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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구룡-홍콩섬 왜 교량이 아닌 터널일까?

기사입력 2023.08.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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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스하버터널 지도.png

     

    홍콩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가졌던 궁금증이 있었다. 

    홍콩섬과 구룡 반도를 연결하는 교통망에 대한 것이었다. 왜 바다 위의 다리가 아닌 바다 아래의 터널로 이어졌을까?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같은 근사한 다리를 짓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화려한 대교가 있었다면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빅토리아 하버를 더욱 돋보이게 했을 텐데 말이다.

     

    이 질문을 홍콩 생활의 선배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다리가 있으면 큰 배가 다닐 때 통행에 지장이 있어서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가 보다하고 넘겼던 나는 이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다의 아랫길을 통해 두 지역을 오갔다. 

    그리고 문득문득 그것이 사실일지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알아 보았다. 혹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교민들이 있지 않을까 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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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량이냐 터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구룡 반도와 홍콩섬을 연결하는 교량 건설에 대해서는 홍콩 정부도 일찍이 고려한 바가 있다. 

    최초의 기록은 1902년의 자료에 언급되어 있다. 홍콩섬에는 인구가 적어 예전에는 배를 통해 대륙과 왕래가 이루어졌다. 

    개항을 통해 빠른 발전이 이루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량의 인구 유입으로 연결되었다. 

    교량을 짓는 방안에 대한 검토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참고로 오늘날 홍콩섬에는 인구의 20%가, 구룡에는 30%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크로스하버터널 코즈웨이베이 입구 공사 장면.jpg

     

    1924년이 되어 두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 개선안이 본격적으로 수면위에 오른다. 

    홍콩 정부는 전문가들에게 사업성 검토를 지시하여 보고토록 하였다. 

    1928년 영국의 도시 계획 전문가이자 엔지니어인 패트릭 아버크롬비는 도시 계획 보고서 초안에서 교랑 및 해저 터널 건설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하나 바로 착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51년 홍콩크로스하버컨설팅위원회는 정부에 이 사업 시행을 정식 건의하게 된다. 

    정부는 받아들여 본격적인 검토와 연구에 들어갔다. 이때 ‘다리냐 터널이냐’가 주요 이슈로 부각된다. 

    이와 관련, 해리만 프로퍼티사에서 정부에 상세한 기획안을 제출한다. 

     

    홍콩섬 모리슨 힐과 구룡의 침사추이로 연결되는 대교인데, 전체 길이 8,760피트, 폭 28.5피트, 고도 170피트로 건설된다는 방안이었다. 

    2층으로 이루어져 양쪽에는 인도가 나 있고 한쪽에는 자전거와 트램이 다니도록 설계되었다. 

    총 비용은 1억 5천 2백만 홍콩달러로 해저 터널 대비 9백만 홍콩달러가 저렴했다.


    관련 사업은 결론이 나지 못하고 보류되었다. 해리만 프로퍼티의 동일인이 회장으로 있던 빅토리아시티발전유한공사에서 1961년 새로운 계획안을 제출한다. 

    계획안에는 교량 건설과 해저 터널 건설의 두 가지 방안이 담겨있었다. 둘 다 코스웨이 베이와 홍함을 연결하는 노선이었지만, 교량 건설에 좀 더 무게 중심이 실려 있었다. 

    비용면에서 2억 3천 6백만 홍콩달러가 드는 대교가 2억 8천 3백만 홍콩달러 소요의 터널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자본 회수에 있어서도 16년 대 14년으로 교량이 2년 더 빨랐다.


    저렴한 비용의 교량, 그러나 결론은 해저 터널로!


    비용적 측면만을 고려하면 당연히 교량 건설로 결론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1963년, 정부 측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400피트 높이의 다리를 세웠을 때 항공 안전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당시 홍콩의 국제공항은 도심의 카이탁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카이탁 공항은 주변의 산, 바다, 높은 건물들 때문에 착륙이 힘든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량으로 인해 착륙 시 시야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또한 악천후가 닥치면 비행기가 항공에서 선회를 할 때 발생할 위험성도 언급되었다.


    해운 교통에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 또한 지적되었다. 태풍의 직접적 영향 하에서 선박 운행에 어려움이 생기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빅토리아 항의 깊은 수심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와 더불어 세계 3대 항구 로서의 입지를 가능하게 하였다. 

    개항 초 영국이 이곳에 눈독을 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총 면적 41 평방킬로미터의 넓이에 매년 22만척의 배가 드나든다. 

    이에 비해 구룡과 홍콩섬의 폭은 좁아 교량 설치 시 해상 교통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걸리적거리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려된 것은 미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섬 빅토리아 항과 구룡의 침사추이까지는 2km에 불과하다. 

    두 지역의 거리가 짧고 양쪽 모두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주변적 여건상 대교를 연결되는 경우 미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이런 종합적인 고려로 인해 결국 두 지역을 잇는 교통망은 터널 건설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뒤로 빠지고 빅토리아시티발전유한공사가 토지를 구매한 후 투자금 모집에 나선다. 

    영국의 로이즈 은행으로부터2억 홍콩달러의 투자금을 대출받아 건설을 위한 자금을 마련한다. 

    그리고 지금의 홍함 터널은 1972년에 완공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당시 대교냐 터널이냐를 놓고 저울질했을 때 반대의 결론이 나왔더라면 지금 홍콩의 풍경도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다리로 연결된 빅토리아 항은 어떤 모습일까? 해저 터널 건설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니 새로운 궁금점이 그 자리를 메운다.


    <참고 자료>

    https://www.hk01.com/社區專題/131959/社區異想-香港曾擬建維港跨海大橋-海底隧道如何-打贏

     https://www.ponews.net/news/n2729fectz.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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