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20년 가까이 생활한 나의 아들 진솔 군. 한국 대학에서 2년 재학 후, 올해 8월 군인의 신분이 되었다.
대학 선택 시 홍콩과 한국을 놓고 고민하다가 스스로 고국 진학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군입대라는 숙명도 짊어지게 되었다.
해외에서 줄곧 성장해 온 자녀가 군대 갈 나이가 되면 입대의 고민이 시작된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외국에 장기 거주해 온 자녀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한국어가 잘 통하지 않을뿐더러 문화도 달라 적응하는데 녹록지 않다.
이로 인해 병무청 역시 모든 해외 교포 자녀에게 국방의 의미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자칫 무리한 병역 투입은 전우들에게도 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영주권자는 37세 12월까지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 그리고 38세 1월 1일이 되면 제 2국민역에 편입되어 실질적으로 군 복무 의무가 면제된다.
문제는 38세가 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장기 거주나 영리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권리도 없다는 논리이다.
최근 홍콩 교민 사회의 추세를 보면 회피보다는 군복무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은 것 또한 이 이유 때문인 거 같다.
대신 해외 영주권자의 군입대시 혜택도 주어진다. 면제가 가능함에도 복무의 길을 선택한 것에 따른 보상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징병 검사와 군 입대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내 아들의 경우도 8월 입대를 선택했다.
이유는 18개월 군복무를 마치고 노는 기간 없이 바로 복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적성, 특기, 희망 분야 등을 고려하여 자대 배치를 한다.
진솔이의 경우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것이 고려되었는지 통신병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희망 분야에 대한 반영은 없었다.
셋째, 휴가 기간 동안 해외를 다녀올 수 있는 항공권 지원 및 휴가 일수 연장이 가능하다.
하나 해외 거주자라고 좀 더 편하거나 특별한 곳에서의 군 생활 혜택은 없는 듯하다.
진솔이는 경기도 이천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최전방은 아니지만 전방에 속한다.
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소위 ‘라떼(나 때는 말이야)’와 많이 달라졌다. 하긴 내가 군 복무를 한 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28개월의 군대 기간은 18개월로 줄었다. 훈련병 기간도 4주로 단축되었다.
해외에서 온 입영자들은 1주가 더 추가되는데, 실질 훈련이 아닌 적응 기간이다.
올해 9월 훈련병 퇴소식 때 우리 가족은 논산에 가서 아들에게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 주었다.
그런데 11월에 벌써 이등병 딱지를 떼고 일병이 되었다. 내년 3월에 상병을 단다.
군생활이 단축되니 승진도 초고속이다. 예전에는 내부반에 여럿이 공동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생활관이라 부르는 곳에서 7명의 소수 인원과 함께 지내고 있다.
월급도 이병 68만원, 상병 100만원, 병장 120만원이니 라떼에 비해 요즘 사병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어제는 아들이 중대 회식을 한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병영 밖 갈빗집이었다. 상생을 위해 외부에서 가끔 회식을 한다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환경과 복지도 많이 개선되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후에는 2주의 신병 보호 기간이 주어진다.
매일 한 시간씩 휴대 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 자주 카톡을 주고받고 가끔 통화(영상 통화는 금지)도 한다.
중대장은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자녀들이 안심하고 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부모와 소통한다.
주말에는 늦잠도 잘 수 있다. 아들 녀석은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코딩 공부를 한다며 내 카드도 긁었다.
하나 모든 것이 원칙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솔이의 경우 갓 자대 배치 후 많이 힘들어했다.
아무래도 오랜 타국 생활의 영향이 있는 듯했다. 선임병들의 질타에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저 묵묵히 응원할 수밖에 없는 부모로서는 멀리서나마 아픔을 같이 한다.
다행이 일병을 달고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어느정도 상황이 좋아진 것 같다. 진솔이는 군생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문자로 이렇게 답을 보내왔다.
“가장 긴장이 많이 되는 훈련소 입소를 후 다양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중국에서 살다가 같은 대학을 입학한 훈련소 동기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자대에 와서도 해외 거주 경험이 있다는 배경은 주변인들에게 주목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이를 장점 삼아서 애국심으로 입대를 선택했다는 것을 어필하면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군대에 보낸 나의 아내는 늘 노심초사다. 카페 ‘군화모’에 가입하여 열심히 정보를 공유 중이다.
‘군화모’는 ‘군인 아들 부모님 카페’의 줄임말이다. 무려 8만 4천명이 가입해 있다.
이들은 전우들 못지 않은 끈끈함(?)으로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있다.
해외 영주권자가 군면제의 길을 갈 수 있음에도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다 한다면 부끄럽지 않은 이력이 될 것이다.
병영 사진들에서 애티를 벗고 점점 남자로 변해가는 아들이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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