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중국, 미국 대신해 한국의 최고 동반자 부상”
북한 핵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정부간 공조 균열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안보,교역 등에서 한국의 최대 동반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논평, 향후 중국의 새 역할이 주목된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3일 중국이 북핵 사태 이후 한반도내 새로운 행위자(factor)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전제, 중국이 혈맹 관계인 북한에 대한 영향력 보유는 물론, 미국의 안보 우산 속에 머물러 온 남한내에서도 미국의 대안(alternative)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서울발 기사에서 북핵 위기에 직면한 한국이 미국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인 중국에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특사로 보낸 점을 지적, "이는 안보문제 발생시 먼저 대부(代父:미국)를 찾았던 과거 모습과 판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는 베이징 국제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도로변에 한국기업들의 간판이 줄지어 세워진 점을 상기시킨 뒤 "이는 북핵사태가 아니더라도 동북아에서 근본적인 경제 및 권력이동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했다.
타임스는 또 2001년에 처음으로 중국인의 한국 방문객수가 미국인 방문객수를 넘어섰으며 그 해 8억3천만달러에 달한 한국의 대중 투자액도 사상 처음으로 대미 투자액을 초과한 것은 물론 중국의 지난해 남북한과의 무역고가 1천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한반도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자리잡은 점도 지적했다.
서울의 한 관측통은 일련의 반미시위 등을 언급, "중국이 (한국의 대부 역할을 해 온) 미국의 대안으로서 역할이 강화되고 있으며 양국 해군이 지난해 처음으로 군함을 상호 교환 방문하는 등 군사 및 정치 부문의 협력관계도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인도에 망명 중인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리덩후이 전 대만총통 등에게 입국 비자를 내주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에는 또 중국어 학원들이 대목을 맞는 등 언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고 지하철도 중국어 안내방송을 내보내는 등 ‘중국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중국은 남한을 경제자산으로 북한을 채무로 각각 간주하면서 동시에 북한과 특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최근 이례적으로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공개 비난한 데 이어 지난 10월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손수 임명한 양빈(楊斌)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을 체포, 자신의 이익을 공세적으로 지킨 점도 중국의 한반도내 영향력 강화를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신문은 논평했다.
한편 북핵 사태 이후 한국과 미국 등이 중국에 대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해 핵위기를 해소해주도록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의 대북(對北) 영향력이 일반인들의 기대만큼 크지 않으며, 중국은 또 “현실 상황이나 국가 이익 등을 고려해 이성적인 방법으로 대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은 틀린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양국관계 악화로 영향력이 다소 감소된데다 93년 북핵사태 당시 북한편향적인 정책으로 일관한 중국의 태도를 들어 이번 북핵사태에서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지나친 기대를 걸면 안된다고 지적한다. 또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영향력의 실제 여부와 무관하게 중국이 자국의 세계전략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행사하는 등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수위가 조절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난 93년 북핵 위기시 중국은 사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양국은 93년 하반기 이후 우호관계가 회복되면서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를 사실보다 과장됐다고 주장했었다. 중국은 당시 한.미.일 국제공조체제와 UN의 대북 제재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IAEA, UN 안보리, UN 총회의 대북 핵관련 결의안에 기권했다.
중국은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수 천㎞ 사정거리의 미사일 등을 실전 배치하면 한국은 물론 일본과 심지어 대만도 핵개발에 착수, 전반적으로 역내 핵개발 경쟁이 촉진돼 지역 안정을 해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의 핵개발 및 일본의 지역 패권주의 대두 가능성도 크게 우려, 북핵사태에 대해 입장이 종전보다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 영향력 감소 또는 행사 의지의 유무 여부에도 불구, 중국은 현실적으로 북핵 사태 해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로 꼽힌다. 특히 유엔 제재 결정과정은 물론 제재 결정 후에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동참 및 협력 여하에 따라 국제사회의 제재가 효과적으로 집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의 하원 지도자인 낸시 펠로시 의원도 3일 북핵위기와 관련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외교해결 정책을 지지한다면서 "미국은 북핵해결을 위해 가용한 모든 외교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중국과 공조 협력을 통한 북핵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펠로시 의원은 북한에 대해 "가장 즉각적이고 중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며 중국은 북한에 상당히 중요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며 중국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미국 등의 대북 영향력 협조 요청에도 불구, 향후 북한을 크게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북 설득 수위를 조절해나가면서 자신의 이해 관계나 영향력을 극대화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태식(李泰植)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지난 2일 베이징으로 날아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회동했으며 이는 중국에 대북 영향력 행사 등을 통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