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부스의 지팡구 /나고야 (那古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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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부스의 지팡구 /나고야 (那古野)



콜롬부스의 지팡구


대항해 시대는 문명의 중심지인 중국대륙과 바다로 끊어져 있어 아시아의 최변방인 시마쿠니(島國), 절해고도 일본을 갑자기 세계의 중심에 놓이게 한다.

대항해 시대의 지리상 발견으로 태평양 항로가 발견된다.

태평양은 대항해 시대의 사통팔달의 십자로다. 아시아의 1급 오지였던 일본섬이 갑자기 십자로 앞에 놓이게 된다. 마치 충청도 골짜기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울 가는 길이 갑자기 빨라진 것과 유사하다.

콜롬부스는 누구인가. 이태리 반도의 동쪽에 베니스가 있다면 서쪽에는 제노바가 있다.

베니스 출신의 마르코폴로가 중국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 "동방견문록"을 150년 후 제노바 모직물 업자의 아들 소년 콜롬부스가 읽고 또 읽고 손에서 떼지 않는다. 그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황금의 섬 지팡구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온다. 1492년 8월, 스페인 여왕을 설득하여 황금의 섬을 찾아 나선다.

마르코폴로가 육로(실크로드)로 동쪽을 향해 갔다면 자신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해로로 서쪽으로 가면 지팡구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콜롬부스의 산타마리아호는 지팡구를 향해 돛을 올렸는데 출항 2개월이 지나서 겨우 도착한 곳은 지팡구가 아니었다. 황금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흰 피부의 지팡구 사람이 아니고 인도인 같은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었다.

콜롬부스는 지팡구에 아직 도착한 것이 아니고 인도의 어디에 도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타마리아호가 지팡구 가는 도중 인도나 키타이(중국)의 어디쯤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는 "인도 사람"(인디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인도에 황금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 도착한 인도땅(산 살바도로)을 뒤로하고 계속 황금의 섬 지팡구를 찾아나섰다.

콜롬부스는 그후에도 수차 대서양 횡단항해를 하였지만 결국 지팡구 찾는데는 실패하고 지팡구 가는 길을 남북으로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다(콜롬부스는 그 사실도 모르고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팡구의 황금 대신 담배, 토마토를 찾아냈다.

비행기는 동해안으로 가로지르더니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금방 육지가 보인다. 이렇게 간단히 갈 수 있는 지팡구를 콜롬부스는 가보지 못했다.

수차례 항해에도 결국 평생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나라 태백산맥같은 일본의 북알프스산맥이 보이는가 싶더니 거대한 분지로 들어선다. 기내방송이 나온다. 비행기는 나고야 지역에 들어선 것이다.



나고야 (那古野)

나고야 벌판, 지금은 名古屋라는 번듯한 이름의 인구 250만의 대도시이다. 이름 그대로 전통 있는 名家라는 뜻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노블하우스(noble house)라고나 할까. 대도시 이름보다 무슨 베이커리 이름 같기도 하고 식당이나 선술집 이름 같기도 하다.

지금도 메이지야(明治屋), 이자카야(居酒屋)등 屋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다. 도시 이름에 屋를 넣지 않을 수 없는 속사정은 1,000년 전부터 써오던 지명 那古野, "저 쓸쓸한 벌판" 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좀 덜 문화적인 지명 때문이다.

1,000년전의 平安시대라면 일본에서 京都의 천황과 귀족이 문화를 만들어 내던 시대이다. 그 때쯤이면 스즈카(鈴鹿) 산맥과 요로우(養老) 산맥으로 京都와 나라, 즉 京畿를 자연적으로 보호해 주는 산맥 넘어 동북으로 갈 생각을 못했다.

어쩌다가 健脚의 고승들이 좋은 절터 찾느라고 동북으로 다녀왔다가 알려준 이야기가 귀족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따름이었다.

동북으로 요로우를 넘으면 거대한 들판(古野)이 있는데 북으로 높은 산이 둘러싸여서인지 강이 몇 개나 되고 토지가 비옥하다. 이 곳은 北高南低로 남쪽은 灣으로 되어있다.

知多반도가 그나마 그 灣을 갈라놓았다. 큰 것이 이세만(伊勢)灣, 작은 것이 미카와(三河)灣이다. 江은 이세만으로 三川이고 미카와만도 이름 그대로 三川이다. 이 들판에 도합 六川이 흘러 내려온다. 中國의 四川省보다 二川이 더 많다.

특히 콩(大豆)의 생산이 좋아서인지 현지인들의 미소(味, 된장)는 빨갛고 오래가서 일본에서 가장 자랑거리이다.

어쨌든 오랜 기간 那古野로 알려진 지명이라 이름을 근사하게 하고 싶은 후대 사람들이 발음을 그대로 두고 좋은 의미의 한자(同音美語)만 바꿀 수밖에 없어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나고야 발음의 "名古屋"인 것 같다.



/ 글 유주열(수요저널 고문, 전 나고야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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