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룡도(東龍島)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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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룡도(東龍島) 가는 길

150년 전의 홍콩의 모습, 영국의 아편상인들이 홍콩에 아편창고를 지으면서 몰려오기 전의 홍콩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가보는 곳이 있다. 그 곳이 동룡도(또는 東龍洲, 홍콩에서는 제법 큰 섬은 島, 작은 섬은 洲로 표기되어 있다.)이다. 골프장이 있는 클리어 워터 배이 바로 건너편의 조그만한 바위섬이다. 하나의 바위섬의 모습이 1841년 엘리오트 영국통상관이 청정부와 교섭 홍콩섬을 할양받을 당시 홍콩섬과 비슷하다. 인가도 거의 없고 나무도 없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섬이다. 이 곳은 싸이완호(西灣河)의 선착장에서 직접 갈 수도 있고 레이유문(鯉魚門)에서 갈 수도 있다. 싸이완호에서 갈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배편이 많지 않다. 그러나 해산물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레이유문에서는 시간마다 배가 있다. "카이도(街渡)"라고 불리는 통통배로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이곳은 가족나들이에도 알맞다. 어른들은 애들 손을 잡고 역사를 탐방하고 애들은 통통배를 타서 좋고 또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넓지는 않지만 좁지도 않은 바위섬의 자갈해변에서 조개도 잡을 수 있고 넓은 잔디밭에서 뛰어놀 수도 있다. 홍콩의 길목 역할을 하는 레이유문 얘기가 나왔으니 잠깐 이야기의 곁길로 빠져서 역시 길목 역할을 하는 마카오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마카오는 인도쪽에서 중국에 올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항구이다. 아편전쟁을 종결짓는 남경조약에 의해 개항되어 이른바 조약항(treaty port)라고 하는 하문, 영파, 상해가 개항하기 전에는 중국에서 유일한 외국인이 입항할 수 있는 항구는 지금의 광주, 당시의 canton 밖에 없었다. 인도 및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 및 화란의 동인도회사의 무역선이 중국 무역을 하기 위해 광주로 갈 때는 일단 마카오를 들린다. 마카오에서 화물과 사람을 내려놓고 주강을 따라 광주까지 진입하는 것이다. 홍콩이 영국인들의 눈에 띈 것은 아편창고로 쓰기에 적절했고, 양쯔강을 통해 중국내륙으로 들어가는 데 마카오보다는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센츄럴 부근에 출항한 영국의 무역선은 반드시 이 레이유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상해에서 돌아오는 무역선도 반드시 이 레이유문을 거쳐 들어온다. 상해쪽으로 나간 배가 만선을 하고 돌아오는 것을 빨리 알고 싶어서 자딘 매티슨 회사는 그곳이 잘 보이는 곳에 전망대(look out)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Jardin Lookout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홍콩스타디움 뒤쪽 고급 주택가(도박왕 스탠리 호의 집도 있고 홍콩의 성북동이라 할 수 있다.)를 안고 있는 가파른 산의 정상에 있다. 그곳에서 자딘 회사직원이 망원경으로 레이유문 쪽으로 들어오는 배를 관찰했다고 하는데, 배가 바다에 어느 정도 잠겼는지에 따라 만선 여부를 확인하고 즉시 그 아래 causeway bay에 있는 회사에 연락을 했다. 배가 만선으로 들어오니 재고중인 중국제품을 싸게 빨리 처분하라든지 하여 타 회사보다 수시간 빨리 얻어낸 정보를 장사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정보가 돈인데 150년 전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레이유문은 그 후 100년이 지난 후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1941년 12월 초 일본은 진주만 기습과 함께 영·미를 적으로 선전포고하고 일본 폭격기가 카이탁 공항의 영국군용기를 기습함과 동시에 일본제국 육군이 홍콩을 점령하기 위해 심천강을 건너 신계로 들어오자, 신계와 홍콩섬의 가장 가까운 거리인 레이유문 방어가 일본군의 홍콩섬 상륙을 막는 영국의 최후 저항선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주 저항선을 우회하여 파커 마운틴 쪽을 먼저 점령, 위에서 아래로 포를 쏘아 레이유문 주 저항성을 후미에서 격파하여 홍콩섬 점령으로 연결시킨다. 그 해 크리스마스는 홍콩에 영국이 첫발을 디딘 100주년 크리스마스였는데, 그날 밤 영국총사령관이 일본군에게 지금의 페닌슐라 호텔지하에서 촛불을 밝히고 항복문서에 사인을 함으로서 치욕의 black Christmas가 되고 만다. 레이유문을 지난 카이도의 왼쪽으로 는 영국사람들이 Junk bay라고 불렀을 정도로 졍크선이 밀집되어 있는 청꽌오(將軍澳)를 지난다. 이 곳은 한 때 래니 밀 이라는 돈 잘 버는 제분공장이 있었고 그 후는 대륙에서 쫓겨온 국민당 군인들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 곳에서 대만의 까오슝까지는 정기 연락선이 있었을 정도로 왕래가 많았던 곳이다. 동룡도에도 포대가 있다. 포대와 클리어 워터 배이 골프장과는 문자 그대로 지호지간이다. 눈 좋은 사람이 포대 쪽에서 바라보면 골퍼의 드라이브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포대는 명나라시대부터 이 지역에 드나드는 해적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지금은 유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동룡도는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섬으로 나무도 거의 없어 한여름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뜨거운 햇살을 막을 창이 긴 모자가 필요하지만, 겨울철에는 바람이 시원하고 캠핑장 시설이 있어 텐트를 준비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1박 캠핑을 즐길 수도 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가면 해발 232m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피크에서 보면 쎄코(石澳)가 바로 건너다 보인다. 이 섬에 갈 때는 신분증을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 가끔 해양경비정이 배를 세워놓고 중국의 불법 이민자를 체크하기 때문이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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