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문학계의 자랑, 김용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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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문학계의 자랑, 김용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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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 5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30일은 홍콩의 대문호 김용이 94세의 나이로 타계한 지 5주년 되는 날이다. 

 

무협 소설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김용은 한국에도 많을 팬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근래에는 온라인 게임으로 젊은 세대와 만나고 있다. 오늘은 잘 몰랐던 대작가 김용의 삶을 정리하며 그를 기려 본다.  



홍콩의 자랑 김용, 하나 그의 고향은 홍콩이 아니다 


김용은 1924년 중국 동부 져지앙성의 하이닝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사량용(査良鏞)이다. 1948년 샹하이의 언론지인 ‘대공보’는 그를 홍콩 특파원으로 파견한다. 

 

당시 그는 홍콩에서 거의 평생을 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홍콩 국적도 취득하여 공식적인 홍콩인이 되었다.  



김용은 홍콩의 유력지 ‘명보’를 창간한 언론인 출신이다 


언론사에 몸담은 인연으로 홍콩에 오게 된 그는 1957년, 대공보를 사직한다. 

 

이어 장성영화제작사에 잠시 몸을 담는다. 하나 1959년 다시 사표를 내고 신문사 ‘명보(明報)’를 창간한다. 

 

명보는 지금도 홍콩의 유력지로 전통을 계승해오고 있다. 그는 자신이 창간한 명보에 무협 소설을 연재하였다. 

 

신문사에서 언론 관련 업무를 하며 한편으로 사회 및 정치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병행한다. 

 

훗날 그의 이름은 무협 소설가로 대중들에 각인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신문사의 주필로 정치 분야에도 많은 평론을 남겼다.  


 

54세에 절필 선언 후 새 작품을 쓰지 않았다 

 

 

김용은 94세까지 살았지만 54세 이후에는 새 작품을 선보이지 않았다.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녹정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등 총 15종의 무협 소설은 절필을 선언한 1979년 이전의 소설들이다. 

 

이후에는 기존의 작품들을 손보며 개정판을 내놓는다. 1982년이 되어 15종, 총 16권의 무협소설 전집을 출판한다. 그리고, 계속 구작품에 수정을 가하며 신수정판을 선보인다. 

 

절필 선언 후에도 그의 작품 활동은 쉼 없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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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을 휩쓴 ‘영웅문’의 원제목은 ‘영웅문’이 아니다? 


80년대였다. 나와 같은 50대 초중반의 아재라면 기억할 것이다. 

 

김용의 ‘영웅문’, 정비석의 ‘손자병법’과 ‘초한지’등 중국의 무협지 및 고대 전쟁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나는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친구들이 책을 돌려가며 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중 ‘영웅문’은 원래 김용의 ‘사조삼부곡’이 원작이다. ‘사조삼부곡’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영웅문이란 이름하에 1~3부로 각 6권씩, 총 18권이 출판되었다. 

 

2092년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에서 주인공 김태리가 뜬금없이 영웅문을 보는 장면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용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 


홍콩에서 195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까지 약 30년간은 무협 소설의 황금기였다. 

 

독자들의 인기를 얻으며 홍콩의 신문사들은 앞다투어 무협 소설을 연재했다. 이때 활약하던 양대 산맥은 김용과 양우생(梁羽生)이었다. 

 

이들은 무협 소설을 문학의 한 장르로 발전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양우생도 김용처럼 처음에는 언론사에 몸을 담았다. 

 

총 35편의 무협 작품을 남겼는데, 대표작은 영화로도 제작된 ‘칠검(원제:칠검하천산)’과 ‘백발마녀전’이 있다. 

 

‘칠검’은 서극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백발마녀전’은 장국영, 임청하 주연의 영화로 유명하다.  



중국의 등소평, 대만의 장경국도 김용의 팬이었다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은 역사서를 즐겨 읽었다. 그런데, 역사서 외에 무협 소설도 꽤나 좋아했다. 

 

그를 돌봤던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등소평은 홍콩 작가의 소설을 애독했다고 한다. 

 

바로 김용과 양우생의 작품들이다. 등소평은 1973년 복권된 후, 베이징의 정치 무대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지인에 부탁해 당시 중국에서 ‘금서’였던 김용의 소설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장경국은 대만 총통 장개석의 아들로 대만의 2세대 지도자였다. 그 역시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김용의 무협 소설을 읽으며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81세 영국 유학을 떠나 86세 박사 학위 취득 


그는 81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 관영 통신인 신화사는 2005년 5월 23일, “중국 고교 2학년 어문독본 교재에 자신의 소설이 실리기도 했던 김용이 평생 염원인 중국사를 쓰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 고고학, 세계사 등을 공부하러 유학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그 대학 총장이 김용의 무협 소설 ‘녹정기’의 열렬한 팬으로, 적극 주선했다는 것이다.

 

5년 후 김용은 ‘당나라 전성기의 황제 계승 제도’라는 주제로 논문을 완성,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나이 86세가 되던 해이다.  


그의 화려한 업적과 학업에 대한 끝없는 도전은 여러 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다. 

 

홍콩이 자랑할만한 문학의 장인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득 이 거장이 창조한 무협의 세계를 유람하며 그의 문학에 빠져들고 싶어진다.   


< 참고 자료 > 

香港文化導論, 王國華 主編, 中華書局, 2014     

위키피디아, https://zh.wikipedia.org/zh-hk/金庸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0505240809341 

박기수의 함께 보는 중국 인문지리, https://blog.naver.com/pkschina505/221448143541 

邓小平和金庸的缘分, https://zhuanlan.zhihu.com/p/57876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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