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한류의 어제와 오늘 - ‘마지막 승부에서 BTS까지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한류의 어제와 오늘 - ‘마지막 승부에서 BTS까지

“그동안 일본 드라마가 인기 있었는데 한국 거는 처음 봤어. 한국 배우들이 잘생기고 예쁜줄 몰랐네.” 1995년 대만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필자가 들은 말이다. 

현지에서는 얼마전 한국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방영됐었다. 장동건, 손지창, 이종원, 심은하 등 당시 청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여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다. 이 노래의 주제곡도 인기가 있어서 한 대만 여학생은 내게 한국가면 노래 테잎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것이 필자가 접한 최초의 한류였다.

 
그리고 취업 후 2000년대 초반 홍콩을 출장차 몇 번 다녀갔었다. 그때 같은 회사의 현지 주재원으로 있던 분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요즘 ‘엽기적인 그녀’가 엄청 인기야. 주변 사람들이 많이들 봤더라고.” ‘엽기적인 그녀’는 홍콩에서 14년간이나 최고 흥행 한국 영화 기록을 보유한 작품이 되었다. 이 기록은 2016년 ‘부산행’에 의해 깨진다. 

한류는 이 당시 본격적인 흥행몰이를 위한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필자가 2004년 홍콩에 주재원으로 온 이후 이곳 거래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국 드라마와 가수들이 종종 화제에 올려졌었다. 

 
한번은 거래처의 한 홍콩 사장이 “요즘 내 아내가 ‘겨울연가’의 노랑머리한테 푹 빠졌있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일본인 파트너 역시 거들었다. “그 사람 일본에서 욘사마”라고 불리는데 인기 끝내주지” 하며 배용준을 언급했다. 

 
또한 드라마 ‘풀 하우스’로 홍콩에서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된 ‘비’도 종종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홍콩에서 시청률 50%까지 찍기도 했던 드라마 ‘대장금’도 화제에서 빼 놓을 수 없었다. 한류는 딱딱한 비즈니스가 오가는 자리를 부드럽게 해주는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한 것이다.

동업계 한 주재원의 경험담이다. 차를 운전하다가 가볍게 사고가 나서 교통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그 홍콩 경찰은 반가워하며 대뜸 “‘주몽’ 봤어요?” 하고 물어보더란다. 차를 세워놓고 바쁜 와중에 그 한류 경찰팬은 줄거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드라마 얘기를 늘어놨는데 어째든 덕분에 사고가 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2000년대 초반부터 한류의 인기에 불이 붙으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점점 새롭고 강하게 인식되었다. 당시 한 모임에서 어떤 교민 이런 얘기를 했다. “요즘 홍콩에서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많이 높아졌어요.” 한류 덕분에 한국산 화장품, 패션, 기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최근 바이러스로 인해 한국 마스크도 최고의 품질로서 비싸게 팔리고 있지 않은가. 

필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 공부를 위해 학원을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중국어만 가르치고 있었다. 하루는 교복을 입은 두 여학생이 와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냐고 물어봤다. 

슈퍼 주니어의 팬들이었다. 이들은 필자의 첫 한국어 수업 학생이 되었고 덕분에 나는 경험을 쌓은 후 HKU SPACE(홍콩대학교 전업진수학원)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홍콩내 최대 한국어 교육원으로 매년 2,000명 이상이 와서 수강하고 있다.

HKU SPACE에서 많은 홍콩의 한류팬들을 만나며 한국의 드라마, K-Pop, 더 나아가 우리의 문화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를 물어보면 열의 아홉은 모두 한류의 영향 때문이었고 업무 관련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유행이라는 것이 곧 사그라들게 마련인데 한류가 꺼지면 어떡하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유행은 20년 가까이 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예전에 홍콩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다. 

한류의 힘에 대한 배경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산업을 중점 육성 과제로 지정하여 지원한 것을 원동력으로 꼽았다. 한 현지 신문에서는 한국 드라마 인기 비결을 분석하기도 했다. 한국이 드라마의 왕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매년 무수히 많은 작품을 쏟아내다 보니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작의 질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한국 드라마에 대해 말하자면 다른 긍정적인 영향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한국 문화 전파자로서의 역할이다. 드라마를 자주 보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의 식사 예절, 음주 문화, 놀이 문화, 사회 예절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어떻게 알아요?’하고 물어보면 ‘드라마에 다 나와요’라고 대답한다. 얼마전 종영된 ‘이태원 클라쓰’에서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음주 예절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한국을 알리는데 막대한 기여를 하는 한류 배우와 가수, 그리고 이들을 키워내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관계자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류는 홍콩에서 필자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더 나아가 한국 문화를 알리며 국가 위상을 드높인 것에 적지않은 공로가 있다. 그리고 한류 관계자들이 만들어내는 쇼핑, 관광등 부가가치 또한 상당하다.

 
1~2년 전이었다. 코스웨이베이에 약속이 있어 갔다가 길에서 한 홍콩 지인을 만났다. 바로 10여년전, 아내가 ‘겨울연가’의 노랑 머리에 빠져있다고 말한 그 거래처 사장이있다. 어느새 하얀 머리가 된 그는 반가워하며 말했다. “야 브라이언~ 정말 오랜만이야. 명함 좀 줘 봐. 우리 딸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데 요즘 BTS에 아주 미쳐있다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