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사람들은 왜 매염방을 그리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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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사람들은 왜 매염방을 그리워하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속에 개봉한 영화 – ‘매염방’

최근 홍콩에서는 화제의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가수이자 배우인 매염방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매염방(梅艶芳, ANITA)이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일으켰다. 급기야 개봉이 임박하여 영화 ‘매염방’에 대한 언론의 기사들이 무수히 쏟아져나왔다. 주인공 역의 신인 배우에 관한 얘기부터 영화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 그리고 매염방을 추억하는 기사에 이르기까지.. 이는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개봉 첫 주에 인터넷으로 극장과 상영 시간을 검색해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치 매염방 특별 추모 기간으로 정한 듯 홍콩의 극장가가 이 영화로 도배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벤저스 같은 할리우드 대작이 부럽지 않은 인기였다. 과연 무엇이 홍콩 사람들로 하여금 이토록 그녀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홍콩의 딸’이라 불린 매염방,  ‘그녀는 전설이다! 

우선 홍콩의 지인들에게 매염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홍콩인들 사이에 그녀는 ‘홍콩의 딸’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매염방은 누구보다 자신의 고국 홍콩을 사랑했다.  2002년 콘서트에서 ‘사자산아래(狮子山下)’라는 노래를 부른 후 현재를 내다보는 예언과도 같은 말을 남긴다.

“오늘날의 홍콩은 모두가 어지럽고 혼란스럽다고 느낍니다. 연예인이건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건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지금 홍콩은 여러분들의 자신감과 희망을 필요로 합니다. 자신감만 있다면 우리는 이런 혼란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전에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우리는 극복해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난관의 시대를 함께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이라는 두 글자를 입에 올렸을 때 그녀는 “홍콩은 과거의 내 집이자 영원한 나의 집이다. 나는 절대 홍콩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매염방에 대해 필자의 한 지인은 ‘그녀는 전설이다(She is a legend)’라고 평했다. 매염방은 노래, 춤, 연기 모두가 최고였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재능을 평생 관중들에게 바친다. 무수히 많은 노래를 불렀고 곡 하나하나가 명곡이었다. 21년간 50장의 앨범을 냈으며 무려 435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또한, 300회의 콘서트 기록을 갖고 있고 영화도 50편을 찍었다.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는 성룡과 함께 찍은 ‘홍번구’이다. ‘홍번구’는 홍콩에서 역대 흥행 자국 영화 6위에 올라있는데, 이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중 최고 흥행 기록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염방은 홍콩인들에게 의리의 화신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감한 여성으로 기억되어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9년 천안문 사태이다. 당시 중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 홍콩의 연예인 중 한 명으로서 민주 투사들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해외 이주를 도왔다. 이로 인해 그녀는 중국 대륙에서 활동하지 못했다. 홍콩 민주 투사의 원로 제토 와는 그녀를 ‘정이 있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하기도 하였다.
   
4세때부터 극단에서 노래, 40년의 짧은 삶 - 드라마같은 그녀의 인생

매염방은 1963년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4세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노래를 하러 다녔다. 어머니는 가무단을 창단하여 어린 딸을 데리고 곳곳을 돌며 공연을 했다. 이런 생활로 매염방의 최종 학력은 중학교 2학년까지로 기록되어 있다. 

매염방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1982년이다. 신인 가요 대회에 참가한 그녀는 ‘바람의 계절’을 불러 대상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나이 겨우 18세 때였다. 

그녀는 자궁경부암으로 40세라는 짧은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연예인 중에는 1984년 영화 연분에 같이 출연하면서 가까워진 장국영과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로 지냈다. 두 사람의 각별한 친분은 홍콩인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둘은 90년대 홍콩 가요계의 양대 산맥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생계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화류계에 발을 디디게 한 그녀의 어머니 및 오빠와의 관계는 최악에 가까웠다. 홍콩 사람들에게 매염방의 어머니는 ‘탐욕의 화신’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에서는 어머니와의 갈등 및 민주화 운동이 빠져있어 이를 지적한 이들도 있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도 상영 중이다). 

홍콩인들은 매염방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말한다. 최고의 연예인으로서, 홍콩을 사랑한 홍콩의 딸로서,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의리를 지켰던 매염방. 40년의 짧은 일생을 마감하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되었지만, 홍콩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기억되고 있는 이유이다.


참고자료:
https://www.madamefigaro.hk/art/梅艷芳-電影-冥誕-57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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