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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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정치 제도는 대체로 영국이 통치했을 때의 정치, 입법, 사법을 답습했고 서로 예속되지는 않았다. 특구 성립 후에도, 여러 가지 정치 제도는 중국 대륙과 전혀 다르게 유지되었다.

 

현법 제도성 문서 《기본법》은 덩샤오핑(등소평)이 구상한 일국 양제의 이념을 확실히 보장하고 있고, 정치 정신과 사법의 독립을 얻어 북경의 중앙 정부의 관여를 받지 않는다.

 

“홍콩 사람이 홍콩을 다스리고, 고도의 자치를 한다” 라는 원칙을 따르는 것과 외에, 홍콩은 계속 국방 및 외교, 기타의 자신의 사무를 관리한다. 홍콩은 “중국 홍콩”의 명칭을 사용하고, 계속 국제 사회에 참여하고, 세계무역기구에 참가하고, 올림픽에 참여하였다.

 

 

홍콩 특구, 중국 및 영국 정부는 누차 1997년 후에 일국 양제의 실현할 것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홍콩 내외의 정치인 및 여론, 일국 양제를 질의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예를 들면, 파룬궁(법륜공)이 홍콩에서 공개 활동하고, 북경에서 홍콩의 보통 선거를 쟁취하려는 모습들이 보이고, 홍콩 정치인물이 중국 제도에 대한 의견을 공개 발표하고, 2007년 행정 장관 입후보자 양가걸[통용](중국어 정체: 梁家傑)은 중앙 정부에서 특구 관원 임명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제기하는 등,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질의하게 하는 것은 “일국 양제(중국어 정체: 一國兩制),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각자 한계를 분명히 하여 서로 범하지 않는다.).” 라는 사안이었다.

 

 

정치 제도 개혁

 

2007년 입법회 및 2008년 행정 장관 선출 방법은 자문, 토론 및 "전국 인민 대표 회의"에서 법을 공포를 거친 후에, 2004년 4월 26일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는 2007년 및 2008년에 전면 보통 선거를 실행하지 않을 것을 선포하였지만 결국 보통 선거를 할 것을 승낙하였다.

 

2004년 5월, 정경한[통용](중국어 정체: 鄭經翰), 황육민[통용](중국어 정체: 黃毓民) 및 이붕비[통용](중국어 정체: 李鵬飛)는 각자 자신이 사회자로 있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언론에서 압박을 받는다고 잇달아 발표하였다.

 

2005년 정부는 “정부 제도 발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밝히는 팀의 제5호 보고서(중국어 정체: 政制發展專責小組第五號報告)”를 내놓았지만 민주파 의원에 의해서 비판 받았고, 민주파 의원은 매우 보수적이었으며, 의안은 최종적으로 2/3의 표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통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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