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중화권의 쎈 언니들,중화권의 공처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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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중화권의 쎈 언니들,중화권의 공처가들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편은 없다, 존중하는 남편이 있을 뿐” – 엽문

“세상에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편은 없습니다. 아내를 존중하는 남편이 있을 뿐입니다.” 이 무슨 약해빠진 공처가의 자기 합리화일까? 

홍콩 영화 <엽문>에 나오는 대사이다. 어떤 무술의 고수가 대결을 위해 엽문을 찾아와 그의 약점으로 ‘공처가’ 운운하며 신경을 건드린다. 이에 엽문은 위와 같은 명대사(?)를 남겼다. 필자는 당시 이 명언을 들으며 무릎을 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중화권 언니들은 쎄다. 당대를 주름잡는 최고의 무술 고수도 아내 앞에서는 힘 한 번 못 쓰는 공처가일 뿐이다. 중화권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여자들에게 순종적인 편이다. 좋게 말하면 엄청 잘하고 것이고 반대로 얘기하면 기가 다소 꺾여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홍콩에도 남성들로부터는 초식남 이미지가 느껴진다.


모택동 “세상의 반은 여자가 받든다” – 여성의 사회 노동 권장

모택동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후 공산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정책들을 펼친다. 인민들의 노동력을 중시한 그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적극 권장했다. ‘세상의 반은 여자가 받든다’는 주장을 통해 부녀자들을 부엌 밖으로 나오게 하여 남자들과 함께 노동 전선에 세워 놓았다. 

1950년 5월에는 새 혼인법도 발표되었는데 부권으로부터의 여성 해방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일부다처제나 매매혼 같은 봉건적 혼인 제도를 폐지하고 혼인의 자유, 일부일처, 남녀평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1959년에는 전국의 여성의 95%가 국가에서 부여한 노동에 종사하였다. 

하지만, 사회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곳곳에서는 움추러드는 남자들이 양산되었다. 중국어로 공처가를 ‘치관옌(妻管嚴)’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기관지염을 뜻하는 ‘치관옌(氣管炎)’과 성조만 다를 뿐 발음은 같아서 ‘공처가’를 ‘기관지염 환자’로 빗대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런 공처가들이 많은 사회 풍조를 풍자하는 우스갯소리도 많다. 한번은 공처가 확대에 국가적 위기를 느낀 정부에서 공무원을 파견하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치관옌들이 존재하는지 조사토록 했다. 한 회사에 파견된 공무원이 “아내가 무서운 사람들은 앞에 나오고, 무섭지 않은 사람은 뒤에 서시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모두가 우루루 앞에 나가 섰는데 한 명만 유일하게 뒤에 나가 섰다. 공무원은 크게 감격하여 “그래도 우리 나라에 아직 희망이 있군요! 당신은 정말 아내가 두렵지 않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뒤에 선 사람의 말 – “제 아내가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자기 주장 강하고 자존심 높은 꽁노이(港女)

홍콩에 오래 살아보니 이곳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현지어에 ‘꽁노이(港女)’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홍콩 여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종종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도도하며 자존심 높은 홍콩 여자라는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우리 학원 뒤에는 ‘샤오라쟈오(小辣椒)’라는 이름의 중국 식당이 있다. 샤오라쟈오는 ‘작은 고추’를 말하는데 얼굴은 예쁘장한데 톡톡 쏘는, 한 성깔하는 여자를 부르는 중국어이기도 하다. 

홍콩의 경우 경제가 크게 부흥하던 60~70년대에 많은 여성들이 이미 사회에 진출하여 활동하였다.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지면서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 

필자는 한국어를 배우는 홍콩 여성들과 한국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단체 관람한 적이 있다. 관람 후 소감을 물으니 홍콩에서는 영화와 같은 남녀 불평등 문제가 없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고 공감이 안된다고들 하였다. 

홍콩 여성들의 사회적 입지가 남자들과 거의 동등하고 자존심 또한 높다보니 이들을 만족시켜줄 남성 상대를 찾기도 쉽지 않다. 거기에 더해 홍콩은 남녀의 성별 불균형이 심한 편이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45%와 55%로서 상당수의 여성은 외부에서 신랑감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다. 결국 최근 중국 본토 남자와 결혼하는 추세도 크게 증가했는데, 홍콩의 국제 결혼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3%나 된다. 


여성에 헌신적인 홍콩의 남성들

그런데 필자가 관찰한 또다른 측면은 홍콩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꽤나 헌신적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9시를 훌쩍 넘겨 꽤 늦은 시간이다. 이때 남편되는 분들이 기사가 되어 밖에서 늘 대기중이다. 또한 이제까지 만났던 홍콩 사람들을 통계적으로 봐도 집에서 요리를 하는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많았다.

홍콩에서 715km 떨어진 곳에 또하나의 중화권인 대만이 위치해 있다. 필자는 94~95년 대만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데 그곳도 남성이 가사일에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필자의 부모님 또한 80년대 초, 대만에서 1년을 거주하신 적이 있다. 당시 어머니는 빨래를 널러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역시 빨래를 널고 있는 맞은편의 아저씨과 눈이 마주쳐 민망했었다고 했다. 현재 홍콩의 행정장관은 캐리 람, 대만의 대통령은 차이잉원으로 둘 다 여성이다. 


필자가 종사하는 한국어 수업은 90% 이상이 여자이다. 이들을 남성 혼자 상대하는 필자로서는 수업 한 번 하고 나면 기가 확 빨리는 느낌이다. 꽃밭에서 일한다고 부러워하는 남성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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