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들은 홍콩의 중국사람을 Cantonese라고 부르고 그들이 만든 중국음식을 Cantonese Cuisine(광동요리)라고 하며 그들이 하는 중국말을 Cantonese Chinese라고 한다. 모두 Canton이고 어느 하나에도 홍콩이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 이는 홍콩이 인종, 음식, 언어 등 문화적으로는 Canton의 일부라는 뜻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Canton으로 알려진 곳은 중국의 廣東이다. 북경식 발음은 "광둥"이지만 현지인의 발음에 따라 CANTON으로 표기되고 있다. Canton은 넓은 의미로 廣東省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좁게는 廣州市만을 일컫는다. 廣州는 본래 지금의 廣東省과 廣西省(壯族自治區) 兩廣을 모두 합친 넓은 지역이었다. 옛날 중국에서 州라는 명칭은 지금의 省보다 큰 지역이었다. 中國大陸을 九州로 나눌 정도로 州 하나는 중국전체의 1/9정도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따라서 廣東이란 말은 넓은 廣州땅의 東部라는 말이고 廣西는 광주 땅의 西部라는 뜻이다. 마치 우리나라에도 규모가 큰 행정구역을 남북으로 나누는 것과 유사하다. 어쨌든 지금 광주는 하나의 도시 이름으로 전락되었으나 과거의 지역은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홍콩은 광동성의 해안의 작은 섬에서 출발하여 불과 150년만에 오늘날의 홍콩으로 성장하여 청색이 쪽(인디고)에서 나왔지만 오히려 쪽보다 더 푸르다(靑出於藍碧於藍)라는 成語를 생각케 한다.
그렇지만 광동성의 중심지인 광주는 어느 모로 보나 홍콩의 큰집과 같다. 따라서 홍콩에 살면서 광주는 필히 가보아야 할 곳이므로 이번 주 나의 트레일은 광주 트레일로 잡고 싶다. 그러나 광주는 매년 4월과 10월의 광주교역회(Canton Fair)기간은 피해 가시길 바란다.
南越國과 南海郡
홍콩에서 광주로 가는 길은 120km의 육로와 珠江을 거슬러 오르는 뱃길이 있다. 육로는 로우(羅湖)를 거쳐 심천으로 나가면 곧바로 광주행 고속버스가 있다. 廣深고속으로 나가면 빠르다. 또 하나 뱃길은 침사츄이 Ocean Terminal의 중국행 페리를 타면 된다. 바다같이 넓은 珠江河口를 지나고 虎門을 거쳐 곧 연화산을 지나고 광주에 도착한다. 이 뱃길은 오래된 무역 루트이다. 지금은 주강 삼각주가 거대해지고 삼각주 내에 수많은 도시가 형성되었지만 옛날에는 광주 근처까지 바닷물이 닿을 정도로 광주 자체가 바다를 낀 항구와 유사했다고 한다. 옛날의 廣州는 중국의 중원(지금의 西安지역)에서 보면 아득히 멀고 먼 땅이었다. 지리적으로도 멀지만 동서로 해발 2000m의 五嶺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그 산맥을 넘어 광주로 나간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광주는 嶺南이라고 부르면서 中原과는 좀 색다르고 독자적인 文化를 구성하고 있었다. 중원에서 보면 한 번 내려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귀양지가 바로 광주였고 중원에서의 싸움에서 패한 측이 도망가서 숨어사는 지역이기도 했다. 중국의 모든 省은 각각 略式名稱이 있다. 북경직할시는 "京", 호남성은 "湘"이라고 하듯 광동성은 "越"이다. 그러나 현재 쓰고 있는 광동성의 약칭 월(越)자는 (월)로 越字의 異字 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방이 과거 越國이었다는 의미다. 본래 中國歷史上(BC 5∼6세기) 월국은 지금의 上海 아래측 抗州 부근이었다. 그곳에 근거하여 그보다 북쪽(지금의 蘇州)에 근거한 吳國과 원수끼리의 간단없는 전쟁으로 유명하다. 吳越同舟라는 말은 원수끼리 한 배에 탄 것을 의미할 정도로 吳와 越은 한 배를 탈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越이 吳를 멸망시키지만 越은 나중에 楚國에 의해 멸망되어 지금의 광동성·광서성 지역으로 쫓겨왔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 이곳은 南越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하여튼 戰國時代에 지금식으로 말하면 G7(七雄)의 하나인 秦이 中國전역을 통일(BC 221)하면서 이곳의 남월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秦은 南越을 없애고 南海郡을 설치하였다. 그 후 秦의 統一皇帝 秦始皇의 死亡과 함께 항우와 유방의 연합군에 의해 秦이 망하자 당시 남해군의 태수였던 趙 라는 사람이 다시 南越이라는 獨立王國을 세운다. 그 후 南越은 유방이 세운 漢의 武帝때 멸망되어 이 지방은 다시 북쪽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漢武帝는 동쪽으로 한반도 북부에 낙랑 등 4郡을 설치하듯 남쪽으로는 이 廣州 땅에 秦에 이어 다시 南海郡으로 바꾸어 식민지 통치를 하게 된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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