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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납량 특집 - 2탄 홍콩 재벌들의 납치극 잔혹사

기사입력 2020.08.1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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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납량 특집 2탄으로 홍콩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재벌 납치 사건들을 다뤄 보겠다. 여기서 소개하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 범죄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모두가 실화임을 밝혀 둔다.



    현재까지 실종 상태인 차이나켐 창업주 테디 왕


    테디 왕은 1934년 샹하이에서 태어나 1948년 홍콩으로 이주해 온 기업인으로 차이나켐 그룹(Chinachem Group)의 창업주이다. 그는 생전에 두 차례나 납치를 당했다.


    1983년 4월, 괴한들에게 끌려가 몸값으로 미화 1억 1천만을 건넨 것이 첫번째 납치되었을 때이다. 그후 범인들은 경찰에 덜미가 잡히며 회장님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7년 후, 이 사건을 들춰 보던 퇴직 고위급 경찰 출신 쫑웨이정은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당시 납치 수법이 매우 뛰어났음에 감탄한다. 그는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여 같은 방법으로 납치한다면 틀림없이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진다. 결국 쫑웨이정과 일행은 1990년 4월, 해피 밸리 자키 클럽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테디 왕을 인질로 잡는데 성공한다.


    그들은 경찰의 녹음, 도청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심지어 홍콩의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어 테디 왕의 아내 니나 왕과 연락을 취하겠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이 납치단은 미화 10억의 몸값을 요구했고 니나 왕은 1차로 미화 6,000만 달러, 2차로 2,800만 달러를 건넨다.


    경찰은 1991년과 1993년에 걸쳐 범죄에 가담한 6명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두목 쫑웨이정은 지금까지도 도주중이고 납치된 테디 왕은 원양어선에 태워져 공해상으로 나갔다는 것만 알려진 후 행방은 묘연한 상태이다.



    몸값으로 1,600억을 뜯어내 기네스북에 등재


    홍콩 최고의 재벌 리카싱의 장남 빅터 리는 32세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1996년 5월 23일 저녁, 귀가하는 그를 태운 차량 앞에 AK47로 무장한 괴한들이 출현한다.


    빅터 리는 바로 괴한들의 차에 태워지고 납치에 성공한 두목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 범죄를 기획한 두목은 중국 광서성 출신 장즈치앙(張子强)이다. 4살 때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고 평소 부자들의 생활을 동경해왔던 그였다.


    빅터 리는 내의만 입은 채로 벌거벗겨진 후 감금된다. 장즈치앙은 허리에 폭탄을 두르고 대담하게도 홀로 리카싱을 찾아가 담판을 벌인다. 리카싱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실은 신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즈치앙의 요구에 응해 몸값으로 10.38억원(한화 약 1,600억)을 건넨다. 이것은 당시 ‘세계 최고 몸값의 인질극’으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었다.


    빅터 리는 곧 무사히 풀려난다. 당시 리카싱은 인질범과의 담판중 시종 침착했으며 그 돈으로 멀리 떠나 새 사람이 되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장즈치앙의 다음 목표는 최대 부동산 재벌 월터 궉


    장즈치앙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2011년 기준, 중화권의 최대 부호는 미화 260억(한화 약 31조)을 보유한 리카싱이었고, 2위가 홍콩 최대의 부동산 기업 선홍카이(新鴻基地産)를 이끄는 궉씨 삼형제였다.


    이들의 당시 소유 자산은 미화 약 200억 달러에 달했다. 이중 월터 궉은 장남이다. 장즈치앙은 홍콩 10대 재벌을 모두 납치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바, 재벌 2위였던 월터 궉이 다음 목표였다.



    1997년 9월, 사무실로 향하던 월터 궉과 그 일행은 괴한들에 납치당하여 신계 판링쪽으로 끌려간다. 납치범들이 가족에 연락하라 협박을 했지만 월터 궉은 거절한다. 그러자 그는 매일 구타를 당했는데 결국 납치 4일 후, 6억 달러를 건네고 풀려난다.


    월터 궉은 후유증으로 공포, 우울증에 시달려 1년간 정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심신이 쇠약해진 데다가 주변인에 대한 과도한 의심 등으로 2008년 그룹 총수직에서 물러난다.


    이 희대의 범죄자 장즈치앙은 어떻게 되었을까? 1998년 광저우에서 체포되어 현지 인민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리고 같은 해 총살로 삶을 마감한다.



    홍콩 재벌들의 납치극 잔혹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의류 브랜드 보시니(Bossini)의 창시자 루오딩방(羅定邦)은 2015년에 딸이 납치되어 곤혹을 치뤘다. 2,800만 달러를 건네준 후에야 딸은 풀려날 수 있었고 일당은 중국 본토에서 체포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펄 오리엔탈 홀딩사의 회장인 황위쿤이 대만에서 산책중 납치된다. 특이한 점은 인질범들이 그의 몸값 7,000만 홍콩 달러를 비트코인으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만 경찰들에 의해 일망타진 되었으며 황 회장은 살아서 귀환할 수 있었다.


    연예인 중에는 양조위의 아내이자 유명 배우인 유가령이 1990년에 납치되었다 풀려난 적이 있다. 또 한국의 유명인 부부인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가 1978년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차례로 납북되기도 했었다.


    유전무죄라는 말이 이곳 납치범들 사이에는 유전유죄로 통하는 것 같다. 한국 회장님들이 구치소를 들락날락하며 수난을 당했다면 홍콩 재벌들은 폐차장등에 끌려다니며 수모를 겪어야 했다. 돈이 너무 많아도 화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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