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노동 시장의 10%를 담당하는 해외 가사 도우미들
홍콩을 방문하면 주말에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 있다. 동남아 출신의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모여 있는 장면이다. 이들은 주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출신들로 소위 ‘헬퍼’라 불리우는 가사 도우미들이다. 동향 출신들끼리 모여 휴식을 취하거나 노래, 춤, 체육 활동 등을 하며 휴일을 보낸다.
정부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20년 기준 홍콩에서 일하는 해외 가사 도우미 인력은 총 373,884명이다. 홍콩 인구가 대략 750만이니까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5%에 달한다. 그리고 이는 홍콩 노동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이중 필리핀 출신이 207,402명, 인도네시아는 157,802명으로 각각 55.4%, 42.2%에 달한다.
홍콩에서 해외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는 홍콩 경제가 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때였다. 많은 여성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며 맞벌이 가정들이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가사 일을 맡아 줄 인력이 필요하였는데 이 역할을 담당한 것이 필리핀 도우미들이다. 이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도 인력을 충당하면서 홍콩의 해외 가사 도우미는 점차 다원화되었다.
1970년대 유입되기 시작, 홍콩의 권익 보장 제도가 큰 장점
홍콩의 노동 법률하에서 해외 가사 도우미들은 현지의 일반 노동자들과 동등한 법률적 권익을 누린다. 주간 휴무와 법정 휴일이 보장되며 유급 연차, 질병 보조금, 장기 근속 수당과 출산 보장, 해고 수당 등의 혜택이 이에 포함된다. 해외에서 4년간 일한 적이 있는 한 도우미는 홍콩이 대만, 싱가폴 대비 급여가 높고 보장 제도가 더 규범화 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홍콩특별행정구는 ‘가사 도우미 계약 표준’을 제정하여 이들을 고용시 최저 임금 보장 및 고용인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한편 식사 보조금, 무료 의료 혜택, 무료 거주와 고향 방문 시 왕복 항공비 지급을 제도화하하고 있다. 홍콩 노동법에서 지정한 가사 도우미의 월 최저 임금은 4,630홍콩달러(한화 약 70만원)이다.
홍콩 입법회에서 발표한 2017년의 한 연구 보고에 따르면 해외 가사 도우미들은 홍콩 여성들의 경제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가정 생활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등 경제 발전에 중대한 공헌을 하고 있어 홍콩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홍콩의 잘 정비된 보장 제도 및 포용적이고 다원화된 사회 특징은 많은 해외 도우미들을 끌어들이는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현재 해외 가사 도우미들의 숫자는 20년 전에 비해 두 배가 되었다. 홍콩 사회의 고령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만큼, 앞으로 해외 도우미들의 수요는 더욱 증가하리라는 전망이다.
홍콩특별행정구의 노동 및 복지국 국장인 쳥로지는 해외 도우미 인력이 향후 30년간 60만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홍콩 노동 인구의 15%에 달하는 수치이다. 미래에 직면할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해 해외 가사 도우미는 노동 인구의 중요한 보충 자원일 뿐만 아니라 홍콩의 여성 노동력을 사회로 배출시키는 중요한 지주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가사 도우미들과 교민 생활
필자는 이전 칼럼 <홍콩 생활의 10가지 장점>에서 가사 도우미 고용을 하나의 장점으로 소개하였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전일제 도우미를 집안에 둘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한국에서 누리기 힘든 혜택이다. 이들 도우미는 청소, 빨래, 요리, 설거지 등 가사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 등하교를 도와주고 장도 보며 심부름도 한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하는데 사람을 부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교민 단톡방을 보면 도우미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하소연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가사 일에서 해방되기 위해 내 돈 주고 고용했는데 속태우는 내용의 사연들을 보면 안타깝다. 하긴 가족들도 내 말을 안 듣는데 타인인 그들은 오죽하겠는가.
또 한가지는 아이들의 언어적 문제이다. 도우미들이 영어를 잘 해서 아이들의 언어적 도움에도 장점을 제공할 수 있지만 반대로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필자의 17년 홍콩 생활을 통해 목격한 바에 의하면 가사 도우미들과 오랜 시간을 같이 한 아이들의 경우 모국어 구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봐 왔다. 학교에서도 줄곧 영어를 사용하고 가정에서도 도우미들과 함께 생활하며 모국어 사용 기회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경우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 아무래도 한국어가 모국어로서의 기능을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정체성에 혼란을 초래하는 상황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언어적 환경을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외모와 성격, 개성이 각기 다르듯 도우미들 역시 그러하다. 여기에 문화적 충돌 또한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어떤 교민분은 홍콩 생활 중 최대의 행운은 좋은 도우미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디 교민들의 가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말 그대로 ‘찐 도우미’들을 만나 윤택한 홍콩 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