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홍콩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은 홍콩의 현대사를 엿보게 해주는 책 <13·67>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사실 추리 소설인데 여러 추리 소설의 장르 중 사회파 추리 소설에 속한다.
사회파 추리 소설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일어나는 범죄를 사용해서 사회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소설이다. 글쓴이는 찬호께이라는 홍콩인 작가인데 일본 추리소설의 신으로 불리는 시마다 소지로부터 “무한대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책을 우리 학원의 수강생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사건이 홍콩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제목 <13·67>은 홍콩의 1967년부터 2013년 사이 발생한 6개의 에피소드를 다룬 것으로 전설적인 형사 관전둬와 그의 애제자 경찰인 뤄샤오밍 두 사람이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6개의 사건과 이 두 인물은 허구이지만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은 대부분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6개의 사건의 처음 이야기는 1967년이 아닌 2013년으로, 사건이 시대의 흐름과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첫 에피소드는 2013년에 시작되어 마지막 6번째 사건은 1967년에 끝이 나는데 영화 <박하사탕>에서 이야기의 전개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은 구성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끝나는1967년에 발생한 사건이 소설 첫 부분에 등장하는 2013년의 사건과 연결되면서 글 마지막에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이루어진다.
필자는 이제까지 몰랐던 홍콩의 현대사 및 배경을 영화의 장면들처럼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책의 앞부분에 주인공 관전둬를 소개하는 글 중 이런 내용이 있다.
“관전둬는 1960년대의 좌파폭동을 겪었고 1970년대의 경찰과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 분쟁을 버텨냈으며, 1980년대의 강력범죄에 대항했고, 1990년대의 홍콩 주권 반환을 목도했으며, 2000년대의 사회 변화를 증언하고 있다”. 홍콩 사회의 1960대~2000년대의 모습을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짚는 문장인 것 같다.
이중 ‘좌파폭동’을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소개하자면 “1967년 친중국 성향의 좌파들이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아 홍콩 정부에 대항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초기의 파업 시위에서 폭탄 설치, 총격전, 암살 등으로 격렬해졌다. 폭동은 6개월이나 지속됐고 흔히 ‘67폭동’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으로 51명이 사망하고 800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무고한 시민이 사제폭탄 테러사건에 휘말려 사망한 일이 있었는데, 피해자 중에는 여덟 살, 네 살의 남매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홍콩 사회의 혼란과 많이 닮아있는데 시위 주도 세력이 지금은 ‘반중’이지만 ‘67폭동’은 ‘친중’이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1970년대의 경찰과 염정공서의 분쟁은 필자가 매우 부러워하는 홍콩의 독립된 반부패기구 염정공서의 탄생 즈음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 소설의 5번째 단편 추리물 “빌려온 공간”은 염정공서의 탄생 배경을 다루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1970년대의 경찰과 염정공서의 분쟁’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1960~1970년대 홍콩은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홍콩 정부는 1974년 ‘염정공서’를 설립해 각계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는 역할을 맡겼다. 1977년 염정공서가 ‘야우마테이 과일시장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00여 명의 경찰관이 관련된 것이 밝혀져 경찰과 염정공사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결국 홍콩총독이 특사령을 발표해 사건을 진정시켰다.” 염정공서 가 설립되었을 때 경찰들과의 크고 작은 마찰과 충돌이 있었는데 이런 갈등을 겪으며 염정공서는 오늘날의 청렴한 홍콩을 청렴하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소설 <13·67>은 추리 소설 특유의 가독성과 흡입력뿐만 아니라 이런 홍콩의 현대사도 읽게 해 주는 보너스도 제공한다. 사건 발생 지역이 정관오, 노스포인트, 센트럴, 몽콕 등 우리 교민들에게도 익숙한 곳으로 필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장소를 방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의 유명한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가 진행하는 팟 캐스트 ‘빨간 책방’에서도 이 책이 소개가 됐는데 그는 이 소설을 영화로 제작한다면 유덕화가 주인공을 맡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답답함의 끝이 안 보이는 홍콩 사회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요즘, 이전 홍콩의 모습을 담고 있는 책 <13·67>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글을 읽으며 여러분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홍콩의 예전 거리를 걷는 기분을 체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