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밤이 내게 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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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밤이 내게 준 것들

글 한지은 (수요저널 인턴기자, 조던 거주)

 

홍콩의 밤이 내게 준 것들

 

글 한지은 (수요저널 인턴기자, 조던 거주)

 

나는 오늘 써내려 가고자 한다. 내가 이곳, 홍콩에서 6개월간 인턴생활을 하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한 번 써내려 가고자 한다.


이제 한국으로 가기 전까지 한 달이 남은 시점에서 그간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대해는 평가하지 않겠다. 후회해서 되돌릴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인턴으로 일한 수요저널에서 내가 맡은 주된 임무는 뉴스취재 및 기사작성, 광고비수금, 영어신문번역을 했었다.

 

수요저널에는 따로 번역기자를 두고 있지만, 기회를 많이 주시는 편집장님 덕분에 나도 번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어번역만으로도 힘든 나에게 기사로 옮기는 과정은 또 다른 일이라서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짧은 집중력과 하루 종일 한두 개도 제대로 못 끝내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도 많이 느꼈다.


‘인턴 생활하면서 번역도 해봤다’ 자랑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침묵’ 속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말하고자 한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 홍콩에 왔을 때 한국에서 학교 부총장님과 교수님이 홍콩을 방문했다. 상공회와의 앞으로의 인턴사업에 대한 협약을 위해서였고 나는 이 일을 기사로 작성했다.

 

생에 첫 기사였던 동시에 나는 부총장님의 성함을 틀리게 적는 실수를 범했고, 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신문은 발행된 터였다. 한국에서 이것을 본 교수님부터 ‘너는 하는 일이 왜 이런 식이냐?’며 한국에서 전화로 호통 당하며 제대로 신고식을 치른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이 사실을 편집장님과 기자님께 알렸고, 두 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사를 수정하시는 데 나는 이때 호통보다 ‘침묵’이 무서움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사실 두 분은 말 수가 많이없는 터라 침묵 속에서 나는 목이 점점 타 들어 갔다. 차라리 ‘욕이라도 해주시면 마음이 편할 텐데…’ 하면서 한껏 쫄아 있었다. 적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한 번 더 확인 후에 기재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러자 “우리 입장에서는 수정하면 되지만, 보는 입장에서 이름 오타는 민감한 문제다”고 말하면서 더이상 언급하지않고 넘어가셨다.


이뿐만이 아니라 취재 후 사진을 엉망으로 찍어왔을 때도 “왜 이것 밖에 못하냐”가 아니라 홍콩의 사진동아리에 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 거길 가면 사진도, 친구도, 영어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는 식으로 돌려 말씀하시는데 사실 되게 감동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인턴이 처음부터 윽박 당했다면 주눅 받을 수도 있었는데 잘했다 못했다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침묵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상 나는 취재가 없는 경우는 나머지 시간은 나의 시간이었다.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신문에 내가 번역한 기사가 기재되지 않더라도 남은 시간이면 나는 번역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내 실력은 형편없어 처음에는 한 문단도 채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영어해석을 겨우 끝내고 나면 기사로 옮기는 과정은 또 다른 산이었다. 기사작성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못하는 일인데다 어려운 일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일이란 진짜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일을 하는 건지, 번역을 하는 건지, 노는 건지 또 눈치는 어찌나 보게 되는지 그렇게 하루종일 회사에 있다 보면 기가 빠졌다. 또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는 그렇게 밤만 되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홍콩거리를 걸었다. 12시가 되도록 정신 없이 걸어 다녔다.


한국에 가고 싶다거나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이런 향수는 아니었다. 낮부터 밤까지 오로지 혼자였던 나는 생각보다 자주 침묵 속에 빠졌고 나에 대한 보상처럼 나는 걸어야만 했다.


혼자하는 일에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좀 달랐다. 사실 처음으로 겪는 고독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비록 싸움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지라도, 혼자만의 시간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예전에 비해 강해졌다 생각한다.

 

고작 20대가 무슨 말을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침묵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밤이 지나면 결국 아침은 온다’였고, 어떤 일도 지나치게 심각해 하거나 우울해할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니 사소한 것도 재밌게 느껴지고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반드시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질병이라는 밤 이별이라는 밤 가난이라는 밤 등등 인간의 수만큼이나 밤의 수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밤을 애써 피해왔습니다 가능한 한 인생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왔습니다. 하지만 밤이 오지 않으면 별이 뜨지 않습니다 별이 뜨지 않는 인생이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밤을 지나지 않고서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정호승-

 

어둠 없이는 빛을 밝힐 수 없고 별을 보려면 어둠이 필요하다. 사실 밤은 또 찾아올 수 있고, 얼마나 길게, 자주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어떠한 밤이 찾아와도 그 안에서 낮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밤의 양면을 보여준 수요저널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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