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짜이(張保仔) 古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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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짜이(張保仔) 古道

香港의 뜻이 향나무 파는 항구 또는 향로봉처럼 생긴 봉우리가 있는 항구 등 여러 뜻이 있다고 하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지 영국 해군이 동인도 회사의 요청으로 중국 해안의 해도를 만들기 위해 마카오에서 홍콩근해로 나와 수심도 재곤 했었는데, 애버딘 근처에서 폭포를 발견하고 마실물을 싣다가 인근 원주민들로부터 광동어로 '홍콩'이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홍콩의 옛 주인은 누구일까? 오래 전부터 홍콩섬은 해적의 근거지였다고 하니 홍콩의 진짜 주인은 해적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스탠리, 애버딘, 사이잉푼을 중심으로 이곳을 지나가는 배를 습격, 노획한 재물을 섬의 자연동굴에 감추어 두었다는 전설로 인해 지금도 당시 해적이 감추어 둔 보물찾기가 끝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홍콩해적의 대명사가 장보짜이(張保仔)이다. (짜이(仔)는 이름이 아니고 애칭이다. 홍콩사람들은 좋아하는 배우 이름에도 仔를 곧잘 붙인다.) 홍콩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점선과 점선으로 장보짜이 고도라고 표시된 곳이 있는데 중간 어디선가 끊어져있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아서 더욱 가보고 싶은 트레일이었는데, 어느 날 문회보(文匯報) 등산 안내 페이지에 "장보짜이 古道 탐험" 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어느 일요일 10시까지 익스체인지 스퀘어 분수대까지 나오라는 것이다. 흥분을 안고 모임장소에 가보니, 주로 역사에 관심 많은 홍콩인들 20여명이 모여있다. 일단 깃발을 든 리더에게 신고를 하고 나서 장보짜이 고도 탐험에 들어갔다. 깃발을 나부끼면서 앞서가는 리더가 육교를 건너고 미드레벨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간다. 역사의 장보짜이를 만나러 가는데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홍콩의 명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른다. "이거 장보짜이 고도 가는 거 맞아"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옛날 장보짜이 해적들은 사이잉푼 근처에서 산으로 올랐는데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것이다. 일행과 얘기하는 사이에 Conduit Road까지 올라오더니 다시 올드피크로드 쪽으로 간다. 장보짜이 고도는 올드피크 로드에 가서야 진입로가 나온다. 길은 잘 보이지 않고 수림만 울창하다. 앞사람을 따라 들어갔더니 리더가 길도 없는 산 속을 헤집으며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잡목의 정글이 하늘을 덮어서 눈앞이 어둑어둑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일행들은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바위 위를 조심스럽게 걷기도 하고 면장갑을 끼고 나무가지를 잡으면서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며 계속 행진해 나갔다. 장보짜이가 부하들과 함께 보물을 지고 이 길을 걸었을까? 위로는  旗山(해적들이 깃발을 올린 사이란 뜻으로 지금의 빅토리아 피크)의 깎아지른 절벽이 걸려있고 그 아래로는 Conduit Road가 가끔 보이지만 아파트 군에 막혀 내려갈 수는 없게 되어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Luggard Road와 Conduit Road 사이의 길도 없는 산 속을 서쪽으로 깊숙이 가고 있는 셈인데, 행군속도가 느리지만 스릴이 있다. 해적의 보물을 찾아 나선 탐험대의 기분 때문인가? 중국역사에 보면 복건성과 광동성 해안에서 활약하던 해적은 정치집단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북 변방 기마 민족인 여진(만주)족이 부족을 통일 山海關을 넘어 당시 明을 남쪽으로 쫓아내고 中原을 차지하고 나라 이름도 淸으로 바꾼다. 남쪽으로 쫓겨간 明은 南明으로 되었다가 결국 淸에 밀려 바다(남중국해)로 나온다. 한 때 대만을 근거지로 하였지만 그마저 무너져 복건성과 광동성 연안의 섬을 끼고  淸復明을 주장하면서 해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장보짜이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 받아 官船이 실고가는 淸의 조공물이나 稅金등을 빼앗아 復明의 군자금으로 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걷고있는 이 길이 북방 이민족을 쫓아내고 한족의 왕조를 다시 세울 군자금의 이동 통로인 셈이다. 일행이 2시간쯤 올라가니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는지 모두 아랫쪽으로 길을 찾아 나선다. 앞서가는 일행을 따라 내려오니 손바닥 같은 공원이 나오고 아스팔트 길이 연결되어 있다. "보산로"라고 한다. 장보짜이가 다니던 길은 홍콩 현대화로 일단 그 곳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애석하다. 일행중 한 명은 영국식민지 정부가 이 고도를 修路하지 않고 방치한 것에 대해 열을 올리며 말한다. 센츄럴과 애버딘, 스탠리까지 연결되는 장보짜이 고도가 보산로 근처에서 끊어져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보산로를 따라 홍콩대학쪽으로 10여분 내려가니 인근 주민들의 아침등산로처럼 보이는 단장된 길로 연결된다. Hill Above Belcher's 라는 산이름도 눈에 띈다. 1841년 홍콩섬에 가장 먼저 유니온잭을 꽂은 Belcher의 이름을 따서 붙인 케네디타운 앞바다 Belcher Bay 위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매립으로 Bay는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센츄럴과 애버딘을 연결하는 홍콩의 서부 간선도로 포푸람로드가 보인다. 길 앞으로는 퀸메리 병원이 보이고 바닷쪽으로는 데이빗 산허리에 거대한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해피밸리 공동묘지와 함께 홍콩에서 유명한 중국인 공동묘지로 이제 만원이라 죽어도 들어가기 어렵다고 일행중 한 명이 귀띰해 준다. 길은 다시 퀸메리 병원에서 끊어진다. 간호사 숙사 앞으로 돌아 다시 산길로 10분 정도 들어가니 갑자기 스코틀랜드 고성을 옮겨 놓은 듯한 하얀건물, 홍콩문화재 더글라스 캣슬이 눈앞을 막는다. 100여년 전 스코틀랜드 출신의 비즈니스맨이 향수에 젖어 지은 건물로서 지금은 홍콩대학이 인수하여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다. 한 때 해적 장보짜이의 근거지였던 애버딘까지 온 것으로서 일단 4시간 코스의 장보짜이 고도 한 코스는 완주한 셈이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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