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웬로드 (寶雲道)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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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섬의 피크와 해안을 상하로 연결하는 것이 올드피크로드라면 그것을 미드레벨에서 좌우로 연결하는 옛길 2개는 "보웬로드"와 "장보짜이 古道"이다. 장보짜이고도(차후 소개) 보다 뒤에 만들어진 보웬로드는 수도관을 묻으면서 만들어진 conduit로드의 하나라고 전해진다. 과거 홍콩식민지 경영자들은 홍콩의 도시 중심지에 물을 두 군데서 끌어와서 썼는데, 섬 서쪽의 포푸람호와 섬 남쪽의 타이탐호가 그 수원지였다. 포푸람호의 물을 관을 통해 지금의 홍콩대학교 뒤쪽으로 끌어오고, 타이탐호의 물은 웡나이충 고개 밑으로 지하관을 이용 지금의 보웬로드를 거쳐 완차이 또는 센츄럴까지 끌어왔다고 한다. 섬 서쪽의 포푸람호에서 끌어온 수도관(conduit)이름이 지금도 지명에 그대로 남아 "꼰닥도"라도 하지만 동쪽의 conduit로드는 홍콩의 9대 영국총독 George Bowen의 이름을 따서 "보웬로드"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 보웬 총독은 본래 학자 출신으로 1883년 3월 뉴질랜드 총독에서 홍콩총독으로 전임되어 왔을 때 이미 나이도 61세이고 건강도 나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건강상 이유로 5년의 총독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년만인 1885년 귀국하고 만다. 그가 2년간 총독으로서 한 일이 별로 없지만 지금의 Peak Tram을 건설하기 위한 회사의 설립인가를 내 준 총독으로 알려져있다.(Peak Tram은 그 후 1888년 완공되었으므로 보웬총독은 Tram을 보지 못한다.) 그가 떠난 후 그의 귀국을 애석해 하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이 길을 보웬로드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이 길로 초기의 털털 자동차도 다닐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일반 등산 트레일과 달리 그룹이 다녀도 좋을 정도로 길이 넓다. 1900년 초의 홍콩사진을 보면 그 길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수목이 울창하여 멀리서는 길이 보이지 않고 숲의 터널을 이루어 여름에도 다니기 좋은 그늘 속의 산책길로 훌륭하게 변해있다. 보웬총독이 알면 좋아할 길이 되었다. 보웬도르를 동쪽에서 들어가는 입구는 해피밸리를 지나 리펄스배이로 넘어가는 웡나이층 고개길과 타이항로드와 스타브스로드가 만나는 Adventist 병원 근처에 있다. 이 길을 걷고 있으면 마치 완차이의 솟아있는 건물 옥상 위를 걷는 느낌이 든다. 피크에서 내려다보는 홍콩이 그림 같다면, 보웬로드에서 보이는 홍콩은 그림 속에 들어간 기분이다. 도시의 소음도 바로 들리고 고층건물의 높은 층에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데 가장 잘 보이는 건물이 Hopewell Center(合和) 원통형 건물이다. 당시 홍콩에서 택시를 가장 많이 가져 택시왕으로 유명한 호승헌의 큰 아들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건설엔지니어가 되어 아버지보다 돈을 많이 벌어 홍콩에서 가장 특이한 원통형 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당시는 홍콩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유명하였다. 입구에서 2km정도 걸으면 완차이갭으로 오를 수 있는 완차이 갭 로드와 만난다. (홍콩지명에 갭이 많이 나온다. 갭은 벌어진 틈이므로 산봉우리가 서로 벌어져있는 틈이니 우리말로는 고개로 보면 될 것 같다.) 완차이 고개로 오르든지 완차이 옛날 우체국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계속 서쪽으로 나가면 매가진 갭 로드를 자나 올드피크 로드와 만난다. 전장 4km 정도의 거리이지만 곳곳에 죠깅하는 사람을 위해 1000m당 거리표시를 해두고 있다. 보웬로드는 홍콩에서 가장 힘들이지 않고 평행으로 걷는 산책로로서 홍콩의 은밀스러운 길이다. 따라서 땀나는 등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홍콩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기에 알맞은 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홍콩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에는 놓칠 수 없는 길이다. 나는 이 길을 홍콩의 "十里畵廊"이라고 부르고 싶다. 코스웨이배이와 완차이가 동시에 펼쳐내는 거대한 그림 파노라마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차이는 본래 Little Bay라는 뜻이 있다. 그 옆에 본격적인 full-size bay 즉 銅 灣이 있었다. 지금은 灣은 없어지고 이름만 남았지만 옛날에는 지금의 해피밸리까지 물이 들어오는 커다란 동그라미 형의 灣이 있었다. 옛날사람들은 만의 모양이 구리로 만든 커다란 징(銅 ) 모양이라 해서 銅 灣(Causeway Bay)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지역 일대에 길게 둘러쳐진 둑길을 영국 식민지 경영자들이 causeway라고 불렀는데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causeway bay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지만, 홍콩원주민들은 아직도 이곳을 "통로완(銅 灣)"이라고 부른다. 보웬로드를 가다보면 나무마다 명찰이 붙어있다. 홍콩정부에서 나무에 패찰을 붙이고 원산지 등을 표시해 놓고 있어 마치 도심 속의 식물원 같은 인상을 받는다. 홍콩을 150년간 통치한 영국식민지 정부는 홍콩을 자유무역항으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바위투성이의 홍콩섬에 체계적으로 식목을 하여 오늘날과 같은 울창한 수림을 이루었다. 보웬로드는 특별히 수림이 울창하고 수종도 다양하다. 수종은 인도, 호주, 아프리카, 영국 등에서 옮겨온 듯하고 나무의 높낮이도 배열이 잘 되어 있어서 보기에 좋다. 보웬로드는 평상복으로도 가능한 등산로이기도 하고 도심의 공해 먼지를 마시지 않고 홍콩을 볼 수 있는 산책 관광길이기도 하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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