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곤 감독의 매직 플레이 & 매직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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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곤 감독의 매직 플레이 & 매직 라이프

[[1[[아무도 생각지 않은, 아니 기대하면서도 차마 기대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이를 ‘기적’이라거나 ‘마술’이라 칭한다. 지난 해 홍콩이 제 5회 동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강호들을 모두 격파하고 국제대회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 홍콩 축구팬들은 바로 이 단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김판곤 감독의 이름을 연호했다. 홍콩 축구에 “In Kim We Believe”라는 새로운 구호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차범근 감독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데뷔했지만 정강이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4번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로 인해 53경기 출장, 1 어시스트라는 초라한 기록으로 은퇴해야 했던 비운의 선수. 은퇴 후 2년 반이나 지나 감독 겸 선수로 홍콩의 세미 프로팀에 와 눈물젖은 빵을 먹어야 했던 그였다. 히딩크와 견주어 그를 ‘홍콩의 한인 히딩크’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의 게임을 ‘매직’이라 칭하지만, 어쩌면 진짜 매직이란 것은 김판곤이란 사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홍콩에 처음 온 건 은퇴하고 고교팀을 맡아서 지도한 지 2년 반이나 지난 뒤였어요. 이미 선수로 안 뛴지 꽤 됐는데 여기 와서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하려니 참 많이 힘들었죠.” 스물 여덟, 선수생활을 접기에는 아직 너무 젊은 나이였으나 부상으로 오래도록 벤치를 지켜야했던 그는 과감히 지도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2년 반 후, 그는 감독 겸 선수로 홍콩에 발을 딛었다. 코칭스쿨에서 홍콩축구협회 콕카밍 기술위원장의 강의를 듣다 콕카밍 위원장의 눈에 든 것이 계기였다. 60, 70년대는 김대한, 박의천, 김성남 등 쟁쟁한 선수들이 홍콩 리그에서 뛰기도 했지만, 한국의 경제 수준이나 축구가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오른 이후인 2000년대에 홍콩에 온다는 것이 썩 내키는 선택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는 ‘처음엔 솔직히 영어나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왔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4년, 그에겐 쉽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홍콩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입증했고, 당시 한국에서는 아무도 딴 바 없는 P라이선스(지도자 라이선스 중 가장 상급 라이선스)까지 딴 뒤였다. 홍콩에서의 치열한 삶은 원래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역류해 헤엄쳐갈 수 있는 힘이 됐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 아이파크의 코칭 스태프로 합류했다. 2005년 이안 포터필드 감독 사임 후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22연속 무승 기록에서 탈출시키며 4연승을 이끌었고, 또 박성화 감독이 올림픽팀 사령탑에 선임되자 다시 감독대행이 돼 역시 무승에 허덕이던 팀에 승리를 안겼다. 그리고 앤디 애글리 감독 사임 후 다시 감독대행이 돼 5개월이나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아무리 출중한 지도력을 입증해도 넘어설 수 없는 벽(?)이 한국에는 있었다. 그보다 한살 위의 황선홍 감독이 감독으로 취임한 후, 그는 다시 야인이 됐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누구나 지도자의 꿈을 꿉니다. 하지만 속된 말로 저는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국가대표 경력도 없었고 현역시절 화려한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니었으니 지도자로 성공한다는 건 여러 가지로 힘들었지요.”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그는 습관처럼 ‘힘들었다’는 말을 담담하게 내뱉고 문득 말을 멈췄다. 수많은 인터뷰에서 반복했을 이야기들을 다시 되풀이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의 인생사에는 감히 ‘입지전전’이나 ‘불굴’ 또는 ‘인생유전’이란 말을 붙여야 할 드라마가 있고, 그에겐 매직이 있으니까 그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은 짧다. 2008년 12월, 홍콩으로 되돌아온 그는 사우스 차이나팀의 사령탑을 맡았다. ‘2009 홍콩 구정대회 우승’, 08-09시즌 홍콩 리그에서 정상, 홍콩 클럽으로는 최초로 2009 AFC컵 준결승 진출…. 사우스 차이나가 100여년 전통의 명문이라고 하나 홍콩리그 팀이 이런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상승세를 이어 그는 지난 해 여름, 홍콩 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까지 겸임하게 된다. 그리고 2009년 홍콩 동아시아경기대회에서 홍콩 축구 사상 최초로 국제무대 첫 우승컵을 움켜쥐는 기염을 토했다. 동아시아 대회 최종예선에서 북한을 제치고 본선에 오른 것만도 기적적이라 평가받았는데,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강호를 모조리 격파했으니 홍콩 축구팬들이 그를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홍콩에 두 번째 왔다. 두 번의 홍콩행 모두 그에게 크게 달가웠던 것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지금,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한인은 단연 김판곤 감독이다. 흔히 스포츠를 드라마라고 하지만, 김판곤의 삶에는 드라마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그가 다시 홍콩을 떠나는 날, 그가 또 어떤 존재로 웅비할지 그의 인생 3막이 기대된다. P.S 6월 12일, 한국국제학교에서 펼쳐질 ‘대한민국 - 그리스전’ 응원전에 김판곤 감독 또한 참석한다. 2006년보다 선수 구성이 좋으므로 이번 월드컵 16강은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라는 것이 김 감독의 분석. 특히 그리스전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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