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홍콩을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과 영국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홍콩시내에서 그러한 접점이 곳곳에 많이 있지만 나는 상환과 중환의 접점이 東과 西가 만나는 곳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다.
중환의 높은 오피스 건물群도 상환쪽으로 가다보면 옛날식 住商복합 건물로 바뀐다. 상환의 서쪽 끝 케네디 타운과 연결되는 곳에는 더욱 동양, 즉 중국적이다. 특히 식품에 있어서 중국전역에서 가지고 온 듯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지금 중국의 특산품을 사기 위해 홍콩섬보다 까오룽 쪽을 많이 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옛날 호주며 동남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이 중국물건(식품)을 사기 위해서는 모두 홍콩섬의 상환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가게에 쌓여있는 물건들이 중국전역에서 생산되어 수입된 것처럼 홍콩에 사는 중국사람도 중국 전역에서 온 사람이 많다. 홍콩이 본래 광동성에 위치하여 인근 광동성 사람들이 건너와 주류를 이루면서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150년간의 홍콩에는 중국대륙의 정치·경제·사회의 압박을 받아온 사람들이 홍콩을 하나의 피신처(sanctuary) 또는 자유무역항의 자유신천지 홍콩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장소(dream land)로 생각하고 이민 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올드피크 로드를 따라 올라 피크에서 Lugard Road를 걷기를 좋아한다. 이 길은 홍콩의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지점을 보기 좋은 곳이다. 홍콩을 방문하는 외지인에게 홍콩을 짧은 시간에 문자그대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이 길을 추천하고 싶다.
식민지 풍의 고급 주택도 듬성듬성 있는 Lugard Road가 끝나면서 Harlech Road를 접어들기 전에 오른쪽으로 꺾어 下山길로 내려가면 Hatton Road가 나온다. 이 Hatton Road를 계속 따라 내려가면 홍콩대학 캠퍼스 뒤편을 지나고 다시 西營盤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이 곳은 홍콩 속의 차이나타운처럼 정말 중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 거대한 차이나타운이 19세기 중반 중국에서 일어난 太平天國이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태평천국과 南北行(제1波)
세계제국 中國(淸)이 작은 섬나라 영국과 싸움에서 지게되어 체면도 잃고 땅도 빼앗기게 되자 200여년간 만주족에게 눌려 살던 漢族의 자존심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북방소수민족의 청(만주족)에 쫓겨 남쪽(광동성)으로 도망 와 살던 한족일수록 그러한 자존심이 더욱 살아났다. 원래 광동성 주민이란 북방의 소수민족에게 고향을 빼앗기고 떠돌며 살던 사람의 집단이었다. 광동의 한족들은 그들의 고향을 빼앗고 남쪽으로 쫓아낸 만주족도 사실 별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바다의 소식이 빠른 광동성 사람들은 大淸帝國의 취약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광동성 북쪽의 작은 마을(廣東省 花縣)에 홍수전이라는 奇人이 나타난다. 그가 어디선가 주어들은 성경 이야기며 예수님 이야기를 섞어서 자신이 예수의 동생이라고 자칭하고 救世主임을 강조하면서 흔들리고있는 민심을 잡아보려고 했다. 하나의 사이비 종교집단도 청제국에 불만을 갖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다.
1851년 1월, 廣西의 계평 金田에서 의거(起義)를 시작한 홍수전은 어지러운 나라를 수습하여 크게 평화스러운 하늘나라를 지상에 세운다는 의미로 자신의 나라를 太平天國이라고 부르게 하고 수도 남경을 天京으로 고친다. 太平天國과 淸國은 양쯔강을 사이에 두고 中國을 兩分한 후 10년 전쟁이 계속되었다. 양쯔강 이남은 서구의 영향이 비교적 많고 북경의 청 정부로서는 통제가 잘 미치지 않아 속수무책이었다. 청정부는 자체군대부족으로 한족토호를 이용한 湘軍 등 향토군으로 太平天國軍에 대항토록 하였다. 막강 太平天國도 자체내분으로 결국 평정된다(1864).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