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바로 위에는 심천이 있습니다. 보통화로 선전(Shēnzhèn), 광동어로 쌈잔(Sam1zan3)이라고 읽는 심천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바닷가 마을이었지만 등소평이 개혁개방 정책을 편 후 급속도로 성장해 지금은 북경, 상해, 광주와 함께 중국 4대 도시로 불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심천은 한자로 深圳이라고 쓰는데, 깊을 심(深)은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글자이지만 천(圳)은 심천이라는 지명을 쓸 때를 제외하고는 볼 일이 정말로 없는 글자입니다. 한국에서는 쓰이지조차 않았던 한자이고 중국에서도 북부 지방에서는 볼 수 없던, 남부 지방 사투리에서만 사용되던 글자가 바로 이 천(圳)입니다.
천(圳)을 분해해보면 흙 토(土)와 내 천(川)이 되는데, 그 모양 그대로 논에 만든 배수로를 뜻하던 글자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도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한국에서 쓰이지 않던 글자의 한자음을 정할 때에는 반절(反切)이라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반절은 한자 한 글자의 발음을 다른 두 한자를 사용해서 설명하는 방식을 뜻하며 첫 한자에서는 소리의 앞 부분(성모)을, 둘째 한자에서는 소리의 뒷 부분(운모)과 성조를 따 오게 됩니다.
심천의 천(圳)은 반절로 표시하면 市流切가 되는데 이는 저자 시(市)의 앞 소리와 흐를 류(流)의 뒷 소리를 합치는 반절(切)이라는 뜻입니다. 즉 ‘슈’가 되는데 한국 한자음에는 그런 발음이 없으니 ‘수’라고 읽으면 되고, 그래서 컴퓨터에서 圳을 찾으려면 ‘천’이 아니라 ‘수’에서 찾아야 합니다.
낯선 한자의 발음을 정할 때에 이렇게 체계적으로 반절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그와 별개로 간단하게 전체 한자의 일부분에서 발음을 따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圳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흙 토(土)와 내 천(川)으로 나뉘는데, 이 한자가 처음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에 누군가가 간단히 내 천(川)과 동일한 발음으로 읽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마도 그런 과정을 거쳐 圳의 발음이 천으로 널리 퍼졌고, 이제는 深圳을 대부분 심수가 아니라 심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언어에는 사회성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런 한자음을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요. 이런 발음을 속음(俗音)이라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圳은 한자 사전에 ‘도랑 수’, ‘도랑 천’이렇게 두 발음으로 등록되게 되었습니다. 圳이라는 글자 하나에만도 참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네요. 다음 번에 심천에 갈 때면 圳이라는 글자가 조금 더 친숙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