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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가 장악한 한국 중화요리에서 인정받은 이태영 기능장 봉루 합류

기사입력 2021.10.2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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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의 한국식 중화요리 봉루가 한국 조리기능장 이태영 기능장을 초빙했다. 현재 기능장은 한국에서 조리사 국가기술자격의 최상위 등급이다. 최고 장인으로 인정받는 조리기능장은 1,000여 명에 불과하다.

    이태영 기능장은 호텔 레스토랑과 요식업전문그룹, 산업인력공단 위원 등 여러 경력을 갖춘 인물이다. 올해 요리전문 대학에서 교수임용 기회도 있었지만 중화요리가 가장 치열한 홍콩에서 마지막 실전을 불사르고 싶었다고 한다. 세계의 진미, 광동요리, 식신급 셰프, 음식 경쟁이 치열한 홍콩에서 한국식 중화요리를 보여주고 싶어 홍콩에 왔다고 전했다.
     
     
    이태영 기능장은 1978년 요리에 입문해 일반 중화요리 식당에서 조리 일을 배운 뒤1988년 올림픽 직전 마포에 있던 가든호텔(이후 홀리데이인, 베스트웨스턴 프리미어호텔로 변경)에서 본격적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평범한 식당보다는 최고 레벨에서 일해봐야 시야가 달라지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호텔로 지원했다고 한다.

    92년부터 주방장을 맡으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직속 상관이 한 대학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함께 참석하자고 했다. 막상 가보니 저보다 부족해 보이는 분들이 교수, 강사로 나서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만학도의 길로 들어섰다. 뒤늦게 대학에서 외식경영을 공부하고 조리과학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

    1997년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조리기능사 시험 채점 감독위원으로 위촉됐다. 조리기능사, 산업기사, 기능장까지 채점하는 감독위원, 문제출제위원으로 선임됐다.
     
     
    기능장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한식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중식 전문 셰프였던 그는 한식의 모든 요리를 섭렵하고 이론적 배경까지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2008년에 조리기능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기능장 수는 전국에 약 500명 정도였고 지금은 1,000명 정도이다. 국내 요식업계 조리사는 약 7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가 기능장으로서 확실한 자부심을 증명한 일화가 있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중화요리는 화교계가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조리사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기관에서 중화요리에 관해서는 화교들이 인정받고 있었고 단단한 유리벽이 있었다. 현재 식품제조뿐만 아니라 위탁급식, 식품유통, 식자재유통, 물류센터 등을 운영하는 아워홈(Our Home Ltd)에 입사할 때 운명의 신이 찾아왔다. 최종 면접은 로얄패밀리가 참석한 자리에서 누가 요리한지 전혀 알 수 없게 브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최종 면접에 나선 4명 중 혼자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화교들이었다. 가장 높은 월급을 써 냈고 한국 사람이었지만 당당히 합격했다. 아워홈에서 근무하는 동안 확실한 성장을 이뤘고 좋은 임원들의 총애를 받으며 일했다고 한다.

    이태영 기능장은 자신의 장섬에 대해 앞서나가기 보다는 흡수되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특히 소속이 바뀌어 합류할 때는 천천히 녹아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정도 녹아든 뒤, 새로운 매장을 개업하거나 온전한 책임자 자리에 올랐을 때는 확실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게 요리의 핵심이다. 간이 정말 중요하고 어떠한 플레이팅을 할 수 있느냐. 승부는 거기서 나는 것이다. 나무, 스텐레스, 유리 등 담는 그릇의 재질에 따라서 혀에 닿는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조금만 더 좋은 기술을 전수하고 새로운 인력을 보강하면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식당 운영을 위해서는 상위 1% 또는 중간 또는 일반 대중 등 타켓으로 하는 소비자 층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에서 수많은 외식사업을 개업하고 인수하는 일을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코차이나 F&B에서 추구하는 방향에 맞춰 컨셉을 정확하게 잡는다면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손정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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