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맛) 트레일 (9) 平等음식 :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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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맛) 트레일 (9) 平等음식 : 죽

우리 말 속에 "식은 죽 먹기"라는 표현이 있다. 식은 죽은 숟갈도 필요없이 훌훌 마시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에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은 죽 먹을 형편도 안되므로 집안의 숟갈을 팔아서 죽이라도 구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죽이란 우리에게 천대시된 것 같은 감이 있으나 중국에 와 보면 죽이 죽(粥)이라고 당당한 한자를 가지고 있고 그 위치가 대단함을 느낀다. 죽이 지금 중국어로는 "쪼오우"라고 발음하지만 옛날 중국 표준어는 "쭉"이었다. 옛날 중국어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 광동어에는 지금도 "죽"이라고 발음되고 있다. 우리가 옛날 죽을 그 이름과 함께 수입하여서인지 우리도 죽이라고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은 쌀이라는 米자가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쌀이 들어가야 한다. 요즈음은 죽을 고급화하여 비싼 전복을 넣어 만든 전복죽이 있고 잣을 넣어서 잣죽등이 나와 있지만 쌀이 들어가지 않는 죽은 죽이라기 보다 "갱(羹)" (중국음 "껑")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것은 湯(soup)의 일종이다. 중국 요리의 정수만 모아 두었다는 滿漢全席에 "죽"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죽이 만한전석의 대요리 메뉴(菜普)에 들어있을 정도로 고급 요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죽이 만한전석에 오른 것은 청의 건륭황제부터라고 전한다. 사냥을 좋아하던 건륭이 젊은 시절 길을 잃어 산 속을 헤매던 중 먹을 것이 떨어져 기진맥진하였으나 산 속 외딴 집의 도움을 받는다. 그 집은 아주 가난하여 양식이 없는데도 한 젊은이를 위해 쌀을 조금 넣고 물을 가득 부어 쑨 죽을 내놓는데 허기에 찬 건륭황제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음식이 없을 정도로 감동시켰다고 한다. 그 후 "죽"은 건륭황제의 명령으로 만한전석에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고 전한다. 역설적이지만 사실 죽이란 가난한 사람보다는 황제라든지 귀족들처럼 부자들이 많이 찾는 메뉴다. 부자들은 항상 먹는데 신경을 쓰다 보니까 소화기관이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다. 옛날 로마 사람들은 적당히 음식을 토해 내어 위를 비운 다음 다시 먹는 방법을 고안했지만 중국 사람들은 일단 먹은 음식은 전적으로 胃나 腸등 소화기관에 맡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만성피로에 쌓인 소화기관을 어린애 다루듯이 조심조심 해야 한다. 소화기관이 화가 나 있다든지 상태가 좋지 않으면 식욕이 사라져 아무리 좋은 음식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다. 홍콩의 화교가 잘 찾는 중국 일류 호텔의 조반(breakfast)은 죽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만성피로에 빠진 소화기관을 부드럽게 해주는 죽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밤새 비워있는 위를 보호해주기 위해서는 죽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흰죽은 淸腸潔胃라고 하면서 흰죽이 소화기관을 청결하게 해준다고 믿고 있다. 또 흰죽은 피로한 소화기관을 쓰다듬어 주고, 안마해주고 쉬게 해주고, 보호해 주어서 소화기관에 대해서는 어머니같은 존재(淸粥好像母親一樣)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죽은 平等 음식이다.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걸인까지 모두가 먹고 있으니 말이다. 죽과 시판 남쪽(광동, 상해)의 죽은 북쪽 및 서남(북경, 사천성)에서는 "죽"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시판"이라고 한다. 稀飯 즉 밥알이 희소하다는 뜻이다. 사실 북쪽의 시판은 죽처럼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마신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마치 뜨물 속에 밥알이 한알, 두알 들어있는 것이다. 잘못 보면 우유를 마시는 것 같다. 중국 남방은 미작 문화이므로 쌀이 풍부하여 물이 적고 쌀알이 많다. 그러나 북방은 밀가루 문화이므로 쌀이 귀하다. 그래서 쌀은 적고 물이 많다. 젊은 시절의 건륭이 길을 잃고 얻어먹은 것은 사실 죽이 아니고 시판인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아침 식사로 하는 시판은 저녁에 먹다 남은 밥에 물을 가득 부어 그것을 끓여서 식구들이 한 그릇씩 마시게 한다. 시판은 반찬이 거의 필요가 없으나 죽은 필요하다. 그래서 죽문화가 발달된 남방은 죽과 같이 먹을 반찬꺼리도 아울러 발달되어 있다. 땅콩을 껍질채 소금과 함께 볶아 만든 花生米가 있다. 죽 속에 화생미를 수북히 넣어서 먹기도 한다. 사천지방에서 재배되는 특이한 육질을 가진 식물을 절여 만든 짜차이가 있다. 우리도 즐겨먹는 중국식 밑반찬 짜차이는 일반 무와는 틀리다. 짜차이를 잘게 썰어서 죽 속에 넣어 먹는다. 죽과 같이 먹는 반찬은 대개 간장(醬)과 식초를 섞어 만든 보존 식품의 일종이다. 일본의 "다꾸앙"도 중국에 다녀온 "다꾸"라는 스님이 만든 식초를 이용한 무우절임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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