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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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포어(以鳥捕魚) 일본의 역사에서 보면 실권자는 바뀌어도 국왕은 바뀌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텐노”(천황)라고 부르는 국왕의 실권이 있든 없든, 황실에는 오랜 전통이 있다. 그래서인지 황실과 관련되는 것은 역사가 오래되어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을 발견한다. 그중에도 “우카이”(鵜飼)라는 것이 있다. 우카이의 “우”(鵜)는 가마우지라는 검은 오리를 통해 민물생선 “아유”(鮎)를 잡는 것이다. 아유는 우리말로 銀魚(색깔이 은색) 또는 年魚(수명이 1년)라고 부른다. 고기를 잡는 방법이 수십 가지라면 그중 하나가 우카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에서 우카이가 시작된 것은 13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곳곳에 우카이라는 방법으로 은어를 잡아 식생활의 일부로 제공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어업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우”를 키워야하는 특별수고 때문에 우카이는 점차 사라지고 말았는지 모른다. 일본 내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관광용으로 알려져 있다. “나가라”강의 名物 그러나 나고야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기후현의 나가라(長良)강의 우카이는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여기서 잡은 은어는 천황에게 진상하는 것으로 전통이 있다. 지금은 천황이 東京에 살지만 明治유신전까지는 京都에서 거의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기후현의 나가라강은 京都에서 멀지 않는 곳이다. 일본의 동서를 가로막고 있는 北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모여 흘러내리므로 물이 맑고 투명하여 깨끗한 은어가 살기에 적합하다. 그 깨끗한 은어를 “우”를 이용해서 잡아서 황실에 공납해 왔던 것이다. 일본에서도 기후시의 나가라강의 우카이는 가장 유명하다. 옛날에는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도꾸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등 권력자가 관람하였고, 최근에는 영국의 황태자, 찰리 채플린 등도 관람하였다고 한다. 일본 외무성이 외국사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의 하나로 되어있다. 우카이는 주로 밤에 한다. 낮에는 넓은 강에 은어가 흩어져 있으므로 우가 은어를 찾아 나서기가 어렵다. 따라서 밤에 횃불을 켜서 불빛을 보고 은어가 모이게 한다. 은어가 모여들면 우가 잠수하여 은어를 물게 되고 삼키기 전에 어부의 빠른 손동작으로 은어를 내뱉게 한다. 우를 다루는 어부를 “우시오”(鵜匠)라고 부른다. 우는 우시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 된다. 우는 7-8마리가 목과 가슴으로 특수한 줄로 우시오의 손가락과 연결되어 있다. 우시오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다. 황실의 임명을 받은 특수한 직종의 관리이다. 지금은 황실과 관련되는 궁내성의 관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시오가 입고 있는 검은색의 복장은 1000여 년 전 헤이안(平安)시대의 복장이라고 한다. 에보시(烏帽子)라는 까마귀 모습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하반신이 물에 젖지 않기 위해 짚으로 만든 코시미노라는 스커트를 두르고, 발에는 아시나카(足半)라는 반 짚신을 신어 작업 중에 미끄럼을 방지한다. 우카이는 이러한 우시오를 도와주는 배 젓는 두 사람 즉, 나카노리, 도모노리 등 모두 3인이 한조가 되어 움직인다. 카가리라는 횃불이 배에 장치되어 있는데 마츠와리키(松割木) 즉 소나무장작을 태운다. “우”와 “우시오” 우시오는 세습직이다. 대대로 어릴 때부터 우시오인 아버지로부터 직접 배운다. 후계자 될 만한 아이는 배에 같이 태우고 우카이를 눈으로 보게 한다. 우시오의 기술은 우의 목에 감아 놓은 실을 조정하여 우가 잠수하여 잡은 은어를 삼키지 않고 토하게 한다. 줄을 너무 잡아당겨 목 졸리게 되면 우가 죽게 된다. 우시오와 우를 연결하는 줄은 “타나와”(手縄)라는 특수한 줄이다. 일본에서 가장 고급으로 치는 히노키(檜)라는 나무의 목질부를 섬유로 꼬아 만든 작은 줄이다. 우시오는 우가 위급할 때는 줄을 꼰 방향과 반대로 돌리면 줄이 스스로 끊어지게 되어 우의 목을 풀어주게 하여 우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우는 검은 털을 하고 있어 오리보다는 큰 까마귀 같은 인상을 주는데 본래는 바닷가에 사는 새라고 한다. 바다의 생선을 잡아먹는 우를 잡아 우카이로 길들인 것이라고 한다. 우는 대한해협의 쓰시마근처 또는 태평양 연안에 사는 생후 2-3년생의 바다의 새를 생포하여 2년간 훈련시켜 10년간 우카이에 이용한다고 한다. 우가 생포되어 우카이를 하면서부터 알을 낳지 못하므로 매년 새로이 생포한 새로 충당한다. 따라서 우는 특별히 보호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카이는 여름한철 은어가 자라기 시작해야 가능하므로 겨울에는 우가 우리 속에서 운동도 못하고 지낸다고 한다. 우시오는 겨울에는 생선을 구해다 먹이고 배설물을 청소하여 깨끗하게 해준다고 한다. 우가 가장 기뻐하는 것은 자신의 배설물을 청소할 때라고 한다. 본래 바다의 절벽 등에서 살아 배설물이 쌓이는 것을 보지 못한 우로서는 배설물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지 모른다. 또한, 우는 양반의 새라고 불리울 정도로 장유유서 즉, 나이의 서열이 분명하다고 한다. 뱃머리에 앉아있는 것도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새가 가장 나이가 많다고 한다. “우카이” 經濟 언젠가 중국의 계림(桂林)에서 우카이를 본 적이 있다. 계림에 가면 우가 매우 크다. 뱃사람들은 우를 친구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보면 우카이는 본래 중국의 남부에서 시작하여 한반도를 건너와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300여 년 전에 당시 항해술로는 중국과 일본이 직접 교류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우카이 어업을 들어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경제교과서에는 “우카이”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우카이 경제”다. 우리나라 경제는 한때 일본의 우카이 경제라고 주장한 경제학자도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경제는 “우”이고 일본경제는 “우시오”라는 뜻이다. 우리가 열심히 잠수하여 은어를 잡아도 우시오가 줄을 당기면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재주는 곰이 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우리경제가 고도성장기에 일본의 기술, 자본재에 의존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른다. 일본과 국교정상화한지 38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본과는 적자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우카이 경제와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여름의 風物詩 우가 잡은 은어는 천연은어로 값이 매우 비싸다. 여름에 나가라강의 주변에는 은어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일본에서는 대체로 은어를 날 것으로 먹지 않고 구워서 먹는다. 보통 대나무가지에 은어를 아래위로 꿰어서 화롯불의 재에 비스듬히 꽂아 익혀 먹는다. 소금을 뿌려서 구워 먹으므로 소금구이가 된다. 은어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내장도 모두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6월의 은어는 아직 어리므로 뼈도 부드러워 먹기 좋지만 7월이 지나면 뼈가 단단해져서 그냥 먹기가 어렵게 된다고 한다. 기후성(岐阜城)을 돌아 흐르는 나가라강의 맑은 물속에 노니는 은어(아유)를 잡아 구워먹으면 무더운 일본의 여름도 저만큼 달아나고 한여름 낭만의 풍물시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유주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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