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벌판, 지금은 名古屋라는 번듯한 이름의 인구 250만의 대도시이다. 이름 그대로 전통 있는 名家라는 뜻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노블하우스(noble house)라고나 할까. 대도시 이름보다 무슨 베이커리 이름 같기도 하고 식당이나 선술집 이름 같기도 하다. 지금도 메이지야(明治屋), 이자카야(居酒屋)등 屋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다. 도시 이름에 屋를 넣지 않을 수 없는 속사정은 1,000년 전부터 써오던 지명 那古野, "저 쓸쓸한 벌판" 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좀 덜 문화적인 지명 때문이다.
1,000년전의 平安시대라면 일본에서 京都의 천황과 귀족이 문화를 만들어 내던 시대이다. 그 때쯤이면 스즈카(鈴鹿) 산맥과 요로우(養老) 산맥으로 京都와 나라, 즉 京畿를 자연적으로 보호해 주는 산맥 넘어 동북으로 갈 생각을 못했다. 어쩌다가 健脚의 고승들이 좋은 절터 찾느라고 동북으로 다녀왔다가 알려준 이야기가 귀족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따름이었다. 동북으로 요로우를 넘으면 거대한 들판(古野)이 있는데 북으로 높은 산이 둘러싸여서인지 강이 몇 개나 되고 토지가 비옥하다. 이 곳은 北高南低로 남쪽은 灣으로 되어있다. 知多반도가 그나마 그 灣을 갈라놓았다. 큰 것이 이세만(伊勢)灣, 작은 것이 미카와(三河)灣이다. 江은 이세만으로 三川이고 미카와만도 이름 그대로 三川이다. 이 들판에 도합 六川이 흘러 내려온다. 中國의 四川省보다 二川이 더 많다. 특히 콩(大豆)의 생산이 좋아서인지 현지인들의 미소(味 , 된장)는 빨갛고 오래가서 일본에서 가장 자랑거리이다. 그래서인지 이 곳 음식은 미소로 시작해서 미소로 끝난다고 한다. 우리 나라 된장찌개 같은 "미소 니코미"는 쌀쌀한 겨울, 이로리(일본 농촌의 방 가운데 있는 화로겸 부엌)에 둘러앉아 "오카와리"(일본에서 공기밥을 더 달라고 할 때 쓰는 말)하며 밥 몇 그릇 먹어 치운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오랜 기간 那古野로 알려진 지명이라 이름을 근사하게 하고 싶은 후대 사람들이 발음을 그대로 두고 좋은 의미의 한자(同音美語)만 바꿀 수밖에 없어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나고야 발음의 "名古屋"인 것 같다.
또 하나의 첵랍콕
우리는 드디어 "명고옥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기창(機窓)으로 내다본 공항은 적지만 기능적으로 보였다. 활주로가 몇 개 있는지 한 곳은 일본자위대의 수송기 등이 보인다. 공항이 작아서 비행기가 터미널 가까이 다가간다. 난생 처음 나고야공항에 들어선다. 터미널 건물은 지은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다. 건물이 이제 제대로 기능을 하는 것 같은데 홍콩의 첵랍콕같은 신공항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세만과 미카와만을 가르고 있는 치타반도 서쪽의 바다를 메워 2005년 3월 완공목표로 공사 중에 있다고 한다.
250만 나고야의 도시 개념을 떠나서 명실공히 2,000만 규모의 일본 중부지역을 대표하는 공항이라는 뜻으로 이름도 "中部國際空港"이다. 2005년이면 나고야에서 세계만국박람회가 개최된다. 몇 년 전 88올림픽을 서울에 빼앗긴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만국박람회(world exposition) 개최를 할 것을 생각해 두었다가 몇 년 전 캐나다의 캘거리를 누르고 2005년 세계만박을 유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이치현의 이름으로 "愛知만박"이라고 애명을 준비하였다. 2005년 6월부터 3개월간 전세계 130여 개국이 참가하고 내방객만으로 1,500만이 찾아올 것으로 보고 준비가 열심이라는 것이다. 내년도에 결정될 2010년 세계만박에 우리 나라 여수가 결정된다면 아이치만박 다음에 여수만박으로 연결된다. 매 5년마다 열리는 만박이므로 아시아의 이웃나라끼리 돌아가면서 개최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2000년도에는 독일 하노버였다. 나고야공항에 들어서니 공항관계 직원들이 모두 그린 뱃지를 양복 깃에 달고 있다. 그것이 2005년 아이치만박을 알리는 뱃지라는 것이다. 그린은 자연친화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2005년이면 신공항에 아이치만박 개최도 좋겠지만 이 잘 만들어진 공항이 버려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우울하다. 홍콩에서 정든 카이탁공항이 고스트타운처럼 된 것이 연상되었다.
블랙 크리스마스
홍콩에서는 우리가 브레머힐에 살았다. 그래서인지 낡은 아파트이지만 이름은 근사하여 브레머힐 맨션이었다. 그러나 22층인가 앞은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뒤는 브레머힐이 손에 잡힐 듯 경관은 최고였다.
앞에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바로 카이탁공항이 있는 쿠롱 앞바다였다. 당시 카이탁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이었다. 하나의 활주로를 이용, 매 15분마다 비행기가 내리고 뜨고 하였다. 그 모습이 아파트에서 손바닥 보듯 보였다. 지금 홍콩의 뉴커머등은 카이탁공항을 잘 모를 것이다. 그 곳은 홍콩의 장래와 함께 원대한 계획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9마리의 용처럼 9개의 봉우리로 병풍처럼 둘러쌓인 九龍連山, 이 작은 산맥이 중국 심천과 작은 강 하나로 연결된 新界와 구분 지어 주고 있다. 홍콩은 당초 영국여왕의 크라운에 박혀있는 다이아몬드 같은 홍콩섬과 그것을 지켜주는 쿠롱(九龍)반도였다. 쿠롱의 연산이 홍콩섬과 반도를 중국 대륙으로부터 막아주고 있는 형세였다. 그러나 올해로 60년이 되는 1941.12월 이맘때, 일본의 폭격기가 쿠롱연산을 넘어 당시 카이탁 공항에 있던 영국 공군기지를 기습한 것이다. 하와이 진주만 기습과 거의 동시였다. 당시 카이탁 활주로의 영국 항공기는 제대로 떠보지도 못하고 파괴되었다. 그리고 2주 남짓 후 크리스마스 저녁 펜닌슐라 호텔의 B1층에서는 촛불을 앞에 두고 일본과 영국의 장군들이 마주 앉았다. 영국여왕의 크라운에 백년간 박혀있던 다이아몬드가 일본 천황의 보석상자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홍콩은 3년 8개월의 일본치하로 들어간다. 홍콩의 블랙크리스마스. 지금의 홍콩 중심지의 눈부신 크리스마스 장식과 들뜬 홍콩사람들은 60년 전의 블랙크리스마스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