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홍콩을 쇼핑과 연관시킨다.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생각하면 홍콩은 거대한 쇼핑 몰 또는 아케이드 정도로 생각된다. 그래서 홍콩을 방문하는 사람은 우선 상가부터 가본다. 그러나 홍콩은 아시아의 쇼핑센타 일뿐만이 아니라 월가이다. 세계의 금융인이 몰려 있다. 또한 홍콩은 150년 전통의 자유항이다. 자유 무역을 설립 목적으로 하는 WTO의 리딩 멤버다. 이와 같이 홍콩은 다양하게 발전(many-splendoured)하고 있다. 중국의 남단 구룡반도 앞에 흩어져 있는 하나의 쓸모 없는 바위 덩어리(barren rock)섬에서 어떻게 지금의 홍콩으로 탄생되고 발전하였을까. "홍콩 탄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번 주 나의 트레일은 이 "비밀"을 추적해 보는 역사탐방이다. 홍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비밀을 잘 설명해주는 곳이 하나 있다.
이 트레일은 羅湖를 거쳐 중국 심천으로 가야하므로 중국 입국비자가 필요하다. 먼저 지하철과 KCR을 타고 羅湖로 나간다. 센트랄에서 50분은 잡아야 된다. 羅湖에서 빠져 나오면 바로 심천시의 시외 버스터미널과 연결된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호문(虎門)행 마이크로 버스가 10분 단위로 손님을 기다린다. 요금은 인민페 30위안이다. 홍콩과 마카오 사이에 바다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강이 주강(珠江)이다. 주강을 광주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갑자기 좁아지는 곳이 바로 虎門이다.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외국상선이 당시 중국의 유일한 개항지인 광주(CANTON)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외국상선을 통제할 수 있는 지리적으로 전략 요충지다.
마이크로 버스는 금방 사람이 꽉 찬다. 버스는 심천시내를 통과하여 북으로 달린다. 심천 시내도 높은 건물이 많지만 도시의 길도 넓직 넓직 하다. 그리고 서울의 청계천 고가도로처럼 고가차도가 많아 자동차가 신호등에도 걸리지 않고 잘도 빠져나간다. 도시를 벗어나면 6차선의 시원한 고속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고속도로 주변은 논인지 밭인지 평야가 끊임없이 뻗어 있다. 이쯤 와 보면 광활한 중국대륙의 모습을 조금 엿보는 것 같다. 30분쯤 달렸을까 버스는 조그마한 시골 읍 같은 곳으로 들어간다. 종착지 虎門이라는 곳이다. 그곳은 인근 농어촌의 상업 중심지이고 육로 및 수로 교통의 중심지라 시내가 활기에 차 보인다. 홍콩에서 구하기 어려운 중국 토속 농산물도 많다.
버스를 내린 후 다시 택시를 타고 간다. 혼자일 경우에는 남부 중국에 유행하고 있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 볼만하다. 헬멧을 쓰고 요란한 엔진소리를 들으면서 두 팔로 땀내 나는 운전자의 허리를 꼭 감고 시내를 질주하면 운전자의 체온이 전해지면서 짜릿한 스릴도 있다. 찾아가는 곳이 虎門박물관이다. "뽀우꽌"이라고 소리치면 두말하지 않고 데려다 준다. 잘못 알아들으면 필담도 가능하다. 종이에 "博物館"이라고 미리 써 두었다가 보여주면 금방 알아차린다. 아편 전쟁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아편전쟁이 홍콩 탄생과 직접 관계가 있다. 아편 전쟁이라면 전쟁의 원인이 바로 아편이다. 그러나 왜 하필 아편이냐고 물으면 알 듯 하면서도 좀 막힌다. 그러나 이 박물관에 와 보면 불을 보듯이 분명해진다. 내외국인이 공히 10위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虎 門 박 물 관 (일명, 아편전쟁박물관)
박물관 정원에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좌상이 시야를 가린다. "임칙서"라는 인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 장군 같기도 한데 본래 군인이 아니고 학자 벼슬아치이다. 박물관은 아래 위층으로 된 현대식 건물이다. 건물입구에서 들어가서 오른편으로 관람이 시작된다. 처음 만나는 전시실은 유리창 벽 속에 3가지 물건이 들어 있다. 차 잎, 비단, 도자기이다. 이 세 가지가 당시 중국에서만 생산되었던 것으로 서양사람들이 없어서 못 가지는 물건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나오는 "차"는 유럽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마실 정도로 인기 있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홍차는 당초 중국의 차 잎을 구해 영국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가공한 것이다. 서양사람들이 즐겨 마신 차는 주로 복건성 차였다고 한다. 지금의 Tea라는 말도 차 수출항 복건성 복주의 현지발음을 그대로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新茶(first crop)가 나올 때면 영국의 茶商들은 신차를 복주와 런던간의 16,000마일의 거리를 어떻게 하면 빨리 운송할 수 있을까 하고 속도가 빠른 배를 매년 만들어 냈다고 하는데 가장 빨랐던 것이라도 99일은 소요되었다고 한다.
로마시대부터 유럽에 건너간 비단도 유럽의 귀족들이 즐겨 입었다고 한다. 비단은 가볍고 흘러내리는 감촉이 좋아 중국산 비단은 황금보다 귀하게 취급되었다고 하는데 "비단길"이란 말도 있듯이 동서 문화의 교류도 이 비단길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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