된 대로 22명의 광동성 야구연합팀이 호주로 원정경기를 떠나던 날 가방에서 상당량의 마약이 발견되어 구속되었고 14명의 구속자 중 12명이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수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홍콩 교민 3명도 모두 보석으로 나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야구 경기특성상 많은 경기용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원정경기에 쓸 용품들을 준비했고, 호주 측 초청자의 부탁으로 선물용품이 섞여 있어 함께 들어 주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된 것이었습니다. 선물용품 속에서 참가 선수들이 생각지도 못한 대량의 마약이 발견됐고, 한달간의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1차 수사가 나오기도 전이기에 중국 공안의 심기를 건들까 취재한 내용을 전부 공개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미 큰 고통을 겪은 가족을 위해, 좁은 한인사회에서 오명이 자칫잘못 번져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저와 홍콩한인야구동우회는 고심하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홍콩한인야구동우회 관계자는 스포츠를 이용한 이번 사건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모였고, 좋은 기량의 선수를 추천하고 선발했는데, 이런 사건에 이용당했으니 얼마나 화나고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순수한 스포츠맨쉽을 마약밀수에 악용한 배후세력들은 반드시 잡혀야 할 것입니다. 호주로 초대해놓고 사라져버린 한인교민(호주 시민권자)도 꼭 잡혀야 할 것입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일 때문에 유니폼이 보기 싫어지는 일이 생지기 안길 바랍니다.

 

30~40대에게 남아있는 소년의 순수한 마음이 무너지지 않길 바랍니다. 억울한 일은 당했지만, 운동을 통한 순수한 마음은 변함없길 바랍니다. 사건이 명쾌하게 완결될 때 까지 앞으로도 몇달은 시간이 더 걸릴지 모릅니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광저우에 머물면서 이겨내야할 일이 많을 겁니다. (보석으로 나온 회원들은 광저우, 심천 등의 자택으로 돌아갔지만 홍콩교민 3명은 출국금지 상태입니다. 가족들과 대책위는 홍콩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선처를 구하고 있습니다.)

 

홍콩야구동우회는 사건 이후 대책위를 통해 모든 회원과 긴밀히 상황을 전하고 뒤숭숭한 마음에 흔들리지 않기위해 경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떳떳하기에, 당당하기에 그리고 야구에 대한 열정은 변함없기에 모임을 계속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홍콩에는 한인어린이야구단이 하나 있습니다. 유일한 이 어린이야구단은 주니어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국위선양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의 선배들인 당신들의 건강한 귀환을 기대합니다.

 

 

글 손정호 (홍함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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