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에 고깃국, 김일성 유훈이 아직도 권력승계의 이정표?
백승주(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1994년 7월 8일은 냉전시대 북한을 이끌었던 지도자이자 한 시대를 고통스럽게 했던 김일성이 사망한 날이다. 불귀의 객이 된지 이미 17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말과 이미지는 ‘유훈통치’라는 미명하에 북한 국내정치의 중심이 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북한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조선노동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직함으로 김정일 이후 승계자 지위를 차지한 김정은은 김일성에 대한 북한주민의 호의적 제스처를 고스란히 이어받기 위한 다양한 정치기교를 다하고 있다. 김정은은 ‘김일성의 군중연설, 현장지도, 회의 주재하는 모습’ 까지도 섬세하게 흉내내는 ‘김일성 따라 배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언론에 따르면 김정은은 심지어 2007년 후계자로 내정된 뒤 공식석상에 등장한 2010년 9월까지 3년여간 모두 6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성형수술까지 받았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여전히 존경을 받고 있는 김일성의 풍모를 닮도록 함으로써 그의 카리스마를 후계구도 정착에 활용하려는 의도로 볼 수 밖에 없다.
한편, 김일성은 지난 94년 4월 “쌀밥에 고깃국은 우리 인민들의 세기의 숙망이라면서 21세기가 오기 전에 이 염원을 기필코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절절히 인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하는 작자가 급사한 후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죽어나간 고난의 행군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8억 9천만불이라는 막대한 돈을 투입하여 초호화판 시체 보관소를 건립하고 시체관리에만 한해에 11억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8억 9천만불은 당시 국제가격으로 옥수수 600만톤을 구입하여 북한 주민전체의 부족한 식량문제를 최소 5년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김일성을 승계한 김정일도 시간날 때마다 ‘흰쌀밥에 고깃국’ 타령을 늘어놓았으나 2010년 1월 현지방문을 통해 “정치․사상․군사 분야에서 강국지위에 올라섰지만, 인민생활 면에서 수령(김일성)이 인민들에게 약속한 ‘흰쌀밥, 고깃국, 비단옷, 기와집’에 살게 하려는 유훈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김정일에 이어 3대 세습을 진행중인 김정은도 2010년 12월 초순 평양에서 열린 북한의 고위 경제대책회의에서 1946년 이후 되풀이하고 있는 주민 선동용 당근인 ‘흰 쌀밥에 고깃국 타령’을 또 다시 내세우고 있다.
김정은은 2010년 12월초 평양에서 개최된 한 회의에서 “3년내 경제를 1960∼1970년대 수준으로 회복시켜 김일성이 내걸었던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생활수준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현재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60년이 넘도록 달성하지 못한 ‘쌀밥에 고깃국, 기와집에 비단옷’을 해결하는데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다. 무엇보다 인민들의 생활 개선에 정치적 명운을 거는 것이 그의 진심이라면 그 방향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김정은이 “핵보유냐, 쌀밥이냐”라는 정치적 과제에 대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이다.
북한이 김일성의 유훈인 쌀밥에 고깃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정책우선 순위를 ‘쌀밥’ 보다는 ‘핵무기 개발’이라는 정치군사적 야욕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핵무기 개발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김정일 체제 기조를 답습하는 한 ‘쌀밥에 고깃국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최근 북한을 탈출한 수많은 탈북자들은 북한주민들이 당국에 거는 경제적 기대는 허울뿐인 ‘쌀밥에 고깃국 타령’ 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먹거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라고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17주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북한은 60여년에 걸쳐 주민들에게 한 “쌀밥에 고깃국”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선군정치에 매달리기 보다는 주민의 먹거리를 먼저 생각하는 선민정치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한 첫 번째 조치로 진정성 있는 개혁개방 정책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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