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완차이 클라쓰 VS 이태원 클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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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완차이 클라쓰 VS 이태원 클라쓰

최근 필자는 6년전 ‘미생’ 이후 처음으로 드라마를 한 편 보게 되었다. 얼마전 종영된 ‘이태원 클라쓰’이다. 드라마 주제곡 ‘시작’이라는 노래가 너무 좋았고 드라마의 주요 장면을 담은 뮤직 비디오가 나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홍콩에서도 꽤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박새로이(박서준 분)가 자신의 부친을 죽인 요식업 재벌 아들과 이 사건을 덮어버린 그의 아버지에 복수하기 위해 같은 요식업 기업으로 성장하여 성공 신화를 쓴다는 줄거리이다. 여기서 박새로이는 올바른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불의와 부당한 유혹을 거부하며 맨주먹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그런데 홍콩에서도 박새로이와 견줄만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그 주인공은 ‘완차이 마터우 (灣仔碼頭)’의 장지엔허(臧健和)이다. ‘완차이 마터우’는 냉동 식품 브랜드이고 ‘마터우’는 부두라는 뜻이다. 장지엔허는 이 회사의 여성 창업주이다. ‘완차이 마터우’는 홍콩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다. 

이 실존 성공 신화의 주인공과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둘 다 백지에서 시작하여 요식업계의 최고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부터 ‘완차이 마터우’ 아니, ‘완차이 클라쓰’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풀어 보겠다.

 
1945년생 장지엔허는 중국 샨동 칭다오 출신으로 태국 국적의 화교 남편 사이에 두 딸을 낳았다. 어느날 남편이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자산을 상속받기 위해 태국으로 간다. 그리고 3년 후 그녀가 남편을 만나러 태국에 갔을 때 그의 옆에는 재혼해 같이 사는 새 부인이 있었다.

장지엔허는 바로 두 딸을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도중에 경비 문제로 홍콩 땅에 머물러야 했다. 홍콩에는 아무 친척, 지인의 연고도 없었고 심지어 광동어를 쓰는 현지인들과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린 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식당 설겆이, 화장실 청소부, 야간 진료 간호사 등 하루 3가지 일을 하면서 매일 20시간 일을 했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했고 그러다 허리 뼈에 금이 가고 당뇨병까지 얻게 된다. 

이때 한 친구가 장지엔허에게 만두 빚는 솜씨가 좋으니 장사를 해 보라 권한다. 용기를 얻은 그녀는 돌봐줄 사람이 없는 두 딸을 데리고 완차이 부두 근처에서 만두 노점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피가 두껍고 고기가  많이 든 그녀의  북방식 만두는 피가 얇고 새우를 주 원료로 하는 남방식 만두 ‘윈툰’과 달라 시행착오를 겪는다. 이후 현지인의 입맛과 스타일에 맞게 개량해 나가면서 점차 호평을 받기 시작한다. 이때 기회가 찾아온다.

1983년 일본인의 파티에 그녀가 만든 만두가 선을 보인다. 그 모임에 참석한 일본의 다이마루 백화점 사장의 딸이 그 만두를 앉은 자리에서 20개나 먹으며 아빠의 시선을 끌게 된다. 

상품 가치를 발견한 사장이 장지엔허를 찾아가 자신의 백화점에 만두 공급 및 판매를 위한 계약을 제시한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가 투자자들을 만나 날개를 달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절호의 기회를 거절한다.

거절한 이유는 사장이 그녀의 만두 포장에 일본 백화점 브랜드를 사용하도록 제안했기 때문이다. 계약을 거절하고 집에 돌아온 그녀에게 두 딸의 원성이 폭발했다. 

그녀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내가 만든, 중국 제품이야. 그리고 일본인들이 내 노하우를 배껴가고 나면 엄마는 버림받게 될 걸”. 어떤가?  이 부분은 자신의 소신이 확실한 박새로이와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그 일본 사장은 결국 장지엔허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녀의 제품은 자신의 브랜드 ‘완차이 마터우’의 이름을 달고 당당히 일본 백화점에 출시된다. ‘완차이 마터우’, 즉 완차이 부두는 자신의 삶과 땀, 그리고 꿈이 스며있는 생활 터전이었던 것이다. 

공장 설립을 통해 대량 공급이 이루어지면서 그녀의 브랜드는 홍콩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리고 1997년, 미국의 대기업 필스배리 컴퍼니(Pillsbury company)측이 무려 미화 6,400만 달러를 투자하며 중국의 샹하이, 광저우에 공장을 세우고 중국, 미국, 유럽 등 국제 시장 공략에도 성공한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한 주부가 40년이 지나 타지에서 한화 1조에 가까운 자산 보유자가 된다는 해피앤딩으로 그녀의 성공신화는 끝을 맺는다. 

장지엔허의 인생은 너무 드라마 같아서 정말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1995년 홍콩의 TVB에서 방영된 연속극 <만두황후(水餃皇后)>는 그녀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이 만두황후는 교육 사업에도 헌신하여 중국에 학교를 설립했고 홍콩 중문대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교육관(Chong Kin Wo Hall)이 세워지기도 했다. 작년, 장지엔허는 지병인 당뇨와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그녀는 최고의 원료로 정성을 쏟아 만든 것을 성공 비결로 꼽는다. 한국에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가 있다면 홍콩에는 ‘완차이 클라쓰’ 장지엔허가 있었다. 오늘 슈퍼에 간다면 ‘완차이 마터우’를 장바구니에 담아 보자. 그녀의 인생이 녹아 있는 만두에 파란만장한 여러가지 맛이 느껴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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