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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예전에 주재원으로 있던 회사의 후임자와 만나 맥주 한 잔 하던 날이었다. 나의 대학 후배이기도 했던 그는 최근 바이러스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 본사의 방침과 홍콩 거래선 상황 사이에서의 갈등 등 고민을 토로하였다.
“아, 내일 거래선과 연락해서 담판을 지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이 하소연은 내가 10여년전, 이 친구의 자리에 앉아서 했던 바로 그 고민과 레퍼터리였다. 주재원으로 있던 지난 4년간의 세월들이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2004년 2월, 필자는 설레이고 흥분된 마음으로 홍콩 땅을 밟았다. 주재원으로 허락된 홍콩에서의 시간은 4년이었다. 오자마자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노트북 컴퓨터, 휴대 전화등 이곳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분주했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자유로움도 만끽했다. 신이 내린 보직이라는 1인 주재원으로 부임하여 현지인 직원 한 명 외에는 상사나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한국의 중견 제지업체에 근무하였는데, 홍콩 지사에서의 역할은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것을 현지 수입 도매상에 판매하는 일이었다. 즉, 수출 및 해외영업이라 할 수 있고 주된 업무는 거래선 관리였다. 따라서, 홍콩에서 온 즉시 생활 터전을 마련함과 동시에 홍콩 거래처에 인사를 하러 다녔다.
이중 한 홍콩 업체의 임원이 나와 첫인사를 나누며 이런 환영사를 건넸다. “한국 주재원 가족들이 처음에 올 때 아내가 운다면서요? 많은 나라 중 왜 하필 홍콩이냐구요. 그런데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또 운다더라구요. 홍콩을 안 떠나면 안돼냐구요. 하하~”.
필자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부모님이 오셔서 션젼에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한국인 여행 가이드도 나에게 “홍콩 좋죠? 아마 나중에 홍콩을 못 떠날걸요? 두고 보세요.”하면서 점쟁이라도 되는냥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끼었지만 몇 년후, 그 예언은 기가막히게 적중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고 있는 듯하다. 점점 많은 가족들에게 있어서 해외로의 발령이 커다란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내도 일을 하고 있거나 자녀가 고학년으로서 해외 이주 시 교육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이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바, 이들 가정에게 남편의 해외 근무 발령은 달갑지 않은 뉴스이다. 그래서 최근 필자가 기업체 출장 강의를 가면 가족은 한국에 두고 혼자 나와 있는 주재원들을 많이 보게 된다.
또한 새로운 추세도 있는데, 아내가 홍콩에서 주재원으로 일하게 되거나 이곳에 직업을 얻어 이주해 오는 경우이다. 이로인해 남편은 한국에 거주하고 아내와 아이가(아이는 현지 교육을 위해) 홍콩에서 생활하는 교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혹은 아내가 이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같이 이주해 온 남편은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가정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트렌드의 변화라 할 수 있다.
해외 근무의 기회를 거절할 지, 아니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올 지 또는 같이 올지는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결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단 홍콩에 오게 된 이상 이 기회를 특별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필자가 부임한 직후, 이전 주재원으로 있었던 전임자의 가족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전임자의 아내분이 이런 얘기를 한 기억이 있다. “회사 생활중 해외에 나가 거주할 기회가 생긴다는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인 거 같아요”
그렇다. 직장인 누구나 해외 근무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주재원이 된다는 것은 회사로부터 신임이 두텁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본인에게는 그 기간 동안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머무는 기한내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현지 직원과 교류하고 외국 거래선들과 만나 비즈니스를 익히면서, 또한 주말 등 업무 시간 외에는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 어우러져 생활해 볼 수 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주재 기간 4년은 무척 빨리 지나갔다. 계절이 몇 번 바뀌더니 본사로 귀환하라는 팩스가 날아들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주재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국을 얼마 앞두고 후회와 아쉬움을 털어 놓는 이들도 종종 보아 왔다.
평생 한 번 오기 힘든 해외 생활을 허무하게 보냈다는 것이다. 필자가 주재원 생활 후 12년간이나 홍콩에 남게된 것도 내 전임자의 후회가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는 귀국 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는데 홍콩 생활중 중국어를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에 눈을 뜨게 해 준 암시가 되었다.
따라서 그것이 무엇이든, 외국어든 취미나 특기 생활이든, 운동이든 아니면 기타 새로운 무엇이든 간에 시간 관리를 잘 해서 임기가 끝나갈 때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할 것 같다. 필자가 만일 주재원 시절로 돌아간다면 매일 일기를 쓰면서 홍콩, 중국과 관련하여 관찰한 것, 몸소 경험한 것들을 기록에 남겨 책을 한 권 출판할 것이다.
나의 경우 홍콩 외에도 남중국 시장을 담당하여 션젼, 광저우 등 중국 대륙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당시 보고 느낀 것을 견문록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끝으로 오늘도 회사의 명예를 걸고 타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태풍 8호에도 현지인은 귀가시킨채 홀로 사무실에 남아 있는 우리 한국인 주재원분들에게 축원을 남기고 싶다. “홍콩에서의 생활동안 늘 건강하시고 행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가족분들과 함께 평생 기억속에 간직될 아름다운 추억 많이 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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