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피크 로드 (old peak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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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피크 로드 (old peak road)

홍콩 하면 모두가 좁은 땅에 수십층 고층건물이 쭈빗 쭈빗 솟아있는 마천루의 정글을 연상한다. 누군가 홍콩의 건물들을 보고 한겨울 고드름 같다고도 한다. 사실 그렇다. 홍콩의 중심지는 고층건물로 덮혀있다. 이 트레일은 사람들에게 홍콩 마천루의 정글 바로 옆에 열대우림(rain forest) 정글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길이다. 나는 홍콩에 처음 오는 사람에게 이 길을 안내하고 싶다. 이 길은 홍콩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 되어서 홍콩 역사에 관심을 가지신 분은 150년 전의 홍콩식민지를 개척한 영국의 아편상인을 생각하면서 걸을 수도 있고, 그러한 식민지 경영자를 가마에 태우고 땀을 흘리면서 오르내리던 중국인 쿠리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여튼 이 길은 그 두 종류의 사람들이 이용했던 길임에는 틀림없다. 1841년 홍콩섬에 첫발을 디딘 영국의 식민지 경영인들은 현지인(중국인) 사는 곳과 영국인 사는 곳을 구분했다. 현지 중국인은 배가 닿는 항구 근처(지금의 상환), 영국인은 지금 미들레벨이라는 섬 중턱 위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돈이 많은 아편상인들은 홍콩섬의 가장 높은 곳 빅토리아 피크 근처에 별장을 마련했다. 이 곳은 백인 전용지구로 중국인이 살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피크에는 돈 많은 부자들의 집이 많다. 식민지 스타일 기둥의 그림엽서 같은 하얀 주택이 빅토리아 하버를 굽어보고 있는 것도 그런 전통에서이다. 홍콩 총독의 별장도 그 곳에 있었다. 지금은 불타 없어지고 그 자리는 시민들의 공원이 되어 있다. 피크 한 쪽에 자세히 보면 'governor's walk'라는 오솔길이 있다. 문자 그대로 총독의 산책길이다. 그 산책길은 포푸람과 애버딘을 바로 보면서 꾸불꾸불 내려간다. 총독 산책길이 시작되는 넓게 탁 트인 평지가 바로 총독의 여름별장 터이다. 일년 중 가장 습하고 더운 계절은 6월부터 시작된다. 계절은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에어컨디션이 없던 당시, 6월이 되면 총독의 집무실은 피크의 여름별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때때로 이 곳에서 식민지 정부 고관들이 부부 동반 영국식 파티를 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크는 미들레벨과 또다른 분위기를 준다. 습도는 있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심할 때는 해안가보다 5。C 정 도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5。C는 큰 차이다. 파티가 있는 날이면 이 올드피크로드에 가마가 줄을 지어 오른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 가마꾼들이 영국의 고관들과 귀부인들을 태우고 올랐을 것이다. 습한 6월의 홍콩기후에 땀이 비 오듯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시원한 미네랄워터도 손에 쥐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길이 지금처럼 열대우림의 정글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풀만 좀 자란 바위를 깨서 만든 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뜨거운 볕으로 인해 쏟아지는 그 더위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래서 쿠리(힘든 일을 하는 사람의 뜻)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홍콩식민지 정부는 이 곳에 잡다한 나무를 심고 관리하여 지금처럼 울창한 수림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올드피크로드는 97년 6월까지 패튼 총독이 살던 홍콩의 구 총독부에서 시작된다. 구 총독부는 홍콩 상하이 은행(지금은 HSBC 은행으로 이름 바뀜) 본점에서 길을 건너 언덕길을 따라 계속 윗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피크로드 가는 길이 지금은 자동차길도 있고 피크 트램도 있다. 그러나 올드피크로드는 이러한 수단이 없었을 때의 길이다. 구 홍콩총독부에서 홍콩동물원으로 들어가서 우리의 갇힌 아열대 조류 등을 보면서 계속 윗쪽으로 오르면 홍콩 미들레벨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군이 나온다. 그 아파트군을 빠져나오면 올드피트로드 표지판이 나오면서 70도 경사의 가파른 길이 빨리 올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숲속길이라 한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새소리가 귀에 간지럽고 공기는 더없이 싱그럽다. 주말이면 죠깅 차림의 인근 주민들이 많다. 보통 1시간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가파른 길은 뱀처럼 S자형으로 꾸불꾸불 올라야만 한다. 피크에 다 오르면 피크트램이 다니는 구름다리 밑으로 지나 트램의 터미널 옆으로 오르게 된다. 땀에 흥건히 젖은 몸으로 피크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래로 펼쳐진 빅토리아 하버를 내려다 보아야 정말 피크에 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정상까지 다 오르고 나면 정말로 기분이 유쾌해진다. 자동차로 올라와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기분이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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