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자원 봉사자들의 손길로 탄생한 깜틴 벽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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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자원 봉사자들의 손길로 탄생한 깜틴 벽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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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중고등학교 교사였던 궉인맹 씨>

한 교사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홍콩 사람들이 한국 여행시 가장 많이 방문하는 세 곳은 서울, 부산, 제주다. 

 

이중 부산의 경우 최근 눈부신 변화에 힘입어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부산의 여행지 중 감천 벽화마을은 꼭 방문해야 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형형색색의 벽화들이 마을을 수놓은 곳이다. 그런데, 홍콩에도 이에 버금가는 마을이 있다. 

 

윈롱 깜틴에 위치한 벽화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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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틴은 500년 역사의 전통 문화를 간직한 마을이다. 옛 고을의 분위기는 근래 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에 성공한다. 

 

40점이 넘는 벽화가 동네의 미관을 바꿔놓은 것이다. 소위 예술의 마을로 불리는데, 많은 이들이 인증샷을 찍는 곳으로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錦田壁畫村’,’Kam Tin Mural Village’으로 검색해보니 수많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MTR 깜셩 로드(Kam Sheung Road) 역 B출구로 나와 도보로 3분 거리다. 

 

깜틴이 벽화촌으로 탈바꿈한 사연은 한 교사의 우울증 치료에서 유래한다. 

 

홍콩의 중고등학교 교사였던 궉인맹이 두 학생을 데리고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하나하나 붓칠을 더해 지금의 벽화촌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중년의 궉씨도 자연스럽게 우울증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대표적 작품 중 하나는 마을 입구에서 볼 수 있는 길경상화(吉慶祥和)라는 벽화다. 

 

‘길경’은 마을 이름이지만 경사스럽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화’는 상스럽고 화목하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마을의 복과 화목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흥겹게 용춤을 추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편에는 흥이 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길경상화에 참여한 인원은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벽화촌에서 가장 긴 작품으로 완성에만 두세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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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촌의 아이디어는 한국에서 


벽화촌의 아이디어를 탄생시킨 교사 궉씨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한 때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어느날 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현지에서 벽화 마을을 방문하게 된다. 

 

궉씨는 미술 작품들이 지역 사회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한국의 어느 곳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아마 부산의 감천마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궉씨는 시각 예술가였기 때문에 그림에 조예가 깊었다. 

 

그녀는 ‘벽화 마을을 홍콩에도 도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게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궉씨는 홍콩교사드림기금의 도움을 받아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다. 

 

우선은 다섯 작품으로 시도를 한다. 2017년 10월, 두 명의 학생을 대동하여 붓을 들고 찾아간 지역이 윈롱의 깜틴이다. 

 

역사가 유구하고 옛 풍습을 보유한, 그리고 교통의 편리함등으로 점찍은 곳이다.   


그녀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첫 작품은 ‘궉씨 할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인데, 모친의 자애로운 미소를 담아냈다. 

 

얼마 후, 궉씨 프로젝트의 소식을 듣고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적극 협조하게 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림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지원자도 순식간에 200명이 넘게 불어났다. 


참가자들은 어떤 보수도 받지 않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회사원, 학생, 퇴직 부부,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 등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때로는 비를 맞으며 한 획 두 획 완성해 나갔다. 

 

한 유명한 유채화 관련 업체는 소식을 듣고 그림 도구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주민과 자원봉사자가 하나가 되어


무엇보다도 벽화촌의 구상을 현실로 옮기는 데에는 마을 사람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민들이 하나같이 ‘우리집 담벽락에는 안돼’라고 하면 붓칠 하나 할 수 없게 된다. 

 

다행히 감틴 마을연합회가 궉씨와 주민들 사이에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날씨였다. 

 

덥고 습한 날씨에 때때로 쏟아지는 소나기로 작업이 중단되는 상황이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하나 이런 어려움들도 참여자들의 열성을 막지 못했다. 

 

2019년 5월, 19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감틴 내의 4개 부락에 총 32폭의 그림이 탄생한다. 

 

작품에는 감틴 마을의 풍경과 풍습, 인물, 문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등 따뜻함과 사랑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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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벽화촌은 인지도를 높이며 그 다음의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회화 작업을 통해 사회로의 진입을 돕고 싶다는 구상으로 홍콩대학에서 공동 작업의 제안이 들어오기도 하였다.

 

2020년에는 벽화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참여 시민들이 각각 한 획씩 이어 나가 사회 구성원들의 조화를 꾀하는 활동이었다.


궉씨는 고속철도가 홍콩에서 중국대륙과 연결되며 현지에 이 문화를 도입하고 싶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벽화촌은 세계 여러 지역의 여행 트랜드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국도 부산뿐만 아니라 곳곳에 크고 작은 벽화촌이 생겨나고 있다. 

 

여행시 한국과 홍콩, 혹은 다른 나라의 벽화촌이 각각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광 테마가 될 것 같다.  


<참고 자료>

《香港故事》, 閔捷, 三 聯書店有限公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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