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수상 가옥 타이오 마을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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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수상 가옥 타이오 마을의 어제와 오늘

 
 
 
 
필자가 방문한 평일 오후 타이오 마을의 모습은 고즈넉하고 한가로웠다. 수상 가옥으로 유명한 이곳과는 인연이 없었는지 오랜 홍콩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타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외국에 못 나가는 홍콩 사람들이 자주 찾으면서 다시 뜨고 있는 곳이라 하여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마을은 홍콩의 외곽 지역인 통충에서도 버스로 50분이나 걸려 도착되었다. 홍콩이 이렇게 넓은 곳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어촌으로서의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

모두가 알고 있듯이, 홍콩은 영국에 할양되기 전까지 한 어촌에 불과하였다. 이후 금융업, 제조업이 번영을 맞으며 홍콩의 눈부신 현대사를 써내려갈 때, 농업과 어업의 1차 산업은 점차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타이오 지역은 이미 1,000년 전부터 어촌 및 정박지로서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였고 명나라(1368-1644) 때에는 란타우 북부 지역과 함께 어업이 매우 번성한 곳으로 유명했다. 당시 고기잡이 외에도 농경작 및 염전 사업도 병행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포획되는 어종 중에서는 황조기가 유명하였다. 1950년대초에도 어업이 여전히 번성하여 500여 척의 어선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러나 50년대 말, 산업이 기계화되고 어선은 급속히 증가하였지만 황조기의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어업은 전반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든다. 

결국 어촌으로서의 화려한 과거는 뒤로한 채 지금은 수상가옥과 핑크 돌고래의 관광지로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염전 사업은 1970년대 초에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타이오하면 떠오르는 수상 가옥은 18, 19세기 당시 어민들의 지혜의 산물이었다. 예전에는 수상 가옥마다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작은 선착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그때는 ‘동방의 베니스’라는 칭호를 붙여도 손색이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마을은 화마로 인한 어두운 역사도 지니고 있다. 2000년 7월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100여 채의 가옥이 소실되었다. 당시 화재는 무려 5~60시간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어업에서 서비스업으로 - 가이드와 상인이 된 어부들

지금은 수시로 운행하는 버스나 배를 타고 타이오를 방문하지만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교통편이 매우 불편했다. 야우마테이에서 출발하는 운송선이 매일 두 차례만 운행되었고 센트럴 부두에서 배를 타면 3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오의 독특한 풍광 - 이곳의 아름다운 일몰도 빼 놓을 수 없다 – 은 많은 여행객, 화가, 사진가를 끌어들였다. 또한 많은 홍콩 영화의 배경으로도 등장하였고 2005년에는 한 이탈리아 영화사에서 이곳을 카메라에 담아 가기도 하였다.

90년대 말, 통충과 이어지는 교통망이 연결되면서 타이오는 홍콩 현지 학생들의 야외 학습 장소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2000년 들어 정부는 이곳을 여행지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을 이행한다. 그리하여 수상 가옥을 받치고 있는 지지대들을 철거하고 말레이지아나 미얀마식의 리조트로 탈바꿈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이러한 정책은 지역 사회의 문화를 무시하는 처사로 주민들 뿐만 아니라 각계 인사들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정부의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필자가 방문하여 둘러본 타이오 마을의 모습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느끼기 힘들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마을 주민은 겨우 2,000여명 정도이며 이중 2/3가 노인들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는 만 명이나 거주를 했다고 하니 당시와 비교해 인구의 80%가 감소한 것이다.

예전의 어업 종사자들은 지금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가게를 운영 중이거나 가이드로 전업한 상태다. 건어물, 새우젓, 수공예품, 그리고 길거리 음식과 식당 등 약 100여 개의 점포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일부 어민들은 관광 보트를 운영하는 여행사를 설립하여 약 20여 대의 선박으로 운행 중이다. 생계 유지를 위해 어획 허가증을 반납하고 대신 영업 등록증을 받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타이오를 지키고 있다.



타이오의 과제 - 여행지로서의 개발과 지역 사회 보존 병행

타이오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2000년부터 타이오 지역위원회에서는 1년에 한 번 수상 혼례식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있는  타이오 용선 축제는 단오절마다 거행되는 커다란 지역 축제로서 2011년 중국 중앙 정부에 의해 비물질문화제로 등록되었다. 

이렇게 과거의 전통을 이어감과 동시에 여행지로서 오늘을 맞이하는 타이오는 최근 하나의 역사적 사건과 연계된다. 2018년 10월에 개통되어 홍콩과 주하이, 마카오를 연결하는 강주아오 대교의 건설이다.

 타이오는 이 대교가 지나는 길목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이는 타이오 여행발전국에 있어서는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여행지로서의 무리한 개발은 지역 사회 파괴라는 우려의 시선이 따라다닌다. 일례로 홍콩 정부는 2003년, 2억 홍콩달러를 들여 이 지역을 개발시킴과 동시에  2012년에 들어서는 ‘타이오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투망 어획을 금지시켰다. 5척의 투망 새우잡이 배는 사업을 접었고 배는 중국 대륙에 팔렸다.

홍콩 정부와 여행국, 지역 사회 관계자들에게는 관광 사업 발전과 동시에 지역 사회 보존을 병행해야 하는 숙제가 남겨져 있다. 10년, 20년 후 타이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참고 문헌:
《香港故事》,閔捷, 三聯書店, 2019
《但愿人長久》,黃惠琼,石華堂印刷, 2013
《香港古代史新篇》, 蕭國健, 中華書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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