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홍콩 학생들과의 한국어 수업 때 종종 이런 농담을 던진다. “처음 홍콩에 여행 와서 먼저 스탠리 마켓에 갔어요. 그곳 중국어 지명이 붉은 기둥(赤柱)이잖아요. ‘붉은 기둥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다들 모른다는 거예요. 할 수 없이 다음 코스인 어드미럴티로 갔죠.
한자 지명은 ‘금으로 만든 종(金鐘)’이라 행인들에게 물었어요. ‘웨어 이스 골든벨?(금으로 만든 종이 어디 있어요?). 그거 보러 왔어요.’ 그런데 모두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그런 건 없다는 거예요. 제가 다음에 가려던 곳은 다이아몬드 힐이었는데 거긴 포기했어요” 붉은 기둥과 금으로 만든 종은 어디 있는 거지? 왜 지명과 실재가 다른 걸까? 그래서 찾아봤다. 홍콩의 지명들 이렇게 유래되었다!
1. 리펄스베이 (Repulse Bay, 淺水灣)
홍콩섬 남부에는 딥워터베이와 리펄스베이가, 신계 사이쿵 아래쪽에는 클리어워터베이가 있다. 딥워터베이는 한자로 ‘심수만 (深水灣)’, 즉 물이 깊은 만이라는 뜻이고 클리어워터베이의 중국어 지명은 ‘청수만(淸水灣)’으로 깨끗한 물의 만이라는 의미다. 모두 영어와 한자의 뜻이 일치한다.
그런데 리펄스베이는 ‘천수만 (淺水灣)’, 풀이하면 얕은 물의 만인데 영어 지명과 다른 뜻을 갖고 있다. 그럼 리펄스베이라는 영문은 어떻게 붙은 것일까?
리펄스(repulse)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격퇴시키다, 물리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1840년에 HMS 리펄스호는 천수만, 즉 지금의 리펄스베이에 정박한다. HMS 리펄스호는 1, 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영국 군함이다. 리펄스베이라는 지명은 이 군함의 이름에서 명명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 리펄스베이의 중국어 명칭이 천수만, 즉 얕은 물이라는 뜻이지만 실제 수심은 다르다. 필자는 이름만 믿고 들어갔다가 발이 쑥 빠져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다.
2. 코즈웨이베이 (Causeway Bay, 銅鑼灣)
코즈웨이베이의 중국어 명칭은 통루오완이다. 해안의 모양이 통루오(銅鑼)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통루오는 우리 나라의 징과 비슷하게 생긴 타악기다.
아마도 바다에서 들어오는 입구는 좁고 그 안은 둥글고 넓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코스웨이 베이에는 19세기 중엽 영국 자본의 자딘 매시선 본사가 위치하였다. 주변에는 창고와 설탕 공장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도로나 배로 동서 지역을 왕래하기에 불편함이 있었다.
결국 제방을 쌓아 만든 도로가 지금의 빅토리아 공원 앞을 지나는 코스웨이베이 로드다. 코스웨이는 일반 명사로 ‘둑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1950년대에 바다를 메워 빅토리아공원과 주변 지역이 형성되었다. 간척 사업을 통해 둥근 연안이 육지로 변함에 따라 통루오완은 현재와 부합되지 않는 지명이 되었다.
3. 에버딘 (Aberdeen, 香港仔)
홍콩섬 남쪽에 위치한 에버딘의 광동어 지명은 홍콩자이(香港仔)다. 홍콩의 아들, 작은 홍콩이라는 뜻이다. 이 항구를 통해 침향등 향나무를 원료로 한 목제품들이 많이 운송되어 나갔다. 그래서 영어로 ‘프래그런트 하버(fragrant Harbor: 향이 좋은 항구)’, 즉 홍콩이라 불리웠다.
1841년 스탠리에 상륙한 영국군은 홍콩섬을 순회한다. 에버딘을 지날 때 영국 장교가 이 마을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당시 가이드 역할을 했던 쳔쥔이라는 단민(수상 가옥에서 생활한 원주민)이 현지 방언으로 ‘홍콩’이라 대답한다. 영국군은 이를 ‘Hong Kong’으로 받아 적은 것이 이후에 도시 전체를 부르는 이름으로 확대된 것이다.
홍콩이라는 고유 명사는 마을 명칭에서 시작되어 홍콩섬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나중에는 구룡 반도와 신계까지 모두 포함시켜 명명되었다.
영문 지명 에버딘은 4대 에버딘 백작인 영국 외교상 조지 해밀튼 고든(1784-1860)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가 외무상으로 남경조약을 체결하여 홍콩을 식민지에 편입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그의 이름이 붙은 지명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4. 스탠리 (Stanley, 赤柱)
홍콩의 유명 관광지기도 한 스탠리의 중국 지명은 적주, 즉 붉을 적(赤)과 기둥 주(柱)로 쓰인다. 이곳에는 예전에 목화 나무가 많았다. 이 나무에서 피는 붉은 색의 꽃이 햇살 아래에서 붉은 기둥처럼 보인다고 하여 적주(광동어 ‘첵취’)라는 마을명이 붙었다.
또다른 일설에 의하면, 옛날에 이 지역에 해적들이 자주 기거하였다고 한다. 해적이 거주한다는 의미의 ‘적주(賊住)’가 객가 방언으로 붉은 기둥의 ‘적주’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그럼 스탠리라는 영문 이름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보수당 총수로서 세 차례나 영국 수상을 지낸 에드워드 조지 제프리 스미스 스탠리(1799-1869)의 이름에서 따 왔다. 현재 홍콩 지명과 도로명 곳곳에는 영국 고위 관료나 홍콩에서 총독을 지낸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다음호에 계속)
참고 자료
https://missfanls.wordpress.com/香港最令人費解的地名(香港地名系列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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