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보 식당을 안 간다면 홍콩을 가 봤다 할 수 없다
“오늘 점심은 어디서 하지?”
“점보 레스토랑으로 모시겠습니다.”
“거기는 관광객 가는 데잖아? 그러지 뭐, 오랜만에 가 보자.”
필자가 홍콩에 주재원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던 2004년, 본사에서 사장님이 출장을 오셨다. 당시 나의 선임자는 막 도착하신 사장님을 점보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사장님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털털하신 분으로, 우리가 모시려는 장소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셨다.
덕분에 나도 홍콩의 점보 레스토랑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보게 되었다. 에버딘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조그만 배를 타고 잠시 후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식당에 도착했다.
명나라 궁전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보 레스토랑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웅장하고 화려하여 정말 바다의 왕궁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후 얼마 안 돼 나는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
며칠 전 46년 역사의 수상 식당 점보 레스토랑이 찬란한 과거를 뒤로 하고 홍콩을 떠날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2020년 3월 문을 닫은 후 인수자를 찾지 못한 것이다.
한때 ‘점보 레스토랑을 가 보지 않았다면 홍콩을 갔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수상 식당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점보 레스토랑의 역사
에버딘 바다 위에 수상 식당이 들어선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업을 위해 어부들이 몇몇 배 위에서 작은 식당을 연 것이 효시였다. 이후 이곳에서 혼례도 거행되는 등 점점 규모가 커지며 발전하기에 이른다.
세계 2차 대전 후 홍콩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해상의 식당은 규모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50년, 기존의 레스토랑을 통합한 타이박수상식당(太白海鮮舫)이 문을 연다.
그리고 그 옆에는 호이콕(海角)이라는 해상 음식점도 문을 연다.
이 두 곳이 호황을 맞으면서 몇몇 소상인들이 자본을 모아 더 큰 해상 식당을 여는 프로젝트에 합의한다. 이것이 바로 점보 레스토랑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르러 커다란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4급 대형 화재가 발생된 것이다. 지금은 퇴역하여 사이완호 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알렉산더 그랜덤호가 당시에 화재 진압을 위해 나섰다.
불은 꺼졌지만 이 사고로 34명이 숨지고 24명이 부상을 입는다. 아울러 허무하게도 배 전체가 불에 타 소각된다.
이를 재건한 인물은 바로 2020년 타계한 카지노 왕 스탠리 호와 신세계발전의 청유통이다. 청유통은 빌딩 K11 및 보석업체 주대복의 소유주다. 한화로 46억이 투자된 점보 레스토랑은 1976년 착공되어 2년 후 완성된 모습을 드러낸다.
개업 1년만에 투자금 회수, 이후 황금 시대 구가
홍콩의 황금 손들이 투자해서인지 점보 식당은 문을 연 지 1년만에 자본금을 회수한다. 타이박과 호이콕도 점보 레스토랑이 인수한다. 전성기에는 하루에 수십만 홍콩 달러를 벌어들여 소위 현금 찍는 기계라고도 불리었다.
직원 수도 최대 500여명까지 달했다고 한다. 현재 홍콩의 자판기에서 코카콜라를 사 먹으려면 10달러 이하의 동전을 넣어야 하는데 70년대 이 식당에서 팔리는 콜라는 이미 20달러(한화 약 3600원)에 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 이곳을 방문한 서양 여행객들 사이에는 주변의 바다로 동전 던지기가 유행이었다. 해저에 동전이 쌓이며 아이들이 수입을 올리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 줍곤 했는데 운 좋은 날은 십 여달러를 건지기도 했다.
당시 1인당 평균 수입이 약 1,000달러 하던 시기였으니 그 정도면 꽤 짭짤한 수입이었다.
이 식당 안을 들어서면 마치 중국의 옛 궁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내부 디자인도 독특했다. 용의(龍椅)라는 공간은 이 식당의 상징이었는데 황실 내부를 재현했다. 2층에 그려져 있는 벽화 또한 동서양의 조화를 보여주는 화려한 그림으로 방문객의 시선을 끌었다.
이로 인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하여 톰 크루즈, 기네스 펠트로 등 유명한 해외 스타들도 이곳을 거쳐 갔다. 타이박 및 점보 식당은 영화 촬영 장소로도 각광 받았다.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무간도 2’, 이소룡의 ‘용쟁호투’, 주성치의 ‘식신’과 한국 영화로는 ‘도둑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한국 예능프로그램인 ‘신서유기’도 점보 레스토랑을 다녀 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은 점보 레스토랑
1980년대까지 사업성은 괜찮은 편이었으나 이후 점보 레스토랑이 주변의 요트 클럽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며 쇠퇴의 길을 걷는다. 교통이 불편하고 중간 연결 역할을 하는 나룻배가 전동배로 바뀌며 매력을 잃어간다.
필자의 홍콩 지인들도 이곳에 대해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비싼 곳으로 인식되어 소위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필자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한 학생은 점보식당하면 기억나는 것이 용의와 영화 ‘식신’에서 주성치가 보여준 요리 대결 장면이라고 말한다. (영화 ‘식신’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져 가던 바다 위의 용궁 은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고 현재까지 휴점 상태다. 아울러 적절한 인수자도 찾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
홍콩의 상징이 하나 더 사라져 갈 지, 아니면 극적으로 구원자를 찾아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지 점보 레스토랑 앞에 놓여진 운명이 궁금하다.
참고 자료:
https://www.wetoasthk.com/【珍寶海鮮舫】聞名世界的海上酒樓, 英女皇都嚟/
https://www.hk01.com/突發/776746/珍寶海鮮舫-開張第一年已 回本-勁過印鈔機-每日生意額幾十萬
https://www.weekendhk.com/dining/珍寶海鮮舫-離港-歷 史-ww07-132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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