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연못>
홍콩 고적 & 문헌 사무처(Antiquities and Monuments Office)는 역사적 흔적을 따라 여행할 수 있는 세 곳의 헤리티지 트레일을 지정, 추천하고 있다.
신계의 핑샨과 롱육타우, 그리고 홍콩섬의 센트럴&웨스턴 헤리티지 트레일이다. 본 칼럼을 통해 3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은 첫 번째 코스로 홍콩의 북서쪽 끝자락에 있는 핑샨 헤리티지 트레일(Ping Shan Heritage Trail)이다.
이곳은 신계 윈롱 지역에 위치하는데, 홍콩 최초의 헤리티지 트레일이다.
1993년에 유적 답사 코스로 지정되었고, 1.6km의 노선으로 이어져 있다.
홍콩의 현지 학교 학생들이 단체 견학으로 자주 찾는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이 트레일의 특징은 신계의 5대 가문 중 하나인 핑샨 등(鄧) 씨의 생활 터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참고로 신계의 5대 가문은 등 씨 외에도 산틴의 문(文) 씨, 셩수이의 요(廖) 씨와 후(候) 씨, 판링의 팽(彭) 씨이다.
일찌감치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등 씨 가문의 이주 역사는 북송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앙시성에서 등 씨의 일부가 광동성으로 이주해 오며 광동 등 씨의 시조가 된다.
그리고 7대손이 핑샨으로 넘어오게 되는데 12세기의 일이다. 이들이 핑샨 등 씨의 1세대이다.
핑샨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는 넓은 대지와 함께 주변에 산수가 수려하고 풍수적으로도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 씨 가문은 핑샨에서 3위6촌(三圍六村)을 이루며 살았다.
‘위’란 성처럼 둘러싸인 마을을 말한다.
신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촌(광동어 ‘와이췬’)은 필자의 예전 칼럼에서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이곳에 가려면 튄마선(Tuen Ma Line)의 끝자락에 있는 틴수이와이(Tin Shui Wai) 역에서 내린다.
C출구로 나가 왼쪽으로 연결된 골목을 끼고 걸어가면 커다란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트레일이 시작된다. 연못도 인근에 있어 이 마을 고유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등씨종사>
먼저 닿게 되는 곳은 등씨종사(鄧氏宗祠)이다. 종사란 일족의 조상을 함께 모시는 사당을 말한다.
등씨종사는 7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1990~1991년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
지금도 제사, 경축, 각종 의례 및 등 씨 일가의 모임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정원 앞마당에 깔린 붉은 바닥은 등 씨 일가가 일찍이 요직에 등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등씨종사는 2001년 12월 법정 고적으로 등재되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 단체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관람 중이었다.
등씨종사는 핑샨 헤리티지 트레일의 주요 유적지이기 때문인지 가장 붐볐다.
여기서 살짝 걸어 올라가면 근정서실(覲廷書室)이 나온다.
핑샨 등 씨의 22대손인 등향천이 그의 부친 등근정을 기리기 위해 1870년에 세웠다.
<핑샨 등씨 문물관>
교육 및 제사의 이중 용도로 사용되었다.
1899년 영국이 신계를 점령했을 당시 임시 경찰서 및 지역 사무실로 쓰이기도 하였다.
1991년 홍콩자키클럽의 기부금으로 보수 및 재건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청서헌>
청서헌(淸暑軒)은 근정서실 바로 옆에 위치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어진 시기는 근정서실보다 다소 늦다.
방문객과 학자들이 묵어 가는 여관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이었던만큼 목각과 벽화 등 화려한 장식을 자랑한다.
이번에 핑샨 헤리티지 트레일을 방문하게 된 계기가 실은 청서헌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학원의 한 중국어 수강생이 보여준 사진 몇 장에 이끌려 방문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청서헌이 핑샨 헤리티지 트레일의 코스 중 하나라는 것은 사전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핑샨 등 씨 문물관 및 헤리티지 트레일 방문객 센터’다.
사실 이곳은 트레일의 시작점이 되어야겠지만 지하철역에서 내려 시작되는 코스의 위치상 마지막 방문지가 되었다.
이 문물관은 원래 경찰청사로 쓰였던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2개의 청사로 나누어지며 작은 박물관처럼 사진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마을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건물 밖에서는 주변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문물관에서는 예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흥미로운 자료들도 볼 수 있었다.
‘3년 8개월간 처참했던 홍콩의 일제 강점기’에서 언급한 홍콩 최초의 신분증 및 일본군이 단일 화폐로 지정한 군표가 전시되어 있다.
<틴수이와이 도서관>
이외에도 옛 우물터, 양후 템플, 취성루탑도 트레일 코스 중 하나이다.
양후 템플은 송나라 말기의 충신 양량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매년 음력 6월 16일에 탄신 축하 의식이 치러진다.
마을 북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취성루(聚星樓)탑은 현존하는 홍콩 유일의 고적 탑이다.
등 씨 7대손 등언통이 세웠다. 6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으며 2001년 법정 고적에 이름을 올렸다.
트레일 주변에는 식당들도 많다. 반나절의 여행을 마치고 식사를 하며 쉬어갈 수 있다.
나 역시 인근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틴수이와이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도서관은 비교적 최근인 2013년에 문을 열었다. 옥상 테라스에서는 내가 다녀간 트레일 코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오늘 짧은 유적 순례의 화룡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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