香ケ峯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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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을 좋아하면 물론 건강에 좋다. 그러나 同行을 잘 만나면 一石二鳥효과가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홍콩에 온 사람은 트레일을 통해 홍콩의 지리도 익히고 바다와 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경치를 감탄하고 자연을 음미하면서 트레일도 걷는다. 그러나 홍콩에 거주한 지 수년이 지난 사람에게는 트레일 자체가 재탕 삼탕이 된다. 반복되는 트레일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경관도 감상하지만 또 다른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트레일을 통해 작년 이 맘 때와 지금과의 체력과 건강을 비교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홍콩의 트레일 애호가들이 難코스로 여기는 곳이 하나 있다. 란타오의 포린사라는 절에서 출발하여 란타오 피크(봉황산)를 오르는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트레일이 그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이 트레일을 통해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하고 건강을 체크한다고 한다. 건강체크는 병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 트레일의 장점은 등산을 통해 사람을 사귀고 사귄 사람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레일의 동행이 좋으면 트레일의 재미는 倍加 된다. 언젠가 나는 윌슨 트레일 1번이 시작하는 스탠리에서 어느 나이가 듬직한 홍콩사람을 만났다. 이 분은 자기 이름이 람(林)이라고 소개하고 부모님은 上海가 고향으로, 1930년대 上海를 점령한 일본 사람들이 싫어 홍콩으로 이주하였다고 했다. 그랬는데 1940년대 초에 그 싫어했던 일본사람들을 홍콩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할 수 없이 마카오로 피해갔다고 한다. 람씨는 일본이 홍콩을 점령한 시기였던 이른바 日 시기에 마카오에서 태어났지만 日 시기의 홍콩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지금은 退休하여 열심히 산에만 다닌다고 하면서도 젊은 시절 일본 동경에서 유학한 적도 있어서인지 일본역사에도 밝고 일본말도 곧잘 한다. 何日君再來 우리는 twin peak를 오르고 있었다. 뒤로 스탠리 적주(赤住) 반도가 내려다 보인다. 람씨는 스탠리 감옥을 가르키면서 홍콩에는 죄수들도 고급주택지로 유명한 스탠리에 산다고 한다. 왜 스탠리에 감옥이 있을까? 람씨 말로는 일본이 홍콩을 점령하면서 홍콩의 영국사람들을 대거 수용함에 따라 스탠리에 이러한 시설들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로는 스탠리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중국의 人民解放軍이 사용하고 있는 스탠리 砲坮는 일본이 중국대륙을 하나씩 점령하기 시작하자, 일본이 남중국해에서 홍콩을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日軍을 막기 위한 영국군의 포대였다고 한다. 1941년 12월 결국 홍콩을 침략, 영국군을 항복시킨 일본군이 이 포대를 그대로 접수하고 스탠리에 영국사람들의 집단 수용소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람씨는, 얼마 전에 리바이벌로 유행했던 "何日君再來"라는 노래를 불러 유명해진 대만과 홍콩에서 활약한 여가수 테레사 鄧의 집도 이 스탠리에 있다고 설명했다. 테레사 鄧은 바로 그 유명한 鄧麗君이라는 여가수이다. 한때 중국에는 두 사람의 鄧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북경의 鄧小平이요 또 한 사람은 홍콩의 鄧麗君이었다. 何日君再來은 日占 시기 홍콩에서 夜來香과 함께 애창되었던 대중가요였다. 람씨는 何日君再來라는 노래를 중국말로 불러보고 뜻을 해석해 준다. 그리고 이 노래에는 日本(君)이 다시 일어나 홍콩으로 돌아온다는 二重의 의미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好花不常開 好景不常在 愁堆解笑眉 淚 西想思帶 今宵離別後 何日君在來 喝完了這杯 請進点小菜 人生難得幾回醉 不歡更何待 來來來, 喝完了這杯再說  "좋은 꽃은 항상 피어 있지 않고 좋은 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니 근심 걱정이 많아도 웃음을 띄우고 눈물이 넘쳐흘러 사랑을 적신다. 오늘밤 그대와 이별하면 언제 다시 그대가 돌아와 서로 만나리. 이 잔을 비우게나 인생은 몇 번이나 취할 것인가 미루지 말고 마시게나 자, 이 술잔 비우고 다시 이야기 하세."
이 노래를 부르면서 람씨는 뭔가 홀린 듯 1940년대 일본군의 군화소리가 홍콩거리를 울릴 때의 홍콩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나도 바짝 긴장을 하면서 람씨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우리는 twin peak 정상에서 남중국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 쏘았다. 약간 바다 안개가 끼여있지만 저아래 리펄스 베이가 보이고 그 다음으로 빅토리아 피크가 엷은 베일 속에 떠 있었다. 그는 문득 생각난듯 일본 점령시대 리펄스베이는 미도리가하마(녹색의 해변)로 불렀다고 하고 저 멀리 빅토리아 피크는 코우가미네(香ケ峯:향기로운 봉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일행과도 떨어졌다.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중간중간 쉬기도 하였다. 람씨와 나는 50년전의 홍콩을 더듬고 있었다. 그 날은 H. G. 웰즈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하는 이상한 트레일이었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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