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장은 홍콩경찰이 보낸 운전자 정보를 제출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니 지난달 15일 저녁 10시 신계(New Territories) 모처의 도로에서 자신의 명의로 되어있는 자동차가 제한속도를 위반하였으니 당시 차량을 운전했던 운전자의 정보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날은 친구들과 사이궁(Sai Kung)에서 모임이 있었고, 저녁 10시라면 모임이 끝난 후 직접 운전해서 귀가하던 중이었다. 그날 그 지역을 통과할 때 뒤에서 강력한 불빛이 번쩍였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아마도 과속단속 카메라가 작동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 사장은 지난 2년간 이미 운전면허벌점이 누적되어 자칫하면 면허를 정지당할 수 있다는 걱정에 운전자의 정보를 제공하기에 앞서 대안을 “연구”해보기로 했다. 그가 온갖 책과 판례를 뒤져서 끝내 고안해 낸 것은 자기부죄(Self-incrimination)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경찰의 요구를 합법적으로 불응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Self-incrimination이란 피의자 본인이 자신의 진술이나 자백으로 유죄를 스스로 입증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론이다. 법의 입장은 피의자가 이런 자기부죄(Self-incrimination)으로 인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묵비권을 보장하고 경찰에 체포되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사장은 결국 이런 이론과 함께 형사사건에 있어서 유죄의 입증책임은 검찰 측에 있다는 점에서 운전자의 신상정보는 경찰 스스로 “성실하게” 수사하여 자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작성하게 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사장의 “전략”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적어도 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훌륭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홍콩에는 김 사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를 행동으로 옮긴 대표적인 사례로써 2007년에 발생한 미국 국적 기자출신 Richard Ethan Latker 씨의 사건을 들 수 있다.
Latker씨는 김 사장과 같은 생각으로 인권법 (Hong Kong Bills of Rights Art. 11)에서 보장하는 피고의 묵비권을 내세워 경찰 측의 운전자 신분정보 제출요구에 불응하였다.
사건은 재판에 회부되었고 검찰은 도로교통법 (Road Traffic Ordinance Cap. 374) 제63조에 의거 특정사건에 있어서 입증책임을 피고 측에 전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경찰이 차주인 Latker씨에게 당시 운전자의 신상정보를 요구한 것은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1심 법원은 경찰의 요구는 자료요청 대상자의 묵비권을 보장하는 인권법에 어긋난다며 Latker씨가 경찰의 요구에 불응한 것은 무죄라며 Latker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상반된 판결이 나왔다. 2심 법원은 인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묵비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공익의 문제와 결부된 경우, 필요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과 함께 원심을 파기하고 1심 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하였다. 하급법원인 재심법원은 상위법원의 해석에 따라 Larker씨의 패소를 결정하였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경우는 유사통지를 받은 차주는 운전자 정보를 제출하거나 제출을 원하지 않을 경우 가중된 벌금을 감수하고 운전자 정보를 제출하지 않을 수 있다(필자가 서울에 체류하던 90년대 당시의 제도로써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이 필요하다).
적어도 이 방법은 법의 본래 취지를 존중하면서도 행정기관의 법 집행도 가능하도록 양측의 입장을 동시에 수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위 내용은 해당 법률분야의 개괄적인 설명을 참고용으로 제공하고자 작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윗글이 법률의견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지 드리며 내용 중 일부 혹은 전부를 특정사안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적용해서도 안 됩니다.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의견이 필요하실 경우 변호사에게 별도의 조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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