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홍콩 거리에는 무허가 노점 식당이 서민들의 인기를 얻었다.
목판으로 만들어진 노점상 아래에는 바퀴가 달려있어 이동식 식당의 기능을 했다.
이것이 바로 추억의 음식이자 홍콩 서민 국수인 체자이민(車子麵)이다.
경제가 발달하기 이전의 홍콩에서는 식객들의 주머니가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단 돈 1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만족스럽게 배를 채워준 것이 체자이민이었던 것이다.
국공내전의 전란이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막을 내릴 때 즈음인 1949년, 많은 대륙인들이 홍콩으로 건너온다.
이들은 새로운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생계를 모색해야 했다. 이중 목판 리어커를 개조하여 이동식 국수를 팔기 시작한 타지인들이 생겨났다.
당시 비슷한 운영의 형태로 장사를 한 곳이 다이파이동이었다.
정부는 고정된 장소에서 노점상을 하는 식당에 다이파이(大牌), 이동식 노점상에는 시우파이(小 牌)라는 영업 허가증을 발급했다.
‘파이(牌)’는 상표를 뜻한다. 즉, 체자이민은 시우 파이당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무면허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로 인해서 체자이민 상인들은 단속 나온 경찰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경찰이 뜨면 ‘자우구이(走鬼)!’를 외치며 즉시 장사를 접고 내빼야 했다. ‘자우구이’는 ‘짭 새가 떴다, 튀어!’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겠다.
체자이민이 ‘자아구이당(走鬼檔)’이라고 불리기도한 이유가 여기서 유래되었다.
하나 단속반만 없다면 노점 식당가에는 정겨운 서민들의 모습이 연출되었다.
작가 쉿게이는 그의 저작 ‘홍콩 100년(香港百年)’에서 체자이민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렇게 묘사했다.
“7,80년대에 출생한 홍콩 사람들은 자우구이당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특히 공공 주택에서 자란 사람들은 늦은 밤 애완견을 데리고 야식을 먹으로 나오곤 했는데, 길가에는 온통 이동식 노점상이었다.
가장 많았을 때는 20개의 노점상이 넘었고 갖가지 먹거리로 가득했다.
죽과 면을 파는 곳을 포함해, 어묵, 꼬치, 체자 이민, 통수이(전통 디저트), 튀김, 까이단자이(계란빵), 굴전, 철판구이 등 마치 대만의 야시장을 방불케했다.
특히 여름이면 거의 매일 밤 나가서 배부르게 먹고 잠든 추억이 있다”
체자이민은 저렴한 비용으로 즐기는 서민 음식이었지만 이면에는 다이파이동과 마찬가지로 위생 문제에 노출되어 있었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체자이민은 점차 거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지금은 상가 안의 식당, 차찬팅, 때로는 고급 음식점에 흡수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국수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어묵, 돼지 선지, 유부, 소고기 내장, 돼지고기 내장에서 근래에는 소고기, 오징어, 만두, 버섯 등 다양화, 고급화되었다.
체자이민은 저렴하게 먹는 국수이지만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자 장점이다.
보통 2~4개의 토핑을 넣게 되는데, 일부 점포에서는 5~7개의 선택도 가능하다.
국물과 면도 내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다. 국물은 카레 맛, 고깃국, 쉰라(시고 매운 맛), 마라, 맑은 탕 등이 있다.
국물 없이 소스와 토핑만 넣어 먹는 체자이민도 있다. 면발의 종류는 라면, 굵은 면, 우동, 쌀국수, 스파게티 면, 일반 국수 등 다양하다.
토핑 선택이 중요하다. 어묵, 돼지 선지, 무우, 돼지 내장, 돼지 껍질, 표고 버섯, 닭날개, 오징어, 소뱃살, 시우마이, 완탕, 게살, 만두 등 가짓수가 휘황찬란하다.
직접 체자이민을 만나 보러 삼수이포로 향했다. 손꼽히는 식당 만키(Man Kee, 文記) 체자이민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미슐랭 맛집이며 문 앞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백종원 씨도 이곳에 들러 식사하는 모습을 유튜브 채널에 올린 적이 있다.
삼수이포역 D2출구에서 약 3분 거리이다.
홍콩에서 가장 붐비는 1시 점심 시간을 피해 12시가 좀 넘어 도착했다.
만키는 본점 옆으로 3개의 분점이 늘어서 있었다. 본점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다행히 길지는 않아 5분 정도 기다린 후 내 차례가 왔다.
앞에 펼쳐진 토핑들 중 뭘 선택할까 잠시 고민했다. 유부, 어묵, 닭날개를 골랐더니 종업원이 그렇게 적게 먹냐고 해서 춘권(길다란 어묵)을 추가했다.
면은 노랗고 굵은 면발의 야우민(油麵)으로 했다. 사실 면 이름은 몰라도 된다. 토핑 옆에 대기하고 있는 면 종류 중 먹고 싶은 것을 가리키면 된다.
가격은 60불이 나왔다. 그런데 값을 먼저 치르고 나니 내 국수가 안 보인다. 종업원이 잽싸게 바로 옆 분점에 갖다 놓은 것이다.
자리에 앉아 궁금한 국물을 먼저 떠 먹어 보았다. 내공이 느껴지는 깊고 진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면, 토핑과 어우러진 전체적인 맛의 조화가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車子麵’을 검색어로 해서 구글이나 오픈라이스에서 거주지 주변의 체자이민 식당을 찾아보자.
홍콩 서민들의 추억과 애환이 담겨있는 체자이민을 만나 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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