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반대시위 한국농민들 홍콩 경찰에 연행 - 홍콩시민들 '감동했다'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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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반대시위 한국농민들 홍콩 경찰에 연행 - 홍콩시민들 '감동했다' '많이 배웠다'

[[1]] 지난 한 주는 WTO 반대 시위에 관한 내용이 연일 홍콩 신문들의 1면을 채웠다. 평화적이고 다양한 시위 모습을 보여주면서 홍콩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던 한국 농민들의 활약도 결국 마지막날 연좌농성 900명 전원 연행이라는 불상사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17일 토요일, 완차이 일대를 완전 마비케 했던 시위는 WTO 반대시위의 클라이막스 이자 홍콩경찰이 우려해왔던 무력충돌의 현장이었다. 1천여 명의 시위자들과 경찰의 무력 충돌은 홍콩에서 수 십 년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시위대는 경찰의 방패와 곤봉 헬멧을 빼앗고 경찰 저지선 돌파를 되풀이 시도했으며 진입을 막기 위해 가져다 놓았던 경찰 밴을 넘어뜨리려 시도하기도 했다. 경찰은 최루탄과 후추 스프레이, 물대포로 응수했다. [[2]] 이미 한 주 내내 시위 강도를 높여갈 것이라고 경고했던 한국농민단체는 이날 경찰과의 무력 충돌을 통해 경고를 사실로 보여줬다. 다양한 시위 방법과 단결력 있는 행동으로 다른 나라의 시위대 모습을 무색케 했던 한국농민단체는 그 동안 지나치게 앞서간다는 WTO 반대단체 내 일부의 비판도 받으면서 거의 독자적으로 시위를 주도해왔었으나 마지막 날 시위만큼은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지정된 시위 장소를 벗어나 완차이 컨벤션센터로 돌진한 것은 역시 한국 농민들이었다. 당초 17일에 예정된 시위에서 경찰은 완차이 화물 적하 지역에 한정해 시위를 허가했었다. 오후 2시에 빅토리아 공원에서 시작된 마지막 날 행진은 무슨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 일단은 평화적으로 시작됐다. 대부분의 시위 진압 특수 경찰이 시위 허가 지역인 완차이 스포츠 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하는 화물 적하 지역에 포진해있다는 것을 파악한 한국농민 시위대는 일부 홍콩 반대 시위자들과 몇몇 한국 농민들의 개별 항의 시위로 경찰의 주의를 분산시킨 다음 산발적으로 헤네시로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자제해왔던 모습을 보여줬던 한국 농민이니만큼 허가 지역을 벗어나지는 않으리라는 홍콩 경찰의 허를 찌르고 우회를 통해 컨벤션센터로의 진입을 노린 것이다. 시위 예상 지역 이외 거리에는 평복 경찰밖에 없었고 이들이 그룹으로 나누어져 달리는 시위대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시위대는 헤네시로드를 거쳐 록하트 로드, 글로체스터 로드까지 진입했으나 컨벤션센터를 바로 목전에 둔 센추럴 플라자에서 결국 시위진압 경찰에 봉쇄되고 말았다. 오후 5시 50분, 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며 강공 진압으로 나섰고 결국 시위대는 오후 8시 글로체스터 로드를 장악한 채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충돌로 경찰 56명을 포함해 모두 116명이 부상당했으며 12시간 동안 완차이 MTR역과 크로스하버터널이 폐쇄됐다. 무력 충돌의 현장이었던 글로체스터 로드는 22시간 동안 통행이 금지됐다. 밤 8시부터 시작된 연좌농성은 새벽 2시 50분, 경찰이 모든 시위자를 연행할 것이라는 방송을 광동어와 영어, 한국어로 방송을 한 후 3시부터 여성 시위자를 끌어내면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연일 계속된 시위와 추운 날씨 속에서 6시간 이상 대치했던 시위대는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끌려나와 경찰차로 구금장소까지 연행됐다. [[3]] 연행이 시작되자 시위대는 순순히 협조적으로 경찰에 연행됐지만 1천여 명의 경찰이 같은 수의 시위대를 한 명씩 데려가는 데는 모두 11시간이 걸렸고 경찰차는 글로체스터 로드와 쿤통 경찰서를 계속 왕복해야 했다. 경찰의 연행이 시작되면서 시위대는 노래를 부르거나 WTO 반대 구호를 외치며 탈진한 기력을 깨우려 했고 일부는 추위 속에 짧은 잠을 청하거나 간식을 먹기도 했다. [[4]] 기온이 11도까지 떨어진 일요일 새벽에는 추운 날씨에 맞서려고 일어서서 운동을 하는 한국 농민들도 있었다. 1주일 내내 계속된 시위 감시와 18시간 지속된 마지막 날의 대치에 기력이 다한 것은 홍콩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8년을 경찰에 근무했다는 한 경관은 경찰이 되고서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다고 말했다. 1천여 명이 넘는 시위자를 연행해 구금했던 홍콩 경찰은 하루가 지난 일요일 저녁 188명을 내보냈다. 구금자는 기소되지 않으면 48시간 이내에 풀어주어야 한다. 홍콩 경찰과 홍콩의 운동가들은 한국농민의 다양한 시위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홍콩 경찰과 언론들은 한국 농민의 시위가 대단히 조직적이고 리더가 상황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고 감탄했다. [[5]] 시위는 행진이라고만 생각해왔던 홍콩의 시민운동가들은 다양한 전략전술로 경찰의 봉쇄망을 돌파하려는 한국 농민 측의 움직임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해상시위도 그 중 하나로 100여명이 일제히 바다로 뛰어들어 경찰의 주의를 분산시킨 다음 나머지 그룹은 컨벤션센터로의 정면 돌파를 시도했었다. 또 본격적인 충돌에 앞서 경찰의 전투력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의 방패를 빼앗은 다음 돌려주기도 했다. 봉쇄에 나선 홍콩 경찰들은 숫적으로 3배 이상 우세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위대보다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비록 무력충돌로 끝나기는 했지만 한국 농민들은 홍콩에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갔다. 당초 홍콩 경찰과 일부 언론을 통해 “한국의 과격한 농민 시위대”“전투적인 농민 시위대” 등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홍콩 사람들도 한국 농민들의 시위를 지켜보면서 한국농민과 WTO반대 입장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 농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홍콩 사람들은 시위를 하는 한국농민들과 악수를 하기도 하고 격려의 의미로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으며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국 농민들의 WTO반대의사에 동조하는 홍콩 대학생들은 기금을 모아 음료수와 과일을 사서 전달하기도 했고 단식농성에 동참도 했다. MTR역에서 나누어주는 리플렛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한국 농민들이 WTO반대에 대한 리플렛을 나누어줄 때 그것을 받지 않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일부는 지지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시위대가 경찰의 후추 세례를 받으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가 물이나 휴지, 타올 등을 주기도 했다. 지난 주말, 완차이 일대를 마비시켰던 시위 후에도 홍콩 시민의 지지는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오전 거리로 나와 연행되어 가는 한국 농민들에게 휴지와 음식 등을 건네주었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한국 농민들은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 -한국 농민들은 시민의 자유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갔다. 그들의 행동은 대단히 의미가 있었고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음 같은 것이 나왔다. (20대 여성) -한국 사람들이 각종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얘기를 계속 여기저기서 해왔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대단히 용감하다. (68세 노인) - 사람들은 한국인에 대해 경찰로부터 세뇌를 당해왔다. 실제로 한국인들의 투쟁은 여기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은퇴한 공무원) 한국 시위대는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거듭 홍콩 시민에게 사과하고 자신들의 반대의사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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