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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는 홍콩의 고대사부터 중세인 송나라까지의 역사를 살펴 보았다. 오늘은 그 이후의 왕조인 원, 명, 청나라의 홍콩 역사를 짚어본다.
1. 원(元 : 1271~1368) 시대 - 중원의 북방인 남하
원나라 시대에 홍콩 지역은 광저우 동관현 관할하에 있었다. 당시 현재의 툰먼에 순검사(巡檢司)가 설치되어 홍콩 일대의 민정을 관리하였다. 중원이 몽고족인 원나라의 수중에 떨어지자 많은 북방인들이 남하하였고 그 중에는 광동 지역에서 몽고군에 항거하는 세력들도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한편 남하한 이들은 심천, 홍콩 등지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중 일부는 현재의 신계 지역에 같은 성씨 족이 집단으로 촌락을 형성하여 거주하였으며 현지인과 동화되기도 하였다.
2. 명(明 : 1368~1644) 시대 - 경제 발달, 인구 대거 유입, 해적 및 외세의 침입
명나라 시기에 홍콩의 경제는 나날이 발전하였고 주민 유입도 크게 증가하여 명나라 말 무렵에는 이곳에 이미 많은 인구가 거주하였다. 당시 개발된 지역은 모두 연안 일대와 도서 지역이었는데 이곳에 거주하는 많은 이들이 수상 가옥에 살고있는 단민(民)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어업과 염업에 종사하였다. 외지에서 유입된 세력은 지금의 윈롱, 판링, 상수이 등 신계의 평지, 분지 혹은 협곡에 거주하며 농경 생활을 하였다. 혹은 신계, 섬 지역에서 식물 재배나 과수원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명나라 때에는 홍콩 지역에 소금과 향나무가 많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모두 나라에서 판매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생활은 빈곤하였다. 이중 향나무의 경우 홍콩과 그 주변 일대의 토질이 성장에 유리하여 이곳 향 제품은 다른 지역의 품종보다 우수하였다.
어업의 경우 해상 운송을 통해 각 연해 지역으로 수산물의 판매가 이루어졌고 지금의 란타우 섬 북쪽 연안, 특히 타이오(Tai O, 大澳)는 어업의 중심지로서 많은 어선들이 집결되었다.
1518년, 포르투갈의 함정들이 툰먼에 입항하여 그 일대를 점거하며 약탈을 하거나 토착민을 학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명나라 조정에서 해군을 파견하여 란타우 섬 북쪽 지역에서 포르투갈의 여러 함정을 소각하고 물리치는 성과를 거둔다.
또한 1522~1566년 중엽, 해적 임도건(林道乾)이 세력을 집결하여 홍콩의 연안 각 지역을 노략질하는 동시에 해상에서는 통행세를 받았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의 선박들은 출항을 자제했고 임도건 세력이 격퇴되고 나서야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민간 및 군대의 협력을 통해 해안 지역의 방어 진지를 구축하는 사업이 진행되었고 이후 해상 세력의 침략은 감소하였다.
3. 청(淸 : 1616-1922) 시대 - 해금령 및 해안 주민의 내륙 이주 정책
청나라 초기, 해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대만에 거점을 두고 있는 명나라의 저항 세력 정성공(鄭成功)과 결탁하여 국가에 위협하는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정부에 의해 1656년 선박의 출항을 금지하는 해금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해안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모두 내륙으로 옮기게 하는 강제 이주 정책이 시행되었다. 내륙 이주 정책이 시행된 곳은 강남, 절강, 복건, 광동이었고 이중 대만과 인접한 복건과 광동 지역에 매우 엄격히 적용되었다. 홍콩도 예외일 수 없었는데 이로 인해 폐허가 된 해안 곳곳은 해적의 소굴이 되었다.
정성공 세력이 투항한 후 1684년 해금령은 폐지되었고 해안을 떠난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간 인적이 없었던 해안 지역은 이미 황폐해졌고 이전의 건축물들과 문물들은 사라지거나 옛 모습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많지 않았다.
결국 국가에서는 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특혜를 주어 이들로 하여금 다시 홍콩 지역에 유입하게 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이때 대거 이주해 온 사람들이 객가인(客家人)이었는데 토착민들과 잦은 충돌이 발생했고 사망자들이 발생하는 사건들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 홍콩의 연안에는 다시 해적 및 외세의 침입이 잦아진다. 이중 정성공의 부하 대장이었던 정건(鄭建於)의 손자 정연창(鄭連昌)과 정연복(鄭連福)이 광동 일대를 휘젓고 다녔는데 현재 레위문(鯉魚門)의 마귀산(魔鬼山, Devil’s peak) 및 란타우 섬을 점거하여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에게 통행세를 걷었다.
한편 영국 선박으로서는 최초로 캐롤라이나 호가 1683년 무역을 요구하며 란타우 섬에 정박한 이후 홍콩 지역에는 중국과 무역을 원하는 서양 세력들의 입항이 잦아진다. 홍콩은 광동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 그 군사적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은 청나라 정부에 의해 진지 구축 및 파병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하지만 1839년 아편 전쟁 발발 후 청나라는 영국에 패배하여 1841년 체결된 남경조약에서 홍콩섬을 영국에 할양하는 계약이 체결된다. 이어 1860년에는 구룡반도가 할양되고, 1898년에는 신계까지 조차지로 넘겨지며 홍콩은 점차 농경 사회에서 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출처: <香港古代史新編 (中華書局出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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