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을 떠나 거대한 중국 대륙에서 맛 트레일을 위해 가 볼만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우선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다는 三國誌의 고향 四川省부터 시작하자.
四川省은 後漢말, 天下가 혼란스러울 때 漢황실의 血統을 계승하고 있던 劉備가 제갈공명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세운 곳이다. 四川省은 사방에 2000m 이상의 高山으로 둘려 쳐진 거대한 분지로 이루어져 마치 거대한 사발 같은 모양이다. 사천성 분지는 그 사발의 밑바닥이 되고 주변을 둘러싼 고산은 사발의 주변이 된다.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고산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물을 낮은 곳으로 흘러 보낸다. 그래서 사천성 분지는 수많은 江으로 갈라져 있다. 四川이라고 川(江)이 4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이 많고 수량이 풍부하여 농사가 잘 된다.
그래서 物産도 풍부하다. 지금 四川省 인구가 1억 2천만이므로 그 분지가 1억 2천만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福地가 있다는 것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四川省의 福地를 알고 있던 사람이 제갈공명이다. 그는 사천성이 높은 산맥으로 둘러져 있어 방어에 능하고, 넓은 분지에 농사가 잘되어 富國强兵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수의 군대가 지키기 용이하고 백성이 어질므로 반란도 없다. 이러한 吉地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정치의 중심지인 長安에서 四川省으로 가려고 하면 험하디 험한 해발 2000m 이상의 진령산맥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는 사천성(蜀) 가는 길이 너무 험하여 절벽 길 따라 올라가는 촉도(사천성 길)는 하늘나라로 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蜀道之難 難于上靑天) 하였다.
그 때는 양쯔강 주변이 개발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양쯔강을 통해 간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시황 死後 천하를 다툰 항우와 유방, 한때 항우는 승리하여 覇王(제후의 우두머리)이 되고 유방을 漢水 상류 漢中지방으로 쫓아 보내 漢王으로 封한다. 자신의 라이벌인 유방을 漢中으로 쫓아 버리고 天下를 안정시킨 항우는 스스로 楚왕이 되어 금의환향한다. 그 후 漢王 유방은 실력을 쌓아 漢中을 탈출, 결국 항우의 楚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한다. 後漢말, 그의 후손 유비는 魏의 조조와 吳의 손권에 밀려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번에는 제갈공명의 지혜로 蜀(四川省)으로 들어간다. 漢中에서 권토중래를 성공시킨 유방을 흉내낸 제갈공명은 유명한 出師表(출전상소)를 써놓고 진령산맥을 넘어 中原의 魏와의 수차례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끝내 자신이 戰場에서 病死한다. 사천성에 세운 漢(蜀漢)은 2대를 넘기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 四川省에 가면 劉備와 제갈공명의 못다 이룬 恨의 슬픈 이야기가 많다. 그 후 四川省은 몽고의 침입과 지배를 받는다.
원앙화꾸얼과 딴딴면
지금 四川지방의 화꾸얼(火鍋)은 이러한 몽고 침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북경의 "슈안 양로우"와 사촌간이다. 슈안 양로우와 다른 것은 사천지방의 독특한 매운 맛을 낸 매운탕 양로우라는 것이다. 너무 매워서 요즈음은 화꾸얼내 매운탕과 맵지 않은 탕을 칸막이로 구분하여 끓인다. 막아 둔 모습이 음양 태극 모양이다. 금슬 좋은 새 鴛과 鴦처럼 사이좋게 먹으라는 뜻의 원앙화꾸얼이다.
사천성의 화꾸얼을 먹으면 땀을 비오듯 쏟아 내야 한다. 그래서인지 重慶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화꾸얼을 더 좋아한다. 중경은 양쯔강과 지아링 강이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두 江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항상 자욱하다. 안개 때문에 맑은 해를 보기가 어렵다. 어쩌다 안개가 걷혀 해가 나오면 그 해를 본적이 없는 강아지가 마구 짖는다고 한다.
사천성의 아가씨도 예쁘지만 중경의 아가씨는 피부가 곱고 더 예쁘다. 이것은 바로 안개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요즈음처럼 화운데이션을 구할 수 없었던 옛날에는 안개가 여인의 피부를 항상 촉촉하게 젖어 있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안개가 자주 끼고 습도가 높은 곳에서는 화끈하게 매운 화꾸얼을 먹고 땀을 쭉 빼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한다.
重慶하면 딴딴면(擔擔麵)을 뗄 수가 없다. 중경은 강 가운데 바위 덩어리 같은 모양으로, 중경의 거리는 산 아래와 산 위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마을이 아래위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긴긴 밤에 군것질을 하고 싶어도 집을 나와 한참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려면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딴딴면은 이러한 수요에 의해 만들어 졌는지 모른다. 마치 옛날 우리도 겨울 밤에 찹쌀떡장사가 "찹쌀떡 사려~"하고 외치면서 찹쌀떡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팔았던 시절이 있었던것처럼. 중경에도 이처럼 어깨에 메고(擔) 麵을 팔았다. 메고 다니므로 국물있는 湯麵이라기 보다 자장면처럼 국물(湯)이 없는 면이다. 소스는 사천성 특유의 맵싸한 맛이다. 먹고 나면 입안이 오랫동안 얼얼하다. 마치 입 속에 마취 주사라도 놓은 것 같은 기분이다. 사천성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딴딴면을 불러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사천성 요리의 마지막 主食은 주로 딴딴면이 된다. 그들은 맵사하고 새콤한 맛을 오래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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