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본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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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회 홍콩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평이 어떤 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300여편의 영화들이 상영되는 축제에서 한국영화가 세 편밖에 상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영화가 이 영화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줄 뿐이다. 그러나 한국영화를 대하는 홍콩 관객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 상영되던 싸이완호 씨빅센터 극장에는 관객이 좌석의 반 밖에 채우지 않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가도 일어서지 못하고 막 내린 대형화면을 쳐다보던 외국인들과 몇몇 홍콩인들의 표정이 진지했음을 놓칠 수 없었다. 이 영화가 시종일관 보여주는 풍경이 우리 부모님 시대의 한국 전통미였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인 그들이 빠져들었다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가 그 만큼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마음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이광모 감독은 지루할만큼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영화를 찍었으며, 단 한번도 배우를 클로즈업하지 않고 장거리에서 그들의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눈에 아프도록 들어오는 우리 입음새와 산천과 피난시절 생활상을 대형화면으로 홍콩 한복판에서 동요 '고향의 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함성을 지르고 싶을 만큼 좋았다. 씨티홀에서 있었던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상영관에도 객석은 가득 찼다. 영화제 진행자들에게 물어보니 141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사물과 현상을 어찌 바라봐야 하는지 정의 내리기를 거부하는 감독이 사물과 현상,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을 '영화의 천재'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1997년에 '돼지가 우물에 빠지던 날'로 홍콩관객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던 홍상수 감독은 이번에도 호흡이 길고 차분한 영화기법으로 좌석을 가득 메운 한국영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국에서 크게 호평을 받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역시 일찌감치 표가 매진된 영화 중의 하나였다. 홍콩아트센터에서 두 번째 상영이 있던 날도 객석은 맨 뒷자리까지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는 빛의 예술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사람들의 감정을 빛으로 표현했다. 홍콩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의 나라인지를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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