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부터 지게 할 수 없다' 소득 절반 사교육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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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부터 지게 할 수 없다' 소득 절반 사교육비로

 

 

결혼한 후 전업주부로 지내온 장펀(34·가명)이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들 왕하오(11)를 영어학원에 보내겠다고 결심한 두 해 전이었다. 남편 월급만으로는 아들 학원비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정수기 판매회사에서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파트타임이지만 자신의 힘으로 아들 과외비를 벌고 있다고 생각하면 흐뭇하다.


장씨의 월 수입은 3000위안(51만원) 정도다. 기본급 2000위안(34만원)에 수당이 붙은 액수다. 여행가이드를하는 남편의 수입까지 계산하면 장씨 부부의 월 소득은 1만3000위안(약 221만원)이다. 베이징시에서는 중류층을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장씨 부부의 생활은 꽤나 빠듯하다. 거주지는 베이징시 차오양구 80㎡ 아파트다.

 

대출 상환금으로 매달 2500위안(42만5000원)을 쓴다. 대출금에 버금가는 지출 목록은 아들의 사교육비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왕하오는 방과후 학습, 영어학원, 보습학원 등에서 사교육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후 학습은 비교적 싼 편이어서 어문, 수학, 농구, 음악(색소폰) 4과목의 한 학기(6개월) 비용이 1820위안(30만9400원)이다. 1주일에 두번 하는 영어 과외는 한 학기에 3000위안(51만원), 학교 숙제를 봐주는 보습학원 학비는 월 1500위안(25만5000원)이다.

 

왕하오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월 2300위안(39만1000원)이다. 그러나 방학 때가 되면 특강 등으로 지출이 더 늘어난다. 지난 겨울방학 때는 12일짜리 영어회화 특강반에 보내면서 3500위안(59만5000원)을 썼다.

왕하오의 하루 일과는 서울의 초등학생을 능가할 정도다. 매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7시30분에 학교로 향한다. 오전 8시에 시작하는 학교수업은 오후 4시45분이면 끝나지만 그는 수업을 2시간 더 받아야 한다. 방과후 수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7시쯤 귀가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선 일주일에 두 차례(목요일과 토요일)는 영어학원으로 향한다.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영어학원에는 어머니 장씨가 동행해 공부하는 자식을 지켜본다. 영어 수업이 없는 날에는 보습학원에서 숙제 지도를 받는다. 이러다 보니 그의 최종 귀가는 매일 밤 9시30분이 돼야 한다.


"축 처진 어깨로 들어오는 아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립니다. 이런 생활을 3년째 해오고 있는데 요즘은 학원에 안 가겠다고 투정도 부립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뒤처질 게 뻔한데요."

 

가계소득의 20퍼센트 안팎을 아들 사교육비에 쓰는 장씨는 "소득의 절반을 자식 교육비에 투자하는 집도 있다"며 "우리 지출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교과 공부 때문에 예·체능이 소홀한 것 같다며 여름방학 때는 왕하오에게 서예, 수영, 중국무술을 공부시킬 것이라고 귀띔했다.


장씨 부부가 이처럼 자녀 교육에 열심인 이유는 뭘까.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겠다는 게 아니에요. 다른 부모들을 보면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커서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장씨는 말 끝에 학부모들 사이에 '출발선에서부터 남에게 지게 할 수 없다(不讓孩子輸在起足包線上)'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식이 성공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최소한 경쟁에서 뒤처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하오 같은 초등학생들의 사교육비는 고교 3년생인 리훙쥔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리는 매일 방과후 런민(人民)대 부근의 학원에서 1 대 1 수업을 받고 있다. 수학, 영어, 어문, 물리, 화학 등 5과목을 1주일에 2시간씩 지도받는 데 드는 비용은 9000위안(153만원) 정도다.

 

리는 자신처럼 1 대 1 사교육을 받는 친구들이 한반에 5~6명은 된다고 말했다. 그가 다니는 학교의 한 학기 학비는 800위안(13만6000원)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학교수업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쟁이 심화되면서 너나 없이 사교육에 눈을 돌리고 있다. 런민대 앞 화위스샹백화점에서 만난 학부모는 "이제 중국에서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학원과 과외는 필수"라고 말했다.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대 등 명문대들이 위치한 베이징시 하이뎬구에는 쉐다(學大)교육, 이지(益智)학교, 쉐얼쓰(學而思)교육, 쥐런(巨人)학교, 신동방교육 등과 같은 사교육 전문학원들이 밀집해 있다.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몰두하면서 중국 사교육 시장의 발전속도는 학교 교육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프랜차이즈 경영협회는 2008년 2590억위안(44조300억원) 규모였던 중국의 사교육 시장이 매년 15퍼센트 이상 성장하면서 2012년에는 4590억위안(78조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도 이제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재력이 자녀 교육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시대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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