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층 동네의 중심지에 가족神(조상신)을 모셔놓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본지인들이고 한여름에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밭일을 하는 여인들은 하카족이다. 하카족 여인의 모자는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넓은 창으로도 부족하여 창에 검은 천으로 둥그렇게 둘러놓고 있어 금방 구별이 된다.
남충의 넓지 않은 들(野)은 쌀 농사가 제법 되는 지 동네도 크다. 그러나 남층에서 Starling inlet 해안길을 통해 루컹으로 나가면 그곳은 호콜로 족과 단카족이 함께 사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단카는 이름 그대로 계란과 관계가 있는 데 그들이 타고 다니던 배의 모양이 계란과 닮았다는 설도 있고 그들의 모자가 계란처럼 둥글다는데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그들은 깊지 않으며 따뜻한 바닷물에 잘 서식하는 진주조개를 잡는다. 그리고 진주조개에서 천연진주를 채취해왔다. 지금은 양식진주 때문에 어렵게 천연진주를 채취하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버딘 등에서 집단으로 水上 생활을 하던 단카족도 홍콩 정청의 주택정책의 혜택으로 배를 버리고 모두 육지(陸上)로 올라와 산다고 한다. 유명한 홍콩의 재벌 한 분은 본래 단카족 출신으로 그의 일대기를 읽으면 어려서 설빔으로 고무신을 선물 받았는데 배 밖을 나가지 아니하여 고무신을 신을 기회가 없어 항상 가슴에 안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離島에서 離島를 잇는 짧은 거리를 10명 정도 승객을 실어나르는 작은 통통배의 바다 택시가 있는데 풍랑을 잘 헤치며 뒤쪽에 앉아 한 손으로도 솜씨 있게 운전하는 단카족 모자를 쓴 여인을 가끔 만날 수 있는데 정말 단카족 인지는 알 수가 없다.
논농사가 잘되어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남충에서 하차하여 바다쪽으로 룩컹마을 지나 바닷길을 따라 가면 바로 건너편이 사타우콕이다. 중국의 발전된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사타우콕은 심천시의 경제특구 일부로 심천시의 동편을 가기 위해서는 로우 쪽이나 록마차우 보다 사타우콕의 국경 관문을 통하는 것이 심천으로 들어가서 심천의 도심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므로 빠르고 편하다. 심천 동쪽의 골프장으로 운동나가는 골퍼들은 주로 사타우콕 길이 눈에 익어있을 것이다.
그림 같은 해안 길을 1시간 정도 가다보면 바다가 바로 바라다 보이는 어촌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지만 모두 버려진 집(abondoned) 들이다. 사람들이 살다가 마을을 버리고 집단으로 이주해 간 모습이다. 이 지역을 잘 아는 일행중 한 분은 이곳 사람들은 자식들을 잘 두어 자식 따라 대부분 영국으로 이민 갔다고 말했다. 런던의 소호거리나 차이나타운의 요리사와 주인들은 대부분 홍콩 신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바다를 더불어 살던 탄카족 이며 호콜로들이 정말로 큰 바다를 건너 영국까지 가버린 모양이다.
버려진 집들을 잘 수리하면 금방이라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뼈대가 건실하다. 마을 앞의 수백년 된 반얀 트리(榕樹)가 짙은 그늘을 만들어 주지만 그 그늘에 쉬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나무도 외로워 보인다.
바로 앞에 보이는 튀는 새우 모습의 섬은 Crooked Island이고 그 앞의 하버를 Crooked Harbour라고 한다. 이 바닷 길을 따라 다시 한시간 반 정도 걸으면 정말 마을다운 마을이 나온다. 삼아촌이다. 틴하우(天后)며 조상의 사당이 큰 것으로 보아 한때는 큰 마을로 보여지나 지금은 많은 촌민들이 떠나 을씨년스럽다. 과거 문전옥답 같았던 논도 메워져 잔디가 심어져 있어 황량한 감도 든다.
삼아촌에서 높지 않는 언덕을 두 개정도 넘으면 우카우탕으로 다시 나온다. 신부를 태우고 가던 가마꾼의 실수로 아리따운 신부가 가마에서 떨어져 근처 바다 속 (지금은 플로버 코버 호수)에 빠져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신랑탐(bride's pool)도 바로 그곳에 있다. 우카우탕으로 나오면 팟센링(八仙嶺)산 아래로 그림 같은 플로버 코버 호반 길을 끼고 타이메이 둑을 지나 따이포 마케트까지 오는 버스가 있다. 그러나 일요일 및 공휴일만 다니므로 토요일 경우에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호수가 너무 조용하고 아름다워 홍콩의 고정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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