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HKU SPACE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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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HKU SPACE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며



일요일 오전 카우룬 베이의 한 강의실. 많은 이들이 늦잠을 즐기고 있는 휴일 황금 시간에 성인 남녀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삼삼오오 교실로 들어온다. 

이중에는 4년동안 제일 먼저 와서 다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60대 노부부도 있다. 이윽고10시가 되면 필자가 진행하는 한국어 고급반 수업이 시작되며 교실은 세 시간 동안 학생들의 진지함과 열정으로 채워진다.

필자가 10년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HKU SPACE의 한 교실 분위기를 소개해 보았다. HKU SPACE는 ‘HKU School of Professional and Continuing Education’의 약자이고 중국어로는 ‘홍콩대학 전업진수학원(香港大學專業進修學院)’이다. 우리나라의 대학 기관 중 사회 교육원이나 평생 교육원에 해당된다. 

 
2010년 필자가 HKU SPACE에 문을 두드렸을 때는 한국어 교사가 6~7명 이었으나 지금은 30명 가까이 될 정도로 급증하였다. 채용되었을 당시 필자의 경력은 미천했지만 교육학 박사 과정에 있었던 것이 인정되어 운좋게 한국어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채용된 교사들을 보면 한국의 명문대 출신이거나 석사 이상의 소지자가 많고 공채시에는 30~40명이나 되는 지원자가 원서를 낸다고 한다.

HKU SPACE는 홍콩대학교라는 명성에 걸맞게 최고의 대우와 엄격한 관리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어 프로그램 과정을 책임지는 전임교사가 수시로 교실을 다니며 교사들의 수업을 청강하고 피드백을 전달한다. 

매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을 평가하여 그것이 점수로 환산되는 강의 성적표가 나온다. 또한 학생 대표가 교사 및 학교 운영진 앞에서 수업에 대한 소감과 건의를 허심탄회하게 전달하는 확대 회의도 운영되고 있다. 

필자는 이런 홍콩의 최고 기관에서 다른 우수한 교사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감사함을 느낀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해 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서 국제학대학원에서 중국학을 공부할 당시 옆 건물의 한국어학당을 종종 기웃거렸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어학당의 한 교사를 만나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한 준비 및 조언을 듣기도 했었다. 결국 10년간의 직장 생활 중 홍콩에서 일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향후 12년은 교육쪽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 및 한국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필자는 수업을 하다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갖는 홍콩 사람들에게 문득문득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이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이라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와서 수업을 듣는다. 특히 누구나 편하게 쉬고 싶어하는 일요일 오전에도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의아함과 함께 이들의 열정에 존경심 마저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기왕이면 이들에게 즐거운 수업이 되도록 신경쓰고 있다. 피곤한 직장인들이고 한번에 세 시간의 수업이 이루어지는 만큼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웃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인데 세상에는 이런 직종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것이 작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보상일까? 때로는 학생들로부터 즐거움을 선물받기도 한다. 한번은 한 여학생에게 “주말에 어떻게 보냈어요?”라고 물어봤다. 그런데 “남자 친구와 샤워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게 아닌가. 주위도 술렁거렸다. 

어라, 재미있는데. 좋아, 오늘은 19금이다. “서로 등도 밀어줬어요?” 등을 미는 동작을 취하며 물어봤다. “네? 아니요. 남자 친구와 싸워했다구요.” 알고 보니 ‘싸웠어요’를 ‘싸우다’와 ‘하다’를 섞어 ‘싸워했어요’라고 잘못 말한 것이다. (몇 주 후 이 학생은 결국 남친과 헤어졌다는 슬픈 소식이 ㅠㅠ)

이 이야기는 필자가 이후 수업 시간에 자주 소개하는 레퍼토리가 됐다. ‘멋있어요’를 ‘맛있어요’로, ‘선생님’을 ‘생선님’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실수 리스트에 추가시키면서 말이다. 

필자 외에도, 이렇게 현지인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 문화와 한국을 소개하는 언어 전도사들이 홍콩의 교육 현장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어 교사들의 노고에 격려의 박수를, 그리고 이 시간에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사전을 뒤적이는 홍콩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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